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예술과 아르메니아 전통의 만남 - 사나힌 수도원

2021. 3. 23. 06:29세상의 모든 풍경/Arm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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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교회에서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예배에 참예한 뒤 우리는 선교사님 내외분과 작별하고 아르메니아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알라베르디로 떠났습니다. 조지아에 메스티아가 있다면 아르메니아에는 알라베르디와 딜리잔이 있다고 할 정도로 숲이 무성하고 아름다운 산악지역인데요, 저희가 이 지역에 가야 했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아르메니아의 수도원들 가운데서 독특하게 비잔틴 건축양식과 아르메니아 전통양식이 만나 탄생한 사나힌 수도원(The Sanahin Monastery Complex)과 아흐파트(The Haghpat Monastery Complex)를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나힌 수도원은 아르메니아 북부 로리(Lori) 지방에 있는 사나힌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속한 수도원입니다. 사나힌이라는 동네 이름은 아마도 사나힌 수도원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입니다. 사나힌(Sanahin)이라는 말은 아르메니아어로 "이것이 저것보다 오래된 것"이란 뜻이라네요..^^ 뭔가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단어의 뜻이 이렇다니 조금 허탈했습니다. 아마도 사나힌 수도원 수도사들이 옆 동네에 있는 아흐파트 수도원과 비교하여 자신들이 원조(?)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데베(Debe) 협곡의 고원 위에 자리한 사나힌 수도원은 10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건축되었는데요, 아흐파트 수도원과 이 사나힌 수도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비잔틴의 교회건축 양식과 코카서스 지역의 전통적인 교회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 때문입니다.  아흐파트 수도원과 사나힌 수도원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건축양식 역시 둘 다 비잔틴 양식과 코카서스 전통양식이 조화된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두 수도원은 오랜 세월 동안 아르메니아 북부와 조지아의 기독교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학문과 영성의 중심지로 역할을 다해왔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산들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이 수도원은 2개의 직사각형 축 위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구요, 수도원의 전면은 서쪽을 향해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성 아스트바차친(St. Astvatsatsin), 즉 성모교회(The Holy Mother of God Church)와 성 아메나프르키흐, 즉 구세주 교회(The Redeemer Church), 그리고 성 그리고르(St. Grigor), 즉 성 그레고리(St. Gregory)교회 등 세 개의 예배당과 나르텍스(본당입구 앞의 넓은 홀), 필사실, 종탑, 도서관 및 아카데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딜리잔으로 올라가는 길에 담은 몇 컷의 여정 사진과 함께 사나힌 수도원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반을 지나 딜리잔으로 올라가는 길은 평원과 산악이 서로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무엇보다도 해발 4천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아라가츠 산(Mt. Aragats)을 지날 때면 저절로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우측으로 보이는 산이 바로 아라가츠 산인데요.. 화산이 폭발하여 형성된 이 산은 네 개의 큰 봉우리를 가지고 있고, 드넓은 목초지와 낙석지형, 그리고 가보진 못했지만 중세시대의 요새가 있다고 합니다.



아라가츠 산에서 이어지는 구릉지역에는 밀밭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밀을 수확하고 있더군요.. 뭉게구름이 떠가는 하늘이 정말 예술적이었습니다.



주변에 목초지가 많다 보니 이렇게 양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양들은 하얀색보다는 얼룩이나 갈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을 갖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자신의 재산을 늘릴 때 쓴 수법을 이곳 사람들도 쓴 것일까요?



인도에서도 양떼와 염소떼들을 많이 만나지만 이곳은 공기가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서인지 양들도 더 건강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정말 이렇게 다양한 색깔과 특징을 갖고 있다면 목자가 자신의 양을 구분하여 이름을 붙이기도 쉬웠을 것 같습니다. 문득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요.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을 알고 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다른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는데 머리만 얼룩인 녀석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는 녀석이 무척 귀여웠습니다.


 

드디어 딜리잔에 도착했습니다. 마치 그랜드캐년을 보는 듯한 풍경에 압도되어 버렸습니다. 그랜드캐년은 황갈색의 단조로운 협곡이지만 이곳은 온통 푸르른 협곡입니다. 



이곳에서 잠시 주차하고 인증샷을 담았습니다.



예약해둔 숙소에 체크인을 한 뒤 바로 숙소를 나서 사나힌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수도원 건물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녹음이 짙은 나무와 푸른 하늘, 고색창연한 수도원의 질감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사나힌은 10세기와 11세기에 이곳을 다스리던 키우리크 왕조 바그라티드(The Kyurikyan Bagratids) 가문의 행정업무와 가족묘실로 사용되었으며, 동시에 11세기까지 교구 주교의 집무실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나르텍스의 바닥은 키우리크 왕국 바그라티드 가의 묘실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10세기에 세워진 주 예배당인 '구세주의 대성당'(The Cathedral of the Redeemer)의 모습입니다. 예배당 내부를 보면 거의 복원공사를 하지 않았는데, 이 점이 오히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복원공사를 해서 원래의 모습이 변형되면 감점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그대로 보존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 것이지요.



묘실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담은 사진입니다. 내부의 질감과 외부 나무의 녹색까지 표현하기 위해 노출을 정밀하게 측정해야 했던 기억이 있네요.


나르텍스의 아치와 아치를 잇는 기둥입니다. 그리스나 터키의 그것과 다른 독특한 모양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연광을 그대로 살려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사진인데 비교적 잘 된 것 같아 마음에 듭니다.



예배당의 돔 부분을 광각으로 담았습니다.



제단 전면부에는 하츠카르 조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세주교회와 연결된 중앙 돔을 담았습니다. 네 개의 큰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돔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인데요, 이런 건축 형태는 아르메니아 농부의 가옥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가옥은 정사각형 방에 4개의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지붕 중앙의 구멍으로 연기가 배출되었다고 하네요. 이 건물은 이러한 형태의 구조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개의 기둥을 연결하는 아치들은 미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다른 작은 예배당인 성 그레고리교회의 입구 전경입니다.



건물의 보존을 위해서 건물 위에 자란 나무나 풀들은 제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뿌리들이 건물의 균열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죠...
 


성 그레고리교회와 함께 붙어 있는 이 건물은 1063년에 세워진 필사실과 도서관(Scriptorium)입니다. 사각형 건물로 둥근 천장이 있고, 다양한 크기의 벽감 10곳에 고서와 책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의 남동쪽 코너에는 문자장식가 성 그레고리에게 봉헌된 자그마한 교회가 있으며, 그 옆에는 11세기의 그레고리 마지스트로스 학술원(Academy of Gregory Magistros)이 있습니다.





성 그레고리교회와 도서관을 함께 풀샷으로 담았습니다.



수도원 단지의 주요 건물들을 한 곳에 모아볼 수 있는 뷰포인트입니다. 중앙의 구세주 대성당을 중심으로 좌측에 보이는 도서관은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수도원의 바깥쪽에는 묘지들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이곳은 아마도 많은 기부금을 낸 지역 유지들이 수도원 안에 자신들의 묘역을 조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건물만 좀 더 클로즈업해서 담았습니다. 지붕 위 풀들이 고풍스럽긴 한데, 우리나라 같았으면 건물 보존을 위해 매년 깨끗하게 제초하고 관리했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10세기에 건축된 예배당인데 지진과 이슬람제국 셀주크 투르크 침공 때 무너져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대성당의 북쪽에 위치한 신의 어머니 교회, 곧 아스트밧사스틴(Astvatzatzin)인데요, 양 끝이 열린 아치형 복도를 통해 대성당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르메니아나 조지아의 묘지에 가보면 고인의 사진 또는 가족사진이 돌비에 조각되어 있는데, 나름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 기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하나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옆의 가족묘와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수도원 뒤편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는 현장입니다.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지붕 첨탑의 모습이죠...^^



사광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아 담은 사진입니다. 도서관과 그레고리 교회 뒤편입니다.



구도가 지닌 아름다움 때문에 한 장 더 담았습니다. 그레고리교회 옆으로 어린 소녀가 지나가고 있어 셔터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지붕 돔 세 개와 세 개의 십자가, 푸르고 청명한 하늘이 고풍스러운 느낌과 함께 그림을 만들어줍니다.



사진이 빛의 예술이라는 말은 꽃이나 정물을 담을 때뿐 아니라 이런 건물을 담을 때도 해당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후 4시 반쯤의 빛은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생동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아카데미의 벽을 따라 이어지는 통로인데요, 이런 아름다운 통로를 설계한 사람은 아마도 천재이거나 엄청난 예술적 감성을 지닌 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 컷 만으로 끝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통로입니다.



통로를 가로지르는 아치와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아치의 조합, 그리고 아치의 둥근 원이 시작되는 부분의 기단은 예술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인도의 엘로라 석굴사원에서 촬영했을 때의 그 느낌을 이곳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의 인도사진에서 엘로라를 검색해 보시면 그 느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둥마다 다양한 글귀와 하츠카르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돌에 새긴 글씨는 몇 천년이 지나도 후세들에게 메시지로 남겨지겠지요.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심비에 새겨주신 사랑의 고백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질 것을 믿습니다.



이 장면은 여러분이 보고 느끼신 그대로의 느낌을 간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문이 성 아스트바차친, 즉 성모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이 많은 무덤들에 서로 어깨를 붙이고 누운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어갔을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 잇대어져 하나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사나힌 수도원의 초입에 보이는 사각형 종탑(Belfry)의 한쪽 면을 클로즈업하여 잡았습니다.



저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이 우리의 가슴에 스며들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참 평화를 이루는 주인공들이 되었으면 하는 기도를 드려봅니다.


 

이제 사나힌 수도원과 작별해야 할 시간입니다. 마침 안쪽에서 어린 자매가 엄마를 부르며 달려 나오는 장면을 포착하여 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사나힌 수도원의 이웃 마을에 자리한 아흐파트 수도원이 될 것 같습니다.
꼭 다시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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