겔라티 수도원 - 조지아 문화와 지성의 중심

2021. 2. 7. 09:43세상의 모든 풍경/Geor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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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할치헤 라바티 성의 낭만적이고 화려한 조형미와 사파라 수도원의 고즈넉한 평화를 경험하고 난 후 보르조미의 인심좋은 민박집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지낸 우리는 2008년식 도요다 SUV를 운전하여 과거 조지아의 수도이자 유서깊은 도시 쿠타이시로 향했습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도 중간에 길을 잘못 접어들어  아무 생각없이 반대편인 므츠헤타 방면으로 한 시간 이상 신나게 달려갔지요...^^ 한참 달려 가다가 "어라? 이거 엊그제 본 풍경 같은데?? 이상하다~"라는 독백을 두어 번 내뱉은 다음에야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빨리 도착하겠다는 욕심에 지도를 자세히 보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역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죠..^^결국 우리는 두 시간 이상 손해를 보았고, 목표로 삼았던 겔라티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거의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나즈막한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쿠타이시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가는 길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겔라티 수도원(Gelati Monastery)은 조지아 서부의 이메레티지역 쿠타이시 근교에 있는 수도원 단지를 가리킵니다. 그 곳에는 조지아의 왕 건설자 다비트에 의해 설립된 수녀원의 성모 마리아 성당과 성 게오르게와 성 니콜라스의 13세기의 교회들이 모여 있지요.

겔라티 수도원은 오랜 시간 조지아의 문화와 지성의 주요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 곳에는 가장 유명한 조지아인 과학자들과 신학자들, 철학자들이 교수로 있는 아카데미가 있으며, 많은 교수들이 이전에 국외 정교회의 여러 수도원들과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민간 아카데미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그런 과학자들 가운데는 이오아네 페트리치나 아르센 이칼톨레이와 같이 저명한 학자들을 꼽을 수 있지요. 겔라티 아카데미서 펼쳐져온 광범위한 활동과 작품들 덕분에, 사람들은 그 곳은 "신헬라스"(a new Hellas), 또는 "제2의 아토스"(a second Ato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학훌리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는 학훌리세첩화 복제본


겔라티 수도원에는 굉장히 많은 수의 12~17세기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벽화와 필사본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학훌리 세첩화(Khakhuli triptych)는 겔라티 수도원 최고의 보물로 꼽히는데요. 폭 2.02m, 높이 1.47m의 이 세첩화는 중앙의 테오토코스를 중심으로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여러 성자들과 성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본래는 8세기경에 115개의 아름다운 보석장식과 함께 제작되어 학훌리수도원에 소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건축자 다비트4세가 겔라티수도원을 건축하면서 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가 이 보물을 겔라티수도원으로 이전했는데요, 중세 조지아 연대기에 따르면 이후 타마르 여왕이 오스만제국과의 전투에서 빼앗은 금으로 화려한 테두리를 장식하였고, 은으로 된 날개를 추가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첩화는 1859년에 러시아인들에게 도난당하고 맙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세첩화는 1923년에야 금과 보석이 뜯겨져 나가고 심하게 손상된 채 조지아에 반환되어 현재 조지아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 세첩화는 겔라티 수도원과 더불어 1994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문화유산은 장기간 방치되는 바람에 건물과 유적의 파손정도가 심각하여 절멸 위기에 처한 세계기념물 감시목록 100위 안에 선정된 상태입니다.

쿠타이시 시내를 빠져나와 몇 개의 마을을 지나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달려가다보면 산 중턱 숲속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수도원 건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A.D. 1106년, 비잔틴 제국 시대에 조지아의 왕 다비트 4세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바람에 건물과 유적의 손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어 2006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호와 복원을 위한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어 현재도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9년 7월말, 저희가 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도 복원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덕분에 온전한 건물을 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처럼 가치있는 문화재가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될 수만 있다면 그 아쉬움은 당연히 감내해야겠지요?


왼쪽의 붉은 지붕이 겔라티 아카데미 건물, 중앙이 성 니콜라스교회, 그리고 오른쪽이 종탑입니다. 겔라티 수도원은 중심 건물인 성모성탄교회와 성 니콜라스교회, 그리고 다음 사진에서 보게 될 성 조지교회, 사제 및 수도사들이 생활하는 숙소와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도원의 중심 건물인 성모성탄교회는 지금 외벽과 지붕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입니다.


지붕복원 공사가 끝난 성 조지교회(St. George Church)의 모습입니다. 내부는 복원공사가 한참 진행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 조지교회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겔라티 수도원의 여러 건물 중에서 가장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난 예배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탑 상단부의 아치와 기와가 너무 아름다워서 줌으로 당겨서 담았습니다. 붉은색과 베이지색, 초록과 파랑이 어우러진 기와는 표면에 유약처리를 해서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성 니콜라스교회 전체 모습입니다. 매우 작은 규모의 예배당이고 내부의 장식이나 시설물들은 대부분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곳곳에 기도처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신학교 시절 힘들 때마다 올라갔던 마음을 다잡고자 올라갔던 장신대 본관 종탑 아래 있던 기도실들이 떠올랐습니다. 


프레스코 벽화들로 가득한 성모성탄교회의 전경입니다. 제단 전면부 중앙에 테오토코스를 중심으로 좌우에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뿔지붕 아래 돔 중앙의 예수 그리스도와 좌우 날개 부분의 벽화들도 일부 손상이 있기는 하지만 뛰어난 예술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겔라티수도원의 교회들은 조지아정교회의 건축양식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런 조지아정교회 건축양식은 비잔틴양식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훗날 비잔틴제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돔 형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사진은 제가 담은 것은 아니고 인터넷 서핑중에 퍼온 것입니다..^^ 성모성탄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볼거리로 꼽히는 테오토코스 프레스코화입니다. 12세기에 그려졌지만 16세기 초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으로 성당 전체가 불탔을 때 크게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상태가 양호한 프레스코 벽화들은 대부분 이 때 다시 그려진 것들입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앞에 설 때마다 죄인 중의 두목인 나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 그분의 긍휼하심에 나를 맡깁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돔 중앙부와 우측 날개부분을 광각렌즈로 담았습니다.


성모성탄교회의 우측 날개부분의 벽화 전체를 담았습니다. 수백년의 세월 동안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지금은 색이 바래 산만하게 느껴지지만 과거에는 이 그림들이 얼마나 웅장하고 생동감 있었을까요? 사실 중세시대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그림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성경의 메시지와 교회의 전통을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성모성탄 예배당 뒤편의 프레스코 벽화들입니다. 각각의 벽화들이 담고 있는 내용을 모두 알 수 있는 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오랜 세월 조지아왕국의 수도였던 쿠타이시 근교에 위치한 수도원답게 조지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벽화를 보전하고 있는 수도원이라고 하겠네요...^^


성모성탄교회의 출입구가 있는 후면입니다.


성모성탄교회의 제단 전면부를 담았습니다. 장미꽃 왼쪽 뒷 배경에 이 성당을 세운 별명이 '건축가'인 다비트4세의 프레스코화가 보입니다. 전면부는 대부분의 조지아정교회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조지아왕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이 성모성탄교회를 건축한 다비트 4세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담아보았습니다. 조지아식 원래 이름은 '다비트 사그마셰네벨리'입니다.

 

방문자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조지아어로 된 성경과 기도서가 놓여져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이 겔라티수도원을 건축하던 당시의 주요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중앙의 대주교와 대사제들이 보이고 대주교 왼쪽 흰 가운을 걸친 사제 옆에 다비트4세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림 아래쪽의 어린 남녀 복사들의 모습이 천진스럽습니다. 우측으로 비스듬히 세상을 떠나 천국에 있는 인물들,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아기의 모습도 있네요.


곳곳에 장식된 수많은 프레스코 벽화들....


대천사 미가엘을 그린 프레스코 벽화입니다.


인도에는 히말라야나 카일리시 산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평생을 수도에 전념하는 마하리쉬(Maharishi)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평생 머리를 자르지 않기 때문에 머리 길이가 자신의 키보다도 더 길다고 하죠.. 마치 인도의 마하리쉬와도 유사해 보이는 조지아의 전설적인 수도자의 모습입니다. 그는 이 겔라티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동굴에서 나체로 홀로 수도하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인도의 자인교 수도승들 중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수행을 하는 나체 수도승이 있는데 그들과도 비슷해 보이죠?



그 전설의 수도자는 성자로 추앙을 받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이 성화 앞에서 기도를 하더군요.


성모성탄교회의 입구에 있는 타마르(Tamar) 여왕의 초상입니다. 초상 아래 조각 중앙에 다비트 4세의 모습이 보이네요.


예배당에서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보관하는 감실입니다.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입니다.


타마르 여왕과 그의 왕자일까요? 겔라티수도원의 복원과 중흥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서 그런지 여러 곳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성 니콜라스교회 제단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벽화가 훼손되는 바람에 좀 황량하네요...ㅠ.ㅠ


성 니콜라스교회와 성모성탄교회를 하나의 앵글 안에 담아보았습니다. 왼쪽 끝에 보이는 아치는 겔라키수도원 부속 아카데미 건물의 입구입니다.


이번에는 성모성탄교회와 성 조지교회를 함께 담았습니다. 외벽 복원공사가 끝나면 훨씬 아름다운 수도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겠네요...


한창 복원공사가 진행중인 성조지교회를 처음 도착했을 때와 반대방향에서 담았습니다.


사제관에서 독서에 여념이 없는 수도사의 모습을 멀리서 담았습니다.


겔라티수도원 부속 아카데미입니다. 내부에 특별한 유물은 없고 넓은 홀이 있습니다.


성 조지교회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조형미가 뛰어난데, 이 각도에서 볼 때 전체 건물을 조화롭게 감상할 수 있네요. 복원공사 중이라 내부를 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직선과 아치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성모성탄교회의 모습입니다. 아름답지요? 특히 지붕의 기와는 조지아만의 특별한 기법으로 제작한다고 하는데 정말 빛깔이 신비롭습니다.


성모성탄교회 측면의 모습인데 보면 볼 수록 아름답습니다..


이 사진은 구글에서 퍼온 사진입니다. 비가 그친 후 바로 담은 것으로 보이는 멀리서 바라본 겔라티수도원의 전경입니다.


마지막으로 쿠타이시 주변의 마을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종탑의 모습이네요.


겔라티수도원은 조지아정교회의 유구한 전통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학문과 지성의 중심지이자, 조지아 역사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수도원입니다. 지금도 수도사들이 생활하고 있고, 주일마다 예배가 드려지며, 수많은 신혼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사제의 축복을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도원과 예배당이 그들의 삶의 한 복판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지요. 신앙과 문화와 삶이 하나인 조지아정교회의 모습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습니다. 인도인들에게 있어 힌두신앙도 그들의 문화와 삶 속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여간한 외부의 자극에도 그 뿌리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요. 조지아정교회를 보면서 지금 신앙과 삶, 그리고 문화가 서로 분리되어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한국교회도 한국사회 안에 깊이 뿌리내려 반석 위에 세운 집처럼 흔들리지 않는 교회로 성숙해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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