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랏산을 향한 염원 - 코르비랍 수도원

2021. 3. 17. 09:21세상의 모든 풍경/Arm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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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반 남쪽 아르타샤트에 있는 감리교 선교사님 댁에서 아르메니아에서의 첫밤을 보내고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거기서 가까운 코르비랍 수도원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 민족의 뿌리이자,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 역사가 시작된 아라랏산을 먼저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선교사님의 사역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소형 차량을 렌트했고, 모든 일정을 얀덱스 앱과 함께 네비게이션으로 찾아다니면서 소화하였습니다.

유태인들을 제외하고 세계 역사 속에서 아르메니아인들만큼 고난의 역사를 가진 민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인들의 뿌리일 뿐 아니라 그 긴 고난의 역사 가운데서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구심점이기도 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아라랏산(Mt. Ararat)과 코르비랍수도원(Khor Virap Monastery)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네요. 아르메니아를 소개하는 모든 책자와 브로슈어, 웹사이트에 등장하는 상징이 바로 눈이 덮힌 아라랏산과 그 산을 향해 서 있는 코르비랍이기 때문이죠..^^ 

구약 창세기 8:4에 보면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아라랏산은 대홍수 재앙을 피한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태운 방주가 홍수가 그치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기나긴 표류를 끝내고 멈춘 곳이지요. 아르메니아 대평원에 우뚝 솟은 아라랏산은 해발 5,137m의 대아라랏과 3,896m의 소아라랏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아라랏은 그 봉우리가 일년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고,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그 주변은 광활한 초원지대가 형성되어 유목민들이 목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까지 아르메니아인들의 땅이었던 아라랏산은 오스만투르크에게 정복당한 후 지배권이 터키로 넘어갔고, 19세기말 터키에 의해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인종청소가 시작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은 더 이상 아라랏산에 오를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남쪽으로 약 30km 거리에 있는 코르비랍 수도원은 아라라트 지방 포크르베디(Pokr Vedi) 마을 언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코르비랍 수도원은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된 사연을 간직한 곳으로서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르메니아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사도 바돌로매와 유다(다대오)가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볼 때 주후 1세기였을 것입니다.  그 후로 이 아르메니아 고원에는 여러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찾아옵니다.

그러다가 아르메니아 왕국의 통치자 트리다테스 3세 시대에 왕의 신하였던 그레고리(A.D. 257-331)가 이곳 코르비랍 지하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레고리의 본래 이름은 Grigor Lusavorich였고, 그의 아버지는 트리다테스 왕의 아버지를 죽인 후 쫓겨다니다가 갑바도기아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레고리는 그곳에서 성장하였고, 사제가 되어 자신의 고향 아르메니아로 돌아왔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던 그는 왕에 붙잡히게 되었고,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죄와 이교를 전파한 죄를 묻고 아나히타 신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자 왕은 그를 깊은 지하감옥인 코르비랍에 가두어 버린 것이지요.

그레고리를 감옥에 가두고, 동로마에서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하러 온 33명의 수녀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하던 왕은 어느날부터 심각한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마다 고통스러워하던 왕은 어느날 자신이 십 수년 전에 감옥에 가두었던 그레고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가게 됩니다. 코르비랍은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지하 감옥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그레고리는 기적처럼 살아 있었고, 그레고리로부터 복음을 들은 왕은 회개하고 자신의 정신병을 고침받게 됩니다. 기독교인이 된 왕은 그레고리와 함께 기독교를 아르메니아의 국교로 선포하였고, 그레고리는 아르메니아 최초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 후 5세기에 그레고리가 14년 동안 갇혀있던 감옥 위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고, 이 수도원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완공된 것은 17세기라고 합니다. 코르비랍이 아르메니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겠지요. 첫째는 자신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거룩한 산인 아라랏산을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요, 그리고 둘째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코르비랍수도원과 인근 풍경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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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비랍과 눈에 뒤덮인 아라랏산. 제가 방문했던 8월 초순에는 날씨가 맑지 않아 아라랏산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감상의 편의를 위해 구글에서 무료 이미지를 하나 가져왔네요..^^



조지아정교회와 달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십자가 외의 상징이나 그림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내부에 들어가보아도 성 모자의 그림 하나 외에는 다른 성화나 그림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이 사진처럼 십자가 문양을 깊은 기도와 온갖 정성을 담아 조각하여 설치합니다. 오랜 전통인 이 십자비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만의 독특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코르비랍 입구에 이 세 개의 십자가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코르비랍 수도원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담은 사진입니다.
전면이 아니라 뒷면이 보이니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지요?




수도원의 전면부 사진입니다. 조지와 수도원과 비슷한듯 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느낌이 나더군요. 조지아의 수도원들은 첨탑이 원형인데 아르메니아 교회는 저와 같이 12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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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부의 모습입니다. 조지아정교회와는 달리 사제단과 회중석 사이의 가림막이 없습니다. 벽에 성화를 그리지 않고 전면부에 성모자와 아르메니아 교회 성인들 사진만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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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그레고리가 갇혀있던 지하감옥으로 내려가는 사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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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이 그리 좋지 않아 아라랏산이 희미하게 보여 아쉬웠습니다. 
연중 아라랏산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맑은 날이 한 달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예루살렘 성전이 바라보이는 감람산 아래 온통 무덤들로 가득한 것처럼 아르메니아 인들은 아라랏산이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공동묘지를 조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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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빌려온 코르비랍의 겨울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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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 장의 사진은 타테브와 노라방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담은 아라랏산의 일몰풍경입니다.
아라랏산을 선명하게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 노을로 달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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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산을 향한 아르메니아인들의 마음을 품고 서 있는
코르비랍수도원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오늘 포스팅은 그래도 그리 길지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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