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교회의 예배에 참여하다 - 성 요한교회 + 호반나방크

2021. 3. 22. 05:36세상의 모든 풍경/Arm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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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샤트의 선교사님 댁에 머물던 우리는 주일이 되어 예배할 곳을 찾았는데요, 근처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가 있다고 하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오래된 수도원이 아니지만, 아르타샤트 지역민들이 예배드리는 지역교회로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실제 예배현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러 간 성 요한 교회(Saint John Church)는 2002년도에 아르메니아 전통양식에 따라 건축된 교회로서, 2.5 헥타의 넓은 부지에 깔끔한 건물과 잘 조성된 정원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예전은 크게 성례전과 주일예배로 나뉜다는 점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나 개신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례전의 경우 로마 가톨릭교회와 같이 일곱가지 성사, 즉 세례, 견진, 고해, 성만찬, 신품, 혼배, 종부(종부) 성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세례의 경우 정교회나 가톨릭을 비롯한 다른 교회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하며, 세례를 받을 때에는 후견인 즉 대부(Godfather)가 있어야 합니다. 세례는 첫 번째 성례로서, 세례를 받아야만 다른 성례에 참예할 수 있게 됩니다. 견진은 세례 직후에 이루어지는데요, 수세자가 감람유 등으로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성령 안에서 성화된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예식입니다. 성체성사의 경우 사제가 축성하는 순간 빵과 포도주가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에 가깝지만, 집례자 외의 참석자들이 빵에 해당하는 전병만을 받는 가톨릭과 달리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이 빵과 포도주를 다 받습니다. 다른 성사들은 가톨릭과 같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성 요한 교회의 전경입니다. 2002년에 건축된 교회답게 무척 깨끗하고 세련된 모습이죠? 예배 분위기나 예배시 부르는 찬양도 조지아정교회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현대적이었습니다. 예배당 뒤쪽 2층에 7,8명 정도로 구성된 성가대가 주로 아카펠라로 예배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사제들과 교창을 했는데요, 화음과 선율이 정말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주일예배는 바다라크(Badarak)라고 불리는 거룩한 전례에 따라 진행됩니다. 바다라크는 교회가 하는 여러가지 일들 중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신앙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현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전례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는데요, 준비(Preparation), 성찬식(Synaxis, eucharist), 헌신(Holy Sacrifice), 축도와 폐회(Last Blessing & Dismissal)가 그것입니다. 전례에서는 다른 모임들이 제공할 수 없는 공동체적 행위가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 예전 가운데서 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살아계시고 현존하시는 몸에 참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리고 서로서로 하나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르메니아 교회의 예전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현존 가운데로 향해 가는 여정으로 간주하는데요, 일상의 삶을 떠나 예배의 자리인 교회로 나아가는 순간 이미 성례전적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사도교회는 우리가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의 "새 생명"에 참여할 수있는 것은 거룩한 전례를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사도교회의 예배의 분위기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시간과 전혀 다릅니다. 예배자들의 모든 관심을 지상의 삶에서 하늘의 삶으로 향하게 하지요. 교회 안의 공기는 향과 함께 달콤한 냄새가 나고, 주변에는 촛불이 켜집니다. 귀는 노래로 가득 차며, 사제는 아름다운 예복을 입지요. 그리고 제단은 신성한 그릇들로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바다라크에는 또한 가르침을위한 시간이 반드시 포함됩니다. 기록된 거룩한 말씀인 성경 말씀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사제의 설교를 통해 그 들은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이지를 배웁니다. 또한 아르메니아 교회의 가르침과 신앙이 표현된 찬송을 부름으로써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습니다. 성도란 이런 전례를 통해 가르침 받음으로써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과 지식 안에서 자라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교회의 회중들에게 전례는 또한 그들과 함께 계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축하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 서로 하나됨을 느끼면서 사랑과 기쁨으로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교회 안에는 "사적인" 전례 같은 것이 없구요, 모든 전례는 전체 회중을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거행됩니다.


 

사도교회에서 성찬례는 거룩한 전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성도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그들에게 내어주십니다.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도 상호 간에 연합하는 수단입니다. 이 연합은 특정 교회 건물에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회원인 "산 자와 죽은 자, 성도와 천사"의 모든 연합을 의미합니다. 



성찬례는 성도들을 양육하고 지탱하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회중의 일원으로서 그들에게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성도들을 위한 음식으로 주셨고, 동시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수단으로  음식을 주셨습니다. 



사도교회에서는 거룩한 전례를 행함에 있어 성직자 뿐 아니라 평신도들 역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회중은 자신을 드림으로써 그리스도를 자기 삶에 영접하기 위해 모입니다. 사제는 회중과 함께, 그리고 회중을 위해 자신을 드리며, 그리스도의 임재를 회중에게 알려줍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같은 잔에서 받음으로써 성도들은 진정으로 하나의 가족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성도들은 세상으로 돌아가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거룩한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받는 모든 것들, 즉 교훈과 친교,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적으로 성도를 자라게 하며 성도의 삶을 지탱해줍니다.  



가림막 안에서 성찬을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성도들은 앞에서부터 제단 앞쪽으로 나가서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같이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머리에 미사보를 쓰고 있었습니다. 특히 성찬에 나갈 때는 안 쓰고 그냥 앉아 있던 분들도 가방에서 미사보를 꺼내 쓰더군요.


 

집례사제와 부제, 그리고 복사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데, 제가 성당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아주 엄숙하거나 진지하기 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우리는 성찬에는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무음처리하여 틈틈히 사진을 담았구요.



비록 한 마디도 제대로 알아들은 말은 없지만 가톨릭과 정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흐름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예식과 유사하지만 분위기에 있어서는 훨씬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분위기나 찬송 등은 오히려 개신교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성 요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와 돌아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외부에서 보이는 교회의 전경을 담았습니다. 이상으로 성 요한 교회에 드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예배에 대한 경험과 소개를 마치고, 여기서부터는 그 전날인 토요일 오후에 다녀온 호반나 수도원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호반나방크(Hovhannavank)는 예레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라가초튼(Aragatsotn) 주의 오하나반(Ohanavan)이란 마을에 위치한 수도원으로서, 카사흐 강의 협곡 옆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수도원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4세기 초에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한 조명자 성 그레고리에 의해 설립된 단일 회중석의 성 카라펫 바실리카입니다. 수도원의 중심부는 1216년부터 1221년까지 바체(Vache, Vachutian Amberdtsi) 왕의 기부로 건축되었다고 하네요. 

 

우리가 수도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수도원에서 막 결혼식이 끝난 시간이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랑신부가 흰 비둘기를 날리는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흰색 비둘기는 순결과 평화의 상징이겠지요. 동시에 성령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비둘기를 날리며 이 신혼부부는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창공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는 비둘기와는 달리 이제 신랑신부는 서로에게 매인 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스스로 구속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과연 깨달았을까요?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행복해 하는 신혼부부의 표정이 참 흐뭇합니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들은 잘 살고 있을지, 이들에게서 예쁜 아기가 태어났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수도원은 협곡의 가장자리 넓은 벌판에 우뚝 서 있는데, 정말 고풍스럽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왼쪽 앞부분이 아마도 처음 건축된 수도원인 것 같고, 첨탑이 있는 중심부가 13세기 초에 잇대어 건축된 것 같습니다.


예배당 내부의 돔 부분을 촬영하였습니다. 조지아정교회와는 달리 돔에 어떤 성화도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나 예배당 내부 곳곳에 기둥과 벽면에 하츠카르가 새겨져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 예배당 내부에 돔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빛이 비취네요.


예배당의 전면부 제단만 촬영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 개신교 강단보다도 더 단순해 보이지요? 하츠카르와 촛대가 거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이 수도원 주교좌 예배당은 특이한 이층구조로 되어 있는데요, 양쪽으로 난 저 좁은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만 간신히 다닐 수 있는 좁은 계단이죠. 노라방크 성모교회의 계단이 생각났습니다.


이곳은 4세기에 건축된 구 예배당 내부인데요, 제단 전면부에서 들어오는 빛이 너무나 강렬하네요.

 

우리 바로 앞에 다녀가신 분이 켜놓은 외로운 초 하나가 빛을 밝히고 있네요. 하늘에서 내리는 빛과 어울리면서 신비스럽고 거룩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구 예배당 입구 위쪽에 부조로 조각된 그림입니다.

첨탑을 아래부터 위까지 최대한 왜곡을 억제하여 담아보았습니다.


반대쪽에 있는 돌담 쪽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사진의 오른쪽 앞으로는 아주 깊은 협곡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3세기, 아르메니아의 종교와 문화가 전성기였던 시절에 전형적인 아르메니아의 교회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수도원입니다.

 

여기서도 인증샷은 필수지요..^^


예배당의 뒷모습입니다. 붉은 사암과 검정색 벽돌이 어우러지면서 아르메니아 교회당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무너진 돌담위에서 이 장면을 담았는데, 촬영하고 나오면서 흔들거리는 바위를 잘못 디뎌 낙상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무릎과 팔을 비롯한 몇 곳에 찰과상을 입고 며칠 동안 다리와 팔의 통증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지요..^^ 내 몸이 예전(?) 같지는 않음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카메라는 삼각대 체결을 위한 프레임을 씌워둔 덕에 무사했습니다.


수도원 근처에 몇 가정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그분들 집에서 간단한 응급치료를 하기 위해 가다가 너무 아름다운 프레임이 눈에 들어와 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장면 역시 아픔을 무릎쓰고 담은 것이라 제게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수도원에 들어가는 후문인데, 보수가 필요해 보이지요? 아마도 1918년에 일어난 지진 때 무너진 것을 1990년대에 응급으로 보수해 놓은 상태일 것입니다. 


가벼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더 이상 이동이 어려워 이렇게 협곡쪽에서의 장면을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글링표 이미지를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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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전례를 소개하고
예레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호반나방크에 대해 포스팅했습니다.
약간은 예배학적인 용어들이 포함되어서
읽기에 딱딱하셨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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