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잃어버린 고향 - 고리강가의 저녁이야기

2015. 4. 12. 04:43인도이야기/인도여행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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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강가(Gauri Ganga).
우타르 쁘라데시 주의 이타와 현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깡촌 중의 깡촌, 오지 시골마을....
내게는 참으로 많은 추억과 가슴시린 아픔이 함께 서려있는 곳이다.

그곳을 방문한 것만 다섯 차례....
두 번은 거의 일주일씩 머물렀고
나머지는 1박2일 또는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변변한 여관이나 게스트 하우스도 없고,
제대로 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식당도 없다.
계란을 넣어 라면을 끓여주는 간이식당을 찾는 데는 한 시간이 필요했다. 

마을 전체에 냉장고는 아예 없고,
TV를 가지고 있는 가정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루의 절반 정도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냉장고나 가전제품을 제대로 이용할 수도 없다.

지하수 펌프 하나로
30명이 씻고 빨래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했다.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방에서 잠을 잘 수 없어
마당에 누워 하늘의 별을 헤면서 잠이 들었고,
겨울에는 창문에 유리가 없어
포대자루로 얼기설기 막은 방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어떤 매력이 이 마을에 숨어 있는 것일까...

이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전라도 순창 복흥의 깡촌 산골마을을 떠올리곤 했다.
내가 살던 고향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자연을 벗삼아 사는 곳이었다.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들,
자연과 어우러져 공존하는 사람들...
고리강가에 갈 때마다 나는 희미한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이 마을 곳곳에서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이제 사진들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하나 둘씩 되새겨 보자.


2012년 12월에
고리강가의 추억을 담아오다.


지금까지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삶, 가장 순수한 사람들, 때묻지 않은 미소가 고리강가에 있었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가축을 먹이는 먹이는 일만큼은 결코 인색하거나 가난해 보이지 않았다.


최근들어 가정마다 이런 지하수 펌프가 설치되어 식수의 어려움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부엌엔 가스레인지도 전기밥솥도 믹서기도 없다.
그저 조그만 화덕에 로띠를 굽고 섭지(야채볶음)와 달 커리를 만들 수 있으면 족하다.


사춘기 소녀의 로띠 굽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영화도 TV도 없는 마을에서 아이들은 형제와 친구들, 가족과 어울리는 공동생활을 익혀간다. 


할머니와 아이들의 미소는 어디에서나 정겹고 푸근하다.


아직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기만 한 아이들... 몇몇은 부끄러워 처마 밑으로 숨어들어갔다.


텅빈 집에 어린 오누이만 남았다. 쇠로된 양푼 하나가 아이에게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90세에 가까운 사라 할머니, 슬하에 9남매를 비롯 72명의 후손을 두었다.
아직도 직접 가족들의 로띠를 굽고 아이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운다.


눈망울이 유난히도 예쁘고 총명해 보였던 소년,
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아쉽다.


손주를 데리고 집 옆의 뜰에서 모닥불을 피우던 할아버지...
자기 손에 든 것이 뭔지는 알고 계실까...ㅋㅋ


화장실이 없는 이 마을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침마다 저 물병하나를 들고 어디론가 향한다.


이 마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새는 바로 저 공작이다.
공작이 마치 우리 시골마을의 암탉들처럼 집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할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표정이 개운하고 행복해 보인다..ㅎㅎ


쌍으로 겨리를 멘 소들을 끌고 일터로 나가는 촌부의 뒤에서는 공작이 나래를 펴고 우아하게 날아오른다.


이 마을에는 공작 뿐 아니라, 야생토끼와 족제비,
심지어는 사슴까지도 흔히 볼 수 있다.
사슴은 약간 우거진 숲에 사는데 사냥용 총을 가진 사람들이 밀렵을 하기도 한단다.


한국의 초등학교 2학년 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머리에 곡식을 이고 집으로 향한다.
전통과 인습이 중요시되는 이곳에서 여자는 농사와, 집안일, 자녀생산과 양육 등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아침마다 우유를 짜서 배달하는 둣드왈라 아저씨...
자신의 평생, 아니 부모님의 평생 동안 이어온 직업이다.


나마스떼 인사를 건네는 내게 나름 자연스런 포즈를 취해 주었다.


염소는 이 마을에서 참 중요한 가축 중 하나이다.
마을 주민의 9할 이상이 채식주의자인 이 마을에서 염소는 가족들에게 젖을 공급해주고
마지막에는 결혼식과 같은 가족의 대사을 위해 시장에 팔려간다.


이것이 부엌살림의 전부...
이것으로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단다.
그러니 만드는 음식의 메뉴도 일년 내내 같을 수밖에 없다. 
이 마을에서 한 주간 지내다 온 후로 난 반찬투정을 일체 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마늘을 까는 할머니의 모습...
지금은 천국에 계시는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순간 울컥했다.


저 거친 손도 수 십년 전에는 섬섬옥수 고왔을텐데...
세월의 무게만큼 사랑과 수고의 흔적도 새겨져 있다.


나를 끌고 기어코 자기 집으로 가자던 아이들...
그 집에 들어서자 즐거운 표정으로 이방인을 환영해 주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아이들 엄마의 손이 분주하다.


엄마는 금새 로띠를 만들 아따 반죽을 만들었다.


이들에게는 염소들도 엄연히 한 가족이다...


교육과 성공의 기회에서 소외된 채 자라는 아이들...
그러나 이들에게도 꿈꿀 자유는 있다.


초가지붕과 붉은 흙벽돌로 쌓은 담들..
그리고 비슷한 색깔의 사람들... 참 따듯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다.


마을의 몇 안되는 자전가 중의 하나...
자랑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나를 찾아오셨다.


사람에게도 카스트가 있듯 소에게도 카스트가 있는데
이 소는 인도에서도 가장 존중을 받는 일명 브라만 소이다.
사람들은 이 소를 신을 섬기듯 정성껏 봉양하고 기른다.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여인들과 아이들...^^
그것까지도 사랑스럽다.


12월 추운 겨울에 밖에서 냉수로 목욕하는 젊은이..
역시 청춘의 피는 뜨겁다.
기실, 더운 물의 차례가 이 젊은이에게까지는 돌아오지 않았으리라.


나무도 없고, 비싼 석유는 구할 수 없고...
이들이 겨울을 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소똥 연료들이 묘한 대형을 이루며 말라가고 있다.


한국에서 보내온 츄파춥스 하나씩을 물려주자 아이들의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행복감이 묻어난다.


오누이의 밝은 미소가 단지 츄파춥스 때문만은 아니길...^^


저녁 마지막 시간까지 나를 따라다닌 아이들...
덕분에 츄파춥스의 행운을 즐기게 되었다.


이 메뉴는 거의 매끼니 반복되었다.
12월은 유채가 나는 시기인지라 유채잎을 몇 시간 동안 삶아 맛살라를 섞어 만든
'사르송까 사그'라는 펀잡스타일 요리가 최고로 꼽힌다.
여기에 야채볶음을 곁들이면 가히 이 마을 최고의 메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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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고리강가의 새벽이야기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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