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9. 06:25ㆍ세상의 모든 풍경/Armenia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지은 수도원. 멀리서 바라보는 타테브 수도원과 그 일대의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하지만 타테브 수도원이 유명한 것은 단순히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는 풍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남동쪽으로 거의 네 시간을 달려가야 도착하는 타테브는 수천년 이어져온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신과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짐을 챙겨 타테브로 출발하였습니다. 중간에 길가에서 복숭아와 사과를 구입해 먹으면서 열심히 달려 타테브에 도착하니 오전 11시가 넘었네요. 2010년도에 할리브조르에서 타테브까지 이어주는 "타테브의 날개"(The Wings of Tatev)란 별명을 가진 케이블카가 완공되어 운영되고 있는데요, 이 케이블카는 중간 기착지가 없이 직선으로 연결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차를 운전해 온 우리는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케이블카를 탈 필요가 없기에 구불구불 산길을 달려 수도원에 도착하였습니다.
타테브 수도원(The Tatev Monastery)은 슈니크 지역의 주교좌 교회이자 역사 속에서 이 지역의 경제, 정치, 문화, 영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곳 타테브 고원지역에는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이교도 사원들이 있었습니다. 이 이교도 사원은 아르메니아가 기독교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평범한 교회로 대체되는데요, 9세기에 이곳 슈니크 지역의 주교좌가 이곳에 설치되면서 교회가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기존 건물 옆에 새로운 교회를 건축하였고, 이 지역 왕실의 재정지원도 받게 되지요. 11세기에 이 수도원에는 약 1천명의 수도자들이 생활하였고, 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이 이곳에 소속되어 일했을 정도로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12세기에 수도원은 셀주크 투르크의 공격과 123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특히 셀주크 투르크는 수도원을 약탈하고 약 1만여권의 필사본 성경과 서적들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도원은 다시 재건되었고, 14세기에는 수도원 안에 대학이 설립되어 아르메니아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7, 18세기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고 기존 건물을 복원하는 등 새롭게 태어난 타테브 수도원은 18세기 말에 다시 페르시아 군대의 침략을 받아 약탈당했으며, 19세기에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예레반 교구의 일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20년에는 러시아 붉은 군대가 들어와 아르메니아를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하고 이곳 슈니크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 편입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애국지사들이 이곳 타테브 수도원에 모여 "오등은 자에 아 아르메니아가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 하면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는데요, 당시 정치 및 군사지도자였던 가레딘 느즈데(Garedin Nzhde)는 이 독립선언서 발표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산악공화국을 선포하고 군대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붉은 군대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습니다. 6개월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패퇴한 가레딘 느즈데는 타테브 수도원 맞은 편에 보이는 산을 넘어 이란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고 하네요...
이런 이유로 아르메니아인들은 타테브를 민족혼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수도원 내부에 보면 전투를 위한 병영같은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잦은 외부의 침략에 방어하기 위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높은 성벽을 쌓았던 것이지요. 이런 타테브 수도원의 역사와 중요성을 알고 보면 예배당 뿐 아니라 구조물 하나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수도원의 전경과 내부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지요.
* * * * *
수도원에 들어가는 입구가 마치 튼튼한 요새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돌로 정밀하게 쌓아올린 성벽이 보이시죠? 색깔이 밝은 돌들은 추후에 보수한 흔적들입니다.
타테브 수도원은 세 개의 교회와 행정동, 그 외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교회가 주교좌 교회 건물인 베드로와 바울교회(St. Peter and Paul Church)입니다. 이 건물 뒤에는 조명자 그레고리(St. Gregory the illuminator)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건물에서 유구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네요.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에 바로 보이는 교회가 바로 세 번째 교회인 거룩한 어머니 교회(The Holy Mother Church)입니다. 오른쪽에 무너진 잔해는 17세기 이전까지 존재했던 교회일 것 같습니다.
수도원의 중심에 있는 베드로와 바울교회 입구입니다. 저 종은 아침 저녁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였겠지요. 또한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 그리고 적의 침입이나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수도원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알리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울교회 내부입니다. 무척 간소하지요? 모든 예배를 서서 드리는 정교회와 달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연로하신 분이나 몸이 불편한 이들이 앉아서 예배할 수 있도록 장의자도 몇 개 설치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젊은 수도사 한 분과 사도교회의 전통과 교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장로교회의 전통에 대해서 20여분간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젊은 수도사지만 세계교회의 역사와 자신들의 전통에 대해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영어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주후 560년에 있었던 칼케돈 공의회 이후 서방교회 및 동방정교회로부터 분리해 나온 교회로서 시리아교회의 야곱파(Jacobites)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단성론을 따르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자신들이 단성론자로 불리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더군요. 로마 가톨릭과는 사도교회측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인정해 주고 교황은 사도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이른바 귀일교회(Uniate churches , 歸一敎會)로서의 위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 칼케돈파인 콥틱정교회나 시리아정교회, 에디오피아정교회 등과는 교리가 완벽히 일치하여 서로 활발하게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는 두 명의 카톨리코스(Catholicos)와 두 명의 총대주교(Patriarchates)가 있으며, 현재 약 900만 명의 성도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는 아내의 뒷모습에 포커스를 맞추고 촬영했는데 분위기가 경건하게 느껴지네요.
아르메니아의 수도원들은 정부의 지원을 일부 받지만, 이와 같이 성도들이 기도하기 위해 꽂는 초를 판매하는 수익금이 주요 운영재원으로 사용됩니다.
이곳은 베드로-바울교회와 연결된 구조로 되어 있는 조명자 그레고리교회(St. Gregory the illuminator Church)의 강단모습입니다.
예배당 돌벽에는 수많은 십자가와 성경구절, 짧은 기도문, 그리고 이곳에서 전쟁 중에 순교한 이들을 추모하는 글까지 다양한 글귀와 문양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곳이 성 그레고리교회의 입구입니다.
17세기 이전 아주 오래된 건물잔해에서 모아놓은 십자가 작품들입니다.
아르메니아에는 이처럼 독특한 형태의 십자가인 하츠카르(Khachkar)를 돌에 새기는 전문 장인들이 많습니다.
족히 수백년은 넘었을 이 돌비에는 아르메니아 문자와 기하학적 문양이 정말 정밀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 돌비문 역시 참 마음에 들어 담아왔습니다.
10세기 경에 세워진 가바잔 시운(Gavazan Siun)이라고 불리는 이 돌 기둥은 성 삼위일체께 헌정된 기념물인데요. 교회의 남쪽에 위치한 이 기둥은 8m 높이로서 그 꼭대기가 아르메니아 십자가인 카츠카르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기둥의 주된 목적은 가벼운 지진의 진동을 측정하여 경고함으로써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조기경보체제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네요.
베드로와 바울교회와 성 그레고리를 한 앵글에 담아보았습니다.
성 그레고리 교회 출입문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 컷 담았습니다.
이곳은 수도원의 주방입니다. 주방 좌우로 다양한 방들이 이어져 있는데 아마도 수도사들의 생활공간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울교회의 측면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앵글로 최대한 왜곡없이 담아보았습니다.
성 그레고리교회 뒤쪽으로 돌아가니 역시나 십자가 새겨져 있는 돌벽이 이어집니다.
온 세상의 언어가 하나가 되거나, 제가 모든 언어들 읽고 들을 수 있는 은사를 얻어 이런 글들을 모두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어와 힌디어, 그리고 약간의 독일어와 라틴어 정도를 이해하는 제게는 꿈만 같은 일입니다.
옆의 부속건물이 나오도록 사선 구도로 각도를 잡아 다시 한 번 전경을 담았습니다.
성모교회 위 테라스에서 담은 측면 사진입니다. 주변이 푸르러서 좋네요...
수도원 요새 바깥쪽에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올리브 기름을 짜내는 올리브유 생산공장이 있습니다. 간단한 안내부스도 있고, 설명도 잘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수도원에 소속된 주변 마을에서 모아온 농산물들을 가공하고 기름을 짜는 일을 했다고 하는데요, 중세시대 이 수도원은 주변 47개 마을을 소유하고 있었고, 677개의 마을로부터 십일조를 받았다고 하니 그 부와 권력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주교는 막강한 권력과 힘을 가진 종교귀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착유기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적혀있었는데 미처 그 설명을 담아오지 못했네요..ㅠ.ㅠ
당시에 이런 기계장치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은 이런 대규모의 수도원이 아니면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런 장치로 대량으로 올리브유를 생산하여 다른 지역 및 주변 나라들에 공급함으로써 수도원은 많은 재정수익을 얻을 수 있었겠지요.
지금부터는 타테브 뷰포인트 언덕에 올라가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날씨가 맑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대의 풍광은 탄성을 자아낼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저 바위절벽에 석벽을 쌓고 그 위에 수도원을 건축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맞은편 높은 언덕 위에 작은 두 개의 기둥이 보이죠? 거기서부터 사진의 왼쪽 끝 중간부분의 건물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중간 기착지 없이 바로 오는데 타보신 분들 말로는 전혀 흔들림도 없고 아주 편안하다고 하네요. 출발하여 도착하는데 약 13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타테브 수도원은 유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등재되어 심사중이라고 하네요. 그 역사성과 아름다움으로 보면 등재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평생 다시 올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세로구도 사진을 담지 않을 수 없더군요...^^
처음 촬영했던 곳에서 조금 위치를 이동하여 담아보았습니다.
망원을 이용하여 수도원의 세 교회를 한 앵글로 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미디움 샷!
셔터를 누를 때의 짜릿한 감동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 □ ■ □
타테브 수도원 하나 포스팅하는데 무려 세 시간 이상이 소요되네요..ㅠ.ㅠ
코로나19로 인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은데,
이렇게 정리하고 글을 쓸 수 있음도 감사할 때가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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