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향기 그윽한 장성필암서원

2021. 3. 14. 06:00아름다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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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함께 광천교회를 섬겼던 청년으로부터 가족과 함께 장성에 저를 보러 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신실하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잘하던 청년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이었고, 어여쁜 아내와 사랑스런 두 딸은 참 맑고 다정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장성호 수변길을 함께 거닐고, 읍내의 양송식당에서 맛있는 애호박찌개를 먹은 다음 거의 20년 만에 필암서원을 찾았습니다. 고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다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다시 찾은 필암서원에는 봄햇살이 가득했고, 곳곳에 매화가 만발하여 꿀벌들을 유혹했습니다. 

필암서원(筆巖書院)은 사적 제24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선조 23년(1590년)에 문정공 하서 김인후(金麟厚)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고 합니다. 중종 5년(1510년)에 장성 대맥동에서 출생한 하서 김인후 선생은 1528년(중종 23)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고 1531년 사마시에 합격한 뒤, 1533년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李滉)을 만나 함께 학문을 닦았습니다. 154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에 등용되었으며, 이듬해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하고, 홍문관저작이 되었습니다. 1543년에는 홍문관박사 겸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어 세자(훗날 인종)를 보필하고 가르치는 직임을 맡았습니다.

하서 선생은 중종이 세상을 떠난 후 제술관(製述官)으로 임명되어 서울에 올라왔으나, 1545년에 인종이 승하하고 곧이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인 장성으로 돌아와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습니다. 제자로는 조희문·양자징(梁子徵)·변성온(卞成溫)·기효간(奇孝諫)·오건(吳健)·노적(盧適)·신각(申覺)·서태수(徐台壽)·이지남(李至男) 등이 있으며, 기대승·정철·김천일·박순 등도 문인을 자처했습니다. 하서 선생은 시문에도 능해서 10여 권의 시문집을 남겼지만, 도학에 관한 저술은 일실(逸失)되어 많이 전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하서의 저서로는 《하서집(河西集)》·《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백련초해(百聯抄解)》 등이 남아 있습니다.


김인후 선생의 사후에 처음에는 김인후의 문인 변성온 등이 주도하여 기산리에 서원을 세웠는데, 이 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4년(1624년)에 복원되었다네요. 현종 3년(1662년)에는 '필암'으로 사액되었고, 10년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1786년에는 하서 선생의 사위인 고암 양자징(梁子澂)을 추가로 배향했습니다.

필암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입니다. 이 서원에 소장된 문서들은 보물 587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는데 총15책 65장의 필사본들로 고문서류입니다. 이 자료들은 필암서원의 임원, 원생, 조선 후기 서원의 재정과 노비 소유, 서원의 운영사항과 지방관청 및 유림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필암서원은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 등입니다.


전남대 철학과  2학년 시절, 그러니까 1985년에 당시 한국철학을 가르치시던 안진오 교수님의 지도로 학우들과 함께 이 서원에 탐방와서 조선 중기 성리학의 발전에 대해 공부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특히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8년 동안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학문적인 입장을 피력한 사단칠정논쟁은 무척 흥미진진하여 지금껏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50대였던 퇴계는 독창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이기호발(理氣互發)에 기초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비판하던 30대의 약관 고봉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여 자신의 이기일원론을 수정하게 됩니다. 고봉은 처음에는 하서 김인후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아 자신의 사상의 기초를 닦았지만 훗날 퇴계와의 오랜 서신논쟁을 통해  '사단칠정이 모두 다 정(情)'이라고 보는 '주정설'(主情說)을 확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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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 유물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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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 배치 미니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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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전시관 내에 재현된 서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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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서 드리는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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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세자(훗날 인종)에게 학문을 강학하는 하서 김인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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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 출입문이 있는 확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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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 사액 현판이 걸려있는 청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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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드리는 사당 우동사 출입구 (평소에는 잠겨있어 출입제한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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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를 보관하는 서고인 장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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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에는 매화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포스팅에서도 향기가 느껴진다면 좋겠네요.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하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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