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굴곡진 역사와 더불어 - 아흐파트 수도원

2021. 3. 24. 09:27세상의 모든 풍경/Arm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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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북부 로리(Lori) 지역 알라베르디 마을 근처에 있는 아흐파트 수도원(Հաղպատավանք, Haghpatavank)은 직전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린 사나힌 수도원과 함께 아르메니아 북부지역의 중세 기독교 문화의 꽃을 피워낸 요람으로서 데베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언덕 위에 건축되었습니다. 이 아흐파트 수도원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나힌 수도원과 함께 비잔틴의 건축양식과 코카서스 및 아르메니아의 전통양식이 잘 조화되었다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아흐파트가 1996년에 먼저 등재되었고, 이어 2002년에 사나힌은 수도원까지 확장하여 등재가 이루어졌지요. 

아흐파트수도원, 즉 아흐파트방크는 바그라티드 왕국의 아쇼트 3세(Ashot III) 시절인 976년에 그의 아내인 호스로바누이쉬(Khosrovanuysh) 왕비가 당시 유명한 건축가였던 트라앗(Traat)에게 설계를 맡겨, 25년 후인 99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당시의 평균수명으로 볼 때 트라앗은 자신의 남은 모든 생애를 이 수도원 건축에 바쳤을 것 같네요. 아흐파트 수도원은 성 십자가(Sourb Nshan)라는 이름을 붙인 주 예배당과 아르메니아의 수호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성 그레고리교회(Sourb Grigor, 1005년 완공), 그리고 3세기 왕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하마자습교회(Hamazasp, 1257 완공), 그리고 성모교회(Sourb Astvatsatsin, 13세기)와 필사실(Scriptorum), 종탑(Belltower) 등 다양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나힌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아흐파트 수도원 역시 여러가지 이유로 여러 차례 훼손되었다가 복원하기를 반복했는데요, 1300년 어간에 있었던 큰 지진으로 수도원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어 50년간이나 복구가 지연되기도 했고, 수 백년 동안 몽골제국의 침공과 셀주크 투르크를 비롯한 여러 이슬람 왕조들의 공격을 받아 큰 수난을 당했으며, 가깝게는 1988년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여러 곳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도원은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수도원으로서의 정상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제가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수도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수도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수도원의 모습입니다. 저희는 여기서 왼쪽으로 돌아 수도원의 주 출입구쪽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성 십자가 교회(Sourb Nshan Church)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응회암을 잘라만든 벽돌들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흐린 날씨와 어우러져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성 십자가 교회 입구 왼쪽에 빨간 장미 한 그루가 예쁜 꽃을 피워냈습니다. 건물 벽돌에 조각된 하츠카르와 어울려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옆에 있는 장미가 서운해 해서 한 컷을 더 담아주었습니다.



13세기에 추가로 건축된 성 아스트밧사친교회, 즉 성모교회입니다. 작은 규모로 예쁘게 지어진 교회입니다.



우측의 십자가 기둥, 뒤의 하마자습교회를 배경으로 성모교회의 전경을 담았습니다.



하츠카르가 새겨진 벽돌들 틈에 떨어진 씨앗이 뿌리를 내려 자라난 초록빛 풀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흔적을 남깁니다. 제가 앞의 포스팅까지 아르메니아 십자가 문양 조각을 카츠카르라고 소개했는데, 현지인들의 발음을 자세히 들어보니 첫글짜 K가 묵음이 되어 하츠카르가 맞습니다. 지금까지의 포스팅을 정정해야겠네요..ㅠ.ㅠ


 

성모교회 안에 마련된 소박한 제단의 모습입니다.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 성모교회의 건축을 후원한 키우리크 왕국의 왕비와 그의 아들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 아이는 자라서 키우리크의 왕이 되었을까요? 저 아이의 운명은 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곳의 가장 큰 주 예배당인 성십자가 교회를 마지막에 보기로 하고 먼저 1257년에 건축된 하마자습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마자습 교회 안에는 큰 홀이 있고 중앙에 돔이 있는데 그 돔을 떠받친 기둥들이 아름다운 아치형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하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정말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아치구조가 아닐 수 없네요.



하마자습교회의 전면부 제단 모습입니다. 



전면부 제단 채광 창 밖으로 노랗게 피어난 예쁜 야생화가 보였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야생화를 채광창을 통해 프레임에 담았습니다.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교회가 성 아스트밧사친교회, 즉 성모교회구요, 뒤에 보이는 사각형의 건물이 바로 성 십자가교회 입구의 가비트(Gavit), 즉 각종 회의나 결혼식, 장례식이 열리는 홀입니다. 이 홀의 지붕이 바로 이곳 아르메니아 농부들의 집의 구조를 본떠 만든 것이지요.


 

좀 더 뒤에서 하마자습교회와 성모교회, 그리고 성 십자가교회의 가비트를 함께 담았습니다.



여기서 뒤로 돌아서니 큰 하츠카르를 세워놓은 무덤 비슷한 구조물들이 여러개 이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우카난트(Ukanants) 가문의 가족묘실이라고 하네요. 



왼쪽으로 모퉁이를 돌아 위로 올라가니 아흐파트 수도원만의 특징적인 구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신기하게도 건물을 지으면서 흙을 제거하지 않고 건물의 지붕 아래 부분까지 흙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추측컨대 건물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집은 사야트 노바 기념관(Sayat Nova Memorial)이구요, 완만한 경사를 이룬 큰 지붕이 하마자습교회입니다. 하마자습교회 뒤로 보이는 각진 돔은 갤러리와 필사실이 있는 아카데미의 돔입니다. 그리고 뒷쪽으로 수도원의 중심인 성 십자가교회의 돔이 보입니다.



좀더 왼쪽으로 돌아서 담은 장면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배치가 아닐 수 없네요...



제가 앞에서 제단 채광창 사이로 담았던 풀꽃이 바로 여기에 있네요..^^ 사진 왼쪽 채광창 바로 앞에 있는 풀꽃입니다. 



이 수도원에서 정말 아름다운 구조물 중 하나로 3층 구조로 된 이 종탑을 꼽지 않을 수 없죠... 안전문제로 위로 올라갈 수는 없어서 외부에서 이렇게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종탑의 각 방면의 벽에 난 채광창은 이런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잦은 침략에 사나힌 수도원과 아흐파트 수도원을 방어하기 위에 인근 높은 언덕에 카이얀이란 요새를 지었는데요, 그 요새와 더불어 이 종탑 역시 일종의 망루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탑의 반대쪽은 응회암 벽돌이 까맣게 변색되어 있습니다.



종탑의 아흐파트 마을 쪽 방향에는 2층 채광창 아래에 아름다운 십자가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마을로 이어지는 출입구 쪽에서 담은 종탑의 전경입니다.



종탑을 지나 왼쪽 아래로 내려오면 성 십자가 교회와 서고, 아카데미가 연결되어 있는데 서고와 아카데미쪽은 거의 반지하 형태로 흙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넓은 뜰에는 묘지들이 연이어 조성되어 있는데요, 둘레에 자란 풀과 야생화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저 무덤 주위에서 저 야생화들은 몇 번이나 피어나고 시들어 갔을까요?



오직 아흐파트 수도원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부조가 성 십자가 교회 지붕 및 외벽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혹여 지진이나 외부 침략으로 교회가 파괴될지라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두 수도사가 성 십자가 교회의 모형을 들고 서 있는 장면입니다.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예배당에서 태어나 축복을 받고 결혼하고 죽어 장례를 치뤘을까요? 아르메니아 제국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와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말없이 견뎌온 성 십자가교회는 아르메니아 민족의 굴곡진 역사 그  자체일 것입니다.



자꾸 이 지붕이 제 마음을 끌어당겼습니다. 제단에서 제가 열 컷 넘게 셔터를 날렸던 가운데 보이는 풀꽃이 저를 다시 불렀는지도 모르지요. 오롯이 이 지붕과 풀꽃을 주 피사체로 삼아 한 장 담아주고 싶었네요. 



날씨가 흐려 새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떠 있는 장면을 담았더라면 얼마나 멋진 스카이라인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쉽지만 우리 삶에 항상 맑고 개인 날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 분위기 또한 이 수도원이 지닌 여러 느낌의 하나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한 컷을 더 담았습니다.


 

수도원은 곳곳에 마을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습니다. 다른 수도원들이 인가와 고립되어 깊은 산이나 절벽에 자리잡고 있는 반면, 아흐파트 수도원이나 사나힌 수도원은 마을의 한 복판에서 마을 주민들의 일상과 삶의 여정에 함께 하는 동반자요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수도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또 이 자리입니다. 이 벤치에 앉아 조용히 묵상하며 자연의 소리 속에 함께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종탑과 마을로 이어지는 출입문을 함께 담았습니다.



문득 이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상상 속에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종탑을 클로즈업 해보았습니다.



이들이 하츠카르를 새기며 드렸을 기도와 사랑의 고백을 나도 주님께 드려봅니다.



수도원에 들어오는 입구에서 담았던 풍경의 반대방향에서 담은 전경입니다. 하마자습교회와 성모교회는 보이지 않고 나머지 시설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네요. 기독교는 아르메니아의 예술과 건축이 발전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독교가 전래되고 국교가 된 후 5세기 무렵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아르메니아 고전양식은 7세기 말, 이곳이 아랍 이슬람 제국에 점령되면서 그 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9세기 말에 아르메니아가 아랍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부터 아르메니아의 국가적 정체성과 더불어 아르메니아 예술도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절정기에 건축된 수도원이기에 아흐파트에는 아르메니아의 기독교적 영성과 예술혼이 오롯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더 뒤로 물러가 종탑을 포함한 전경을 담았습니다.



이곳이 갤러리와 아카데미, 그리고 서고로 이어지는 입구입니다. 



아치가 드리우는 음영과 뒤로 이어지는 기둥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깨어진 하츠카르 조각들이 아치 아래 모여있습니다.



갤러리 내부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풍경을 담았습니다.



수많은 하츠카르들이 갤러리 좌우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필사실입니다. 이곳에 필사자들이 모여 정교한 글씨와 그림을 완성하여 책으로 역어 서고에 보관했습니다. 바닥에는 수 십 개의 항아리들이 묻혀 있는데요, 이 항아리에 종이와 필사재료들을 보관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곳을 일정한 온도와 습도유지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건물 외부를 흙으로 덮었다고 하네요.



아카데미 위쪽으로 난 돔인데요, 앞에서 설명했듯이 예르디크(yerdik)라고 부르는 이 돔은 아르메니아 북부 농부들의 집 구조에서 채용한 방식으로서 실내 전체에 조명을 주는 채광창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필사실 내부의 모습입니다.



이 수도원에 있는 수많은 하츠카르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하츠카르인데요, 성 십자가교회와 하마자습교회 사이에 1273년에 세워진 이 '구세주(Amenaprkich) 하츠카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십자가 죽음에 이르는 전 생애가 새겨져 있습니다. 



필사본들과 각종 문서들을 보관하는 서고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성 십자가교회로 이어지는 통로입니다.


 

이제 갤러리를 통해서 하마자습교회와 성십자가 교회사이의 통로로 나왔습니다.



이 문은 수도원의 동쪽 문으로서 역시 마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은 잠겨있지 않아서 제게 재미있는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 나무로 된 문의 쪼개진 틈새로 수도원을 담아내는 것이지요...^^ 이건 아무도 모르는 저만의 뷰포인트인데, 이 글을 보신 분은 똑같이 촬영을 시도하실 것 같네요.



이 사진은 그냥 쪽문을 열고 담은 것이구요.



쪽문의 나무 틈새사이로 담은 사진들입니다.



삼각대를 가져가 초점을 달리한 두 장의 사진을 찍어 합성하면 더 완벽한 사진을 만들 수 있겠지요?


 

자, 지금부터 드디어 성 십자가 교회쪽으로 들어갑니다. 교회의 입구에는 먼저 언급했던 가비트, 즉 넓은 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각종 모임과 장례식 등이 치뤄진다고 했지요?

 

 

성십자가교회로 들어가는 입구쪽의 가비트의 모습입니다. 둥근 천장은 지붕 내부를 9개의 면으로 나누고, 맨 위 한 가운데에 난 구멍, 예르디크를 뚫어 실내조명과 환기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먼저 소개해드린 게하르트 수도원의 가비트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게하르트 수도원의 가비트는 12세기, 이곳 가비트는 10세기 말에 건축되었으니 건축양식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아르메니아 북부와 남부의 양식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가비트 중앙의 큰 돔을 받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빛이 드리우는 음영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가비트의 안쪽에서 입구쪽으로 보이는 장면입니다.



성 십자가 대성당의 내부전경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예배당에서 전면부에 성화가 그려져 있는 곳은 아마 사나힌과 이 아흐파트가 유이할 것 같네요. 



한참을 실내 조명이 없이 어렵게 사진을 담고 있었는데 마침 앞에 기념품 코너를 맡고 있는 관리인이 들어와서 조명이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당연히 "땡큐 플리즈"라고 했지요.. 조명이 들어오니 전면부 성화를 이만큼이나마 담을 수 있었습니다. 



전면성화의 맨 위에는 우주의 통치자이신 그리스도(Christ Pantocreator)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간부분에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아래로 열 두 사도들이 있구요, 맨 아래쪽에 아르메니아 교회의 성 그레고리와 성인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면부 성화만 다시 담았습니다. 1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렇게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돔의 좌우 아치를 포함하여 담았습니다.



좀 더 화각을 넓혀 담은 돔 부분의 모습입니다.



돔의 우측 벽에는 제단 전면의 우주의 지배자 그리스도의 성화를 봉헌한 후투룰하가 왕자의 모습을 비롯하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성인들의 삶을 담은 다양한 성화들이 장식되어 있는데요, 중앙부는 거의 대부분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이 그림의 아래에 있는 인물이 바로 후투룰하가 왕자입니다.



성 십자가 교회의 회중석 방향으로 담은 장면입니다.


아래 제단 부분만 따로 담았습니다. 지금도 계속 예배가 드려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예배시에 사용되는 종입니다.



액자에 담겨진 십자가가 바로 이 교회를 존재하게 한 성 십자가입니다. 이 수도원의 가장 중요한 보물이지요. 화려한 장식을 가진 저 십자가의 중앙부에 예수님이 못박혔던 그 십자가에서 떼어난 조각이 모셔져 있다고 하네요. 개신교인인 저의 입장에서 보면 저것이 뭐 그리 중요하고 대단한가라고 생각되지만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교회나 가톨릭교도들에게는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유하기 위해 들었던 놋뱀이 나중에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징이 지니는 역할과 한계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비트를 나서면서 빛이 아름다워 다시 한 장을 담았습니다.



성 십자가교회 입구의 벽돌에 새겨진 하츠카르들입니다.


 

나오는 길에 담은 몇 장의 외부 전경들입니다.



 








 

알라베르디 인근의 수도원 지도입니다.

 




수도원 아래 큰 길로 내려와 데베 협곡의 웅장한 모습을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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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포스팅 읽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정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네요.
어제 저녁에 시작해서 무려 여섯 시간을 투자하여
겨우 마무리 했습니다. 

댓글을 주셔도 좋고 공감을 누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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