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풍경 - 초 모리리

2015. 4. 2. 13:46인도이야기/인도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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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다크 풍경 - 초 모리리
Sceneries of Ladakh - Tso Moriri


티벳어로 '초'는 물이 담긴 호수를 의미한다.
힌디어로 호수를 일컫는 말은 '딸'이다.
우타르칸드 히말라야 산록에 가면 딸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시가 여럿 있는데
가보면 어김없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호수를 하나씩 품고 있다.

라다크 지역에는 히말라야 높은 산들에 둘러쌓인 아름다운 호수가 몇 곳 있다.
영화 세 얼간이를 통해 우리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판공초(Pangong-Tso).
판공초보다 접근이 쉽지 않은 오지에 있는 초 모리리(Tso Moriri).
그리고 레에서 초 모리리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작은 호수 초 까르(Tso Kar) ....

이들 호수들은 지구상에 대규모 격변이 일어나 히말라야가 생성될 때 탄생했다고 본다.
그 증거는 이들 호수들이 지금도 소금기가 남아있는 염호(鹽湖)라는 사실이다.
물론 히말라야 곳곳에는 암염이라고 부르는 소금광산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레에서 270km 거리에 있는 초 모리리는 처음 라다크를 찾았을 때는 엄두를 내지 못했고,
2012년도에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님 내외분을 모시고 가족여행으로 처음 만났다.
아이들을 떠나보내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라다크를 여행해보고 싶다는 바램이 있었기에

찬디가르에서 험준한 히말라야 골짜기 골짜기를 지나 직접 차를 운전하여
라다크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던 끝에 마침내 이곳에 이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여행에 얽힌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따로 들려줄 기회가 있으리라.

초모리리에 도착했을 때는 설산의 봉우리 끝에 아름다운 황혼이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 호수에 이르는 길들도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했던지...운전을 하고 있어서
대부분은 눈으로만 담아두어야 했었기에 아직도 참 아쉽게 느껴진다.
산구비를 돌아 초 모리리가 한 눈에 펼쳐지는 지점에 왔을 때의 감동이란....!!
판공호수와는 또 다른 신비스러움과 조화가 느껴지는 곳이 초 모리리였다.

몇 곳 수소문하여 텐트 숙소를 잡은 후에 냇가의 둑을 따라 호숫가로 나갔다.
호수 주변에는 흙으로 지은 소박한 집들, 양떼 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보니 상당히 큰 규모의 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아직 추수때가 이르지 않은 밀밭과 조, 콩 등을 심은 밭들이 서로 이웃하며
호수주변 물이 공급되는 곳에 아름다운 초록벌판을 이루고 있었다.

판공초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일부 시설 외에 호수주변에 거주하는 이들을 만나기 쉽지 않지만
초 모리리 주변에는 작은 몇 개의 마을들이 오손도손 자리잡고 있어서
이 험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과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들은 유목민들답게 영하 30도에 이르는 혹한이 밀려드는 겨울에는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했다가 눈이 녹기 시작할 무렵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한 호수.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호사는 평지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고통스런 댓가를 요구한다.
산소가 희박하다보니 밤에 텐트 안에서 잠잘 때에 호흡이 곤란하여 온몸을 옹크려야 했고,
거의 10분마다 잠을 깨야 할만큼 숙면을 이루기 어려웠다.

우리가 모시고 갔던 찬디가르의 실버 선생님은 아예 눕지 못하고 밤새 서 있어야 했을 정도였다.
8월 한 여름인데도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는 그에 덧붙여진 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 모리리는 내가 태어나서 보았던 세상의 풍경들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2012년 8월,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두 아들 예랑이 하형이와 함께

 

초 모리리 가는 길에 만나는 그림같은 작은 호수

이 호수의 차가운 물속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문득 들었다.

초모리리에 가까워지면 미국의 대평원을 달리듯 가슴 넓은 벌판이 우리를 감싸준다.

언덕을 구비돌아 나오면 갑자기 태고의 아름다움이 눈 앞에 펼쳐진다.

초모리리 호수 주변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

따스한 햇살 아래 냇물에서 빨래하는 일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발로 밟고 두드리고... 안전한 빨래를 위해서 칭얼대는 아이를 위한 간식과 음료는 필수다.

엄마와 딸이 어울려 한참을 밟아대노라면 어느덧 서산에 하루 해가 기울어 간다.

철조망은 마을과 밭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빨래를 널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따스한 햇살을 즐기는 캐시미어 염소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야크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밭을 돌보러 나온 한 아낙네의 발걸음은 한결 여유롭다.

쪽빛 호수를 품에 안은 그대들에게 주의 축복 있으라!

빙하수가 녹아들어오면서 이룬 삼각주들이 무질서 속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멀리 보이는 마을과 쭈빗 고개를 내민 설산이 묘한 신비감을 불러 일으킨다.

아..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호수... 하늘이 호수가 되고 호수는 하늘이 되고....

호수는 꿈이 모여드는 곳, 사랑이 흘러드는 곳....

흐르고 흘러 우리는 이렇게 한 곳에서 다시 만나리....

가족의 이름으로 이 땅에 왔고, 가족의 이름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으리...

호수처럼 맑고, 호수처럼 푸르고, 호수처럼 넉넉하게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접사렌즈가 없어도 추운 겨울을 견디어낸 풀꽃 하나를 담아오는 건 나의 작은 행복.

아, 아름다운 생이여...! 연두빛 속삭임으로 내 곁에 다가오라.

허수아비는 언제부터인지 새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

하늘과 산과 물과 풀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한 몸으로 연합된 우주였다.

꿈은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과 연결되어 있기만 하다면...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춥고 헐벗은 땅도 생명이 어우러져 살 수만 있다면 충분히 아름답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는 죽는 순간까지 이곳이 고향으로 남아 있으리라.

철조망 울타리에 오색빛 사랑이 주렁주렁 열렸다.

나도 당당한 이 마을의 가족이랍니다~

자, 빛이 있을 때 집에 가야지? 너무 늦어지면 후회할거야...

때로는 장애물도 있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할 때 이렇게 빠져나올 수 있단다.

아들 같기도 하고 딸 같기도 한...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 가는 길.

살다보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음을, 누군가의 사랑, 누군가의 인도가 절실함을 느끼는 날이 있다.

추운 밤이 지나고 멀리 동쪽 하늘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새벽의 호수는 그림처럼 잔잔하고 평화롭다.

담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가까이 있어 체온을 나누어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춥고 어두운 밤도 두렵지 않다.

춥고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햇살은 저 봉우리를 비추고, 우리의 마음에 스며든다.

호수는 다시 빛나는 또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호수를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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