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feat. R. M. Rilke)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이게 하소서.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이 굴러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입니다. Rainer Maria Rilke(1875-1926) 릴케는 체코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문학가로서 독일어권에서 으뜸으로 평가받는 시인 중 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김춘..
202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