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기독교사상 5> 인도 르네상스 – 람 모한 로이

2020. 11. 2. 17:33인도기독교 이야기/인도기독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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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 모한 로이(Ram Mohan Roy)

라자 람 모한 로이(Raja Ram Mohan Roy)는 기독교 신학의 주제들에 대해 진지하고도 광범위한 글을 쓴 최초의 인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은 인도 역사에서 매우 존경받는 이름이다. 그것은 그가 선구적인 힌두 사회개혁가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의 열정적인 호소가 없었다면 남편이 죽은 후 그 시신, 옷과 함께 그의 아내도 산채로 화장하던 풍습인 사띠(sati)제도의 폐지같은 사회개혁조치들이 오랜 세월 후에야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현대 인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데, 이는 그가 강조한 바 있는 여러 가지 신학적 태도들이 인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람 모한 로이는 뱅갈인 브라만이었다. 그는 집에서 자신의 종교적 탐구에 대한 만족을 찾지 못한 채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나 멀리 티베트까지 유랑생활을 했다. 그의 초창기에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를 공부했으며, 그 결과 이슬람 신앙 전반에 대하여 친숙하게 되었다. 이는 그에게 신의 유일성과 우상숭배의 무의미함이라는 측면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삶에 있어 전환점은 1811년에 찾아왔다. 그 해에 그는 원치 않게 자기 형수의 사띠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는 이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후에 사띠 제도 및 그와 유사한 학대들을 척결하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서약하였다. 이 작업에 있어서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두 가지 주요한 원천은 우빠니샤드(Upanishads)와 그리스도의 도덕적인 가르침이었다.
힌두 경전들에 대한 연구는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그의 확신을 깊게 하였는데, 한편으로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종교적 진리에 대한 부단한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는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들이 도덕적 원칙에 더 도움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성적인 요소들을 사용하는 데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J. N. Faquhar, Modern Religious Movements in India (1918), p.32.


람 모한 로이는 기독교 교리보다는 기독교 윤리에 더 큰 매력을 느꼈고, 우빠니샤드에 바탕을 둔 자신의 힌두교 일원론과 자신에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 산상설교의 도덕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련의 소책자들을 통해 그는 공개적으로 힌두교의 다신론과 통상적인 브라만적 종교를 공격했으며, 자신의 동료 힌두교도들을 그들의 ‘오류의 꿈’(dream of error)에서 불러내어 ‘본래적인 하나님의 유일성과 편재성’에 대해 심사숙고 할 수 있게 했다.

1820년에 그의 기독교 연구는 『예수의 교훈들』(The Precepts of Jesus)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됐다. 이 책은 예수의 가르침의 주요 부분을 포괄하는 사복음서의 발췌 모음집으로서, 무엇보다도 힌두 지성인들을 힌두 사회의 도덕적인 개혁을 위한 동인으로 참여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여기서 82쪽의 발췌문 가운데 마지막 네 쪽만 제4복음서(요한복음)에 할애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에 대한 명확한 가르침은 람 모한의 유일신론(unitarianism)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으며, 그가 요한복음 10:30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를 생략했다는 것은 이 구절이 훗날 신약성경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힌두 학생들을 매혹시킬 만한 구절이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자신이 요한복음을 무시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방어 논리를 펼친다.

‘기독교의 교리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던 것은 바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 ‘무함마드주의의 기원인 한 분의 하나님 안에 있는 세 분의 하나님이라는 불가사의한 교리와 힌두 중 보다 계몽된 이들의 개종을 가로막고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세워졌다.’  An Appeal to the Christian Public in Defence of ‘The Precepts of Jesus’ by A Friend to Truth  (Calcutta, 1820), p. 22.


당시의 몇몇 기독교인들은 이 책 안에서 기독교를 향한 힌두교의 태도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음을 보았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세람포르 선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잡지인 「인도의 친구」(The Friend of India)의 내용 가운데서 람 모한이 ‘기독교 대중에게 보내는 호소’(Appeals to the Christian Public) 시리즈를 통해 응답한 내용에 대해 그와 논쟁을 전개했다.
선교사들의 논증은 기독교가 단지 유일신교와 도덕의 종교가 아니라, 그 중심에 신적 존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 사역을 믿는 신앙이 있음을 보여주는 데 집중됐다.

첫 번째 호소에서 이러한 공격에 대해 응답하면서 람 모한 로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의 가르침들을 분리해 낸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호소에서 그는 기독교의 특징적인 교리인 삼위일체와 속죄의 교리가 과연 성서적 근거가 있느냐고 질문하면서 그 논쟁을 계속 진행했다.

이 시기에 람 모한 로이는 영국과 미국에 있는 유일신교도들(Unitarians)과 접촉했으며, 세람포르 선교사 중 하나인 윌리엄 애덤(William Adam)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다. 실제로 그의 신학적인 글의 상당부분은 그 당시 서양의 합리주의자들과 유일신주의자들을 연상시키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특별히 인도적인 것은 거의 없다.

람 모한은 삼위일체라든가 그리스도의 두 본성과 같은 ‘계시된’ 교의들을 거부하며, 그보다는 자연신학의 지위를 주장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미국인 친구 헨리 웨어(Henry Ware)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기의 일반적인 입장을 매우 분명히 하고 있다.

어느 곳에나 존재할 수 있는 신이 여성의 자궁 안에서 생성되어야 하고, 수년 동안을 종속된 상태로 살아야 하며, 마침내 그의 피를 자신의 분노가 인간적인 형태로 자신의 일부를 희생하는 것 외에는 달랠 수 없는 또 다른 위격의 신에게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뿌리 뽑으려는 시도보다 이성에 대하여 더 나은 경의를 표하거나 더 찬사를 받을 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어떤 봉사도 선한 행위와는 별개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앙과 의례나 법의 준수, 또는 외적인 표식들이 인간을 과거의 죄와 허물의 얼룩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여 영원한 구원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으로부터 그들을 벗어나게 하려는 노력보다 인류에게 유익할 수 없다.  English Works of Raja Rammohun Roy, Pt. IV (Calcutta, 1947), p. 44. in Letter on the Prospects  of Christianity.


‘선한 행위들(Good works)과는 별개로’라는 표현은 람 모한이 행위로부터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교조주의, 의식 또는 심지어 신앙을 배제하고 윤리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815년에 람 모한은 자신의 종교적인 견해를 전파하기 위해 ‘아뜨미야 사바’(Ātmiya Sabhā, 영적 연합)라고 불리는 단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1821년에는 윌리엄 애덤과 함께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유니테리언 미션’(Unitarian Mission)을 조직했다. 이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1828년에 보다 뚜렷한 인도인들의 모임이 결성됐다. 이 모임은 처음에 ‘브라흐마 사바’(Brāhma Sabhā)였다가 최종적으로 ‘브라흐마 사마즈’(Brāhma Samāj)로 불리었으며, 처음에는 창설자인 람 모한의 지도로, 그리고 후에는 케샵 찬드라 센(Keshab Chandra Sen)의 지도로 힌두교 개혁을 위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초창기 브라흐마 사마즈의 종교적인 의식들은 우빠니샤드의 구절들을 읽는 것과 산스크리트어와 벵갈어로 특별히 작곡된 신을 위한 찬가를 부르는 것을 포함했다.
‘브라흐만’(Brāhman)이란 단어는 베단타 철학에서 지고의 존재(Supreme Being)를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하며, 1830년에 문을 연 사마즈의 예배 장소의 신탁증서는 람 모한이 마음에 두고 있던 개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건물은 우주의 창조자이자 보존자시요 영원하시며 헤아릴 수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 존재를 예배하고 경배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하며, 특별히 어떤 이름이나 직책, 또는 호칭 아래서 또는 그것에 의해 그 무엇이든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특정한 존재나 존재들을 위해서는 사용할 수 없고 요청해서도 안된다Farquhar, op. cit., p. 35.


1830년에 영국을 방문한 람 모한 로이는 그곳에서 큰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국민을 위해 더 봉사하기 위해 인도로 돌아오기를 원했지만 1833년에 브리스톨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인도에서 위대한 애국자로, 그리고 사회개혁의 주창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가 근본적인 기독교 교리들 가운데 네 가지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가 채택한 많은 태도가 인도에서 매우 친숙해졌고, 힌두교와 기독교의 관계에서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에 대한 람 모한의 태도는 그분을 위대한 스승이자 하나님의 ‘사자’(messenger)로 여기는 일종의 경외감이다. 하지만 그는 신적인 속성을 갖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는 문장 안에서 발견되는 ‘아들’이라는 수식어는 비록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존귀하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창조된 본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Second Appeal, p.12.


람 모한이 여기서 아리우스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며, 이는 그의 일원론적 배경, 이슬람에 대한 연구, 그리고 서구의 유일신주의(unitarianism)와의 연합에 비추어 보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또한, 그 당시는 아리우스주의 논쟁이 영국과 아일랜드 및 다른 곳들에서 절정에 달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는 많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그가 ‘성부에 대한 성자의 본성적인 열등함’7이라고 말한 것을 증명하고자 했으며, 예수는 단지 하나님의 권능을 위임받은 것일 뿐 본질에서 이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요한문서의 본문들에 암시된 성부와의 연합은 ‘존재의 동일성이 아니라 단지 예수와 그의 사도들 사이에 존재했던 것처럼 존속되고 있던 의지와 설계의 조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을 비롯한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다른 호칭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언제나 한정된 의미에서 그 명칭들 하나하나가 본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특별한 선물임을 암시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모든 예언자 중 가장 높은 메시아의 아들이라는 말과 동일하며, 그의 삶은 성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빛처럼 순수하고, 어린 양처럼 순전하며, 일시적인 존재들을 위한 양식(빵)으로써 영생을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분이요, 하나님의 천사들 만큼이나, 또는 그들보다 더 위대한 존재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람 모한은 동정녀 탄생 교리를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믿음과 분리시키려고 하면서도 동정녀 탄생 교리 자체는 수용한다. 그는 아마도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믿음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포함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한편 그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들, 심지어 부활까지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많은 기적을 믿고 있는 인도인들은 그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에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본성이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믿음을 거부하기 위해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이 물질과 직접 연결될 수 없다는 일반적인 힌두교의 관념을 그 논거로 사용한다.

예수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이란 용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예수를 실제로 인간의 형태로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물질과 인간의 영혼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동일하게 하나님과 물질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인정할 뿐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어머니’와 같은 표현을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려 할 것이다. Second Appeal, p.69.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이해시키고자 사용하는 이런 개념 중 어떤 것도 힌두교도들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2) 그리스도의 사역


람 모한 로이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그의 가르침을 통해 성취된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히 그런 교훈들 가운데 최고의 본보기로서, 그 교훈들을 전달하는 것은 ‘그의 사명이 지닌 유일한 목적’이었다. 
람 모한은 대리적인 고통과 희생적 죽음이란 개념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두 본성의 교리를 공격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하나님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만일 예수께서 그분의 신성 안에서 고통을 받았다면 이는 죽음이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 그 이상이신 하나님의 본성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만일 예수께서 죄에 대해 순결한 인성 안에서 대속적인 고통을 당하셨다면, 이는 결국 하나님의 정의와 부합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실제로 ‘박해를 받는 무죄한 자’의 상징인 한 마리 어린양으로서 죄 없이 고통을 받으셨지만, 람 모한은 ‘인간의 피, 또는 인간의 형상 안에 있는 하나님의 피를 죄에 대하여 필수불가결한 대속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비성경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에게 있어서 구원의 계획은 매우 단순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교훈을 따르는 것을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수단이요, 우리의 고난을 극복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힘이라고 하신다.

만일 우리가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게 되며, 최고의 본보기인 십자가로부터 커다란 도움을 얻기는 할지언정, 대속적인 죽음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유익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았으며, 자신의 교리로 죄악을 제거했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심지어 십자가의 비참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셨으며, 지금까지 어떤 유대인 대제사장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자기 헌신과 희생을 감내하셨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 실패한다면(불가피하게 그렇게 되겠지만), 그 해결책은 회개에 있다. 회개란 ‘우리가 그 의무에 미치지 못했을 때 우리의 편에서 모든 것에 자비로우신 분(the All-merciful)께 가장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속죄(atonement)’이다. 이는 회개와 믿음, 은혜와 용서에 관한 교리에 그가 접근한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

 

3) 성령


유니테리언으로서 람 모한 로이는 삼위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서
, 또는 인격이나 신성을 가진 분으로서의 성령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두 번째 호소의 한 장을 성령의 비인격성을 주장하는 데 할애한다. 그는 성령을 거룩한 영향력과 하나님의 능력을 대표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반면 그는 성령의 자존하심(self-existent)이나 어떤 종류의 구별된 인격성도 부정한다. 성령은 우리가 의의 길로 방향을 설정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영향력이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 성령을 어떤 특정한 형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비둘기의 형태로, 아니면 다른 육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성령이 정말로 삼위일체의 제삼위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신이 물고기나 다른 동물의 형태로 나타나는 힌두교의 전설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Second Appeal, p.90.


람 모한의 개혁프로그램은 분명 힌두교의 전설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비판을 요구했다.

 

4) 삼위일체


람 모한 로이는 1830년 영국에 방문했을 때 유니테리언 교회와 삼위일체주의 교회의 영적인 삶을 비교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을 바꿀 의사가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지만, 자신이 활동하고 있던 생활 전반에 걸쳐 ‘삼위일체주의자들’을 자신의 적대자로 여겼다.

그는 자기 생애의 상당 부분을 힌두교의 다신교와 우상 숭배에 반대하는 논쟁에 바쳤으며, 그리스도와 성령을 한 분 하나님 안에 있는 ‘인격들’(Persons)로 포함하는 것은 원시적인 것으로의 회귀이자 자신이 주의 깊게 연구해온 유대교의 명확한 유일신론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기독교 초기 수 세기 동안의 그리스와 로마의 다신교적 경향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따라서 하나님은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향력이지만, 예수는 제한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나 중보자, 또는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는 메신저로 여겨질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유일한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한 경배를 드리는 통로가 되시는 아들에 대한 믿음을 고백해야 하고, 또한 의의 길로 인도하심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향력에 대한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Second Appeal, p.85.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서’라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람 모한은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때 사용하는 가치 있는 통로라고 믿었지만, 다른 신앙전통들로부터 온 사람들에게는 다른 통로들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람 모한 로이의 시대 이전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사역에 대한’ 반대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람 모한은 가장 먼저 진지하게 ‘신학적 반대’를 제기하고, 성경적 증거에 대한 합리주의적이고 일원론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자신만의 기독교 버전을 제안하는 과정을 밟았다.

그는 기독교를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을 강하게 강조하는 유일신론주의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윌리엄 아담이 기독교를 힌두교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에 이끌린 마지막 사람이 아니었기에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이 그 이상(理想)을 붙들고 있다. 그런데도 벵골의 주요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이 ‘예수의 교훈들’(The Precepts of Jesus)을 연구함으로써 시작됐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 앤드루스(C. F. Andrews)의 증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위 내용은 본 필자가 번역한 도서 「인도 기독교 사상」(Robin Boyd 저, CLC, 2020)의 내용을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전제를 금하며, 혹시 인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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