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카르 - 밝아오는 아침을 맞으며

2015. 12. 19. 16:48인도이야기/인도여행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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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 - 밝아오는 아침을 맞으며
Pushkar - The Last Story of Camel Fair



푸쉬카르 들판에 다시 해가 뜨고 아침이 찾아왔다.
춥고 황량한 사막의 기나긴 밤이 지나고 드디어 따스한 햇살이 대지를 비춘다.
낙타도, 사람도 스며드는 햇살을 감사함으로, 축복으로 받는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
아직 잠에서 채 깨지 않은 아들이 엄마 품에서 칭얼거린다.
허리와 다리에 드러난 맨살이 유난히도 춥게 느껴진다.


아이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따스한 눈빛.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장면이 아닐까...


아이가 드디어 울음을 그쳤다.
두 모자는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포즈를 취해주었다.


일가족이 나무 아래서 낙타와 함께 밤을 지냈다.
조그만 모닥불에 몸을 녹이는 동안 여인들은 아침 식사준비에 바쁘다.


낙타가 거래되는 들판에는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는 탱크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붉게 물든 여명과 낙타, 그리고 그 주인이 만들어내는 반영이 잔잔한 물에 그대로 전해졌다.


담요를 뒤집어 쓰고 삼삼오오 모여 아침 인사를 나누는 라자스탄 촌부들...
거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신뢰와 의리를 지키며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리라.


어쩌면 오늘이나 내일, 혹은 며칠 후에 다른 주인을 섬기게 될지도 모르는 이 낙타는
자신에게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알고나 있을까...
그저 하루 하루 주어진 날들을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만 남아 있다면 
그 삶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문득 낙타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밤새 무릎을 꿇고 잠들었던 낙타가 힘찬 포효와 함께 깨어나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서 바꿔 가져온 카메라는 틸트액정이 설치 되어 있어서 이렇게 로우앵글로 
세상을 담아내기에 참 좋다.


수천년 동안 지속되어 온 유목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막지역.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어디든 자리를 펴고 머물 준비가 된 사람들....
그러려면 가진 것이 많아서는 곤란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것들 외에 우리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늘 내가 갖지 못한 또 다른 무엇을 차지하기 위해 아우성이다.


라자스탄 남자들은 모두 이런 형태의 터번을 만들어 머리에 두른다.
시크교도들이 쓰는 터번과는 사뭇다르다.
무슬림들이나 유대교도들이 머리에 쓰는 키파와 같은 것들 역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라 하겠다.
라자스탄 남자들은 터번을 쓸 때마다
과거 외세의 지배에 끝까지 대항하여 싸웠던
라지푸트 전사들의 정신을 기억한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추위 속에서 긴 밤을 지내느라 낙타도 사람도 배가 고프다.
우리는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동물들은 모두 풀을 먹는다.
코끼리, 하마, 황소, 낙타, 기린 등등...
풀을 먹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온유하고,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날카로운 이를 가진 동물들이 싸움에서는 승리할지 몰라도
정작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동물들은 온유한 초식동물들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투쟁적이고 전투적인 사람들,
싸움을 잘하고 이익을 챙기는데 지나치게 날렵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살아남는 이들은 아마도 온유하고 겸손한 이들일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 하늘에 떠가는 풍선기구를 바라보는 낙타...
아마도 낙타에게도 호기심이 있겠지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한정되어 있으리라.

낙타들이 풍성기구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모르겠고 이해할 수 없으면 그냥 받아들여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그런 일들이 많다.


우리는 혼자서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가족과, 이웃과, 동물들과,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다.
그 모든 것들의 한 부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우리를 지으신 분의 뜻이 아닐까.


밀이나 볏짚단들을 잘게 썰어 만든 사료를 낙타들은 가장 좋아한다.
과거에 낙타사파리를 해본 경험에 의하면, 
낙타들은 때로 정말 도저히 먹을 수 없을만큼 딱딱한 나뭇잎,
심지어는 잔 나뭇가지들까지 씹어서 양식으로 삼는다.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거친 사막에서 먹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물과 영양을 비축해 두려는 본능일 것이다.


낙타가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묶어 둔 로프.
로프가 없다면 자유롭게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로프는 낙타와 주인과의 관계를 지속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은 낙타가 로프에 매여 있어야 할 때와
그것을 풀어놓아 자유롭게 해 줄 때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낙타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주인과의 관계속에서 얻어지는 자유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도 이런 로프들이 있다.
우리를 속박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그런 로프들 말이다.
하지만 로프를 끊고 자유를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자유로워지는 길일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가난하고 돈이 없어도 짐승들의 배를 곯게 하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
부려먹기도 하고, 나중에는 잡아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동안 만큼은 가족처럼 가축들을 돌봐주던 측은지심...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공존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무 질서도 없이 흩어져 있는 것 같은 낙타와 사람들...
그러나 이런 카오스 속에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코스모스가 존재한다.
인생의 모든 요소들이 항상 반듯하게 질서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러나 복잡하고 혼재되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세상 한 복판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산등성이로 드디어 해가 따스한 햇살을 던지며 솟아오른다.


가늘고 긴, 그러나 사막에서 가장 강인하게 제 역할을 감당하는 낙타들의 다리 사이로
아침 햇살이 강렬한 빛을 던진다.


붉은 빛줄기과 푸르른 하늘,
낙타들의 실루엣이 절묘하게 한 화면 안에 들어왔다.
이럴 때 셔터를 누르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무릎을 꿇고 낮은 앵글로 바라볼 때만 보이는 장면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은 항상 고정된 생각을 가져온다.

때로는 내려다보고
때로는 올려다보며
때로는 거꾸로도 볼 수 있어야
우리는 세상과 사람들을 바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낙타들은 다른 어떤 짐승들보다도 주인을 잘 알아보고
자신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한다.

우리가 부르는 주님이라는 말은 이런 고백이다.
"당신은 나의 주인이고, 나는 당신의 명령을 따르는 노예요, 가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인을 잊고 살고, 주인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고,
주인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평범하게 날리는 먼지들도 햇살을 받으면
이렇게 빛이나고 아름답게 변모한다.
먼지와 같은 인생, 참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싶은 인생도
그 인생에 빛이 비추는 날 이렇게 빛나고 아름답게 바뀔 것이다.


빛은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사물의 아름다운 선을 살려서 보게 해준다.
특히 역광이 그렇다. 
역광은 풍성한 컬러를 빼앗아가는 대신에
잃어버린 선의 아름다움을 되찾아준다.

평소에는 무심하다가도 빛이 비추는 순간,
그 아름다운 선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역광에 밝게 빛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머리카락들,
역광에 비추인 호박 넝쿨손의 섬세하고 보송보송한 털들...
역광이 만들어내는 마술과 같은 드로잉은
항상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사내가 태양의 아우라를 지닌 영웅이다.


부디 오늘 하루도 행복한 날 되기를...!


따스한 햇살이 밤새 차가워진 마음들을 녹여낸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는 모래가 물이요, 모래가 세제이다.
그릇을 모래로 닦아내면 정말 깨끗하고 깔끔하다.
오가는 대화 속에 푸쉬카르 들판의 하루가 시작된다.


유목문화에서 어른들의 의견은 법적인 효력을 지닌다.
특히 나이가 많은 마을의 원로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 줌으로써 공동체의 전통을 이어간다.

구약성경 잠언에 보면 고대근동의 유목문화에서
노인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구절들이 있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20:29)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16:31)

디지털 세상이 된 오늘날, 노인의 지식은 더 이상 예전처럼 평가받지 못한다.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잔소리로 폄하되기 일쑤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이 살아온 세월에, 그 고난에, 그리고 그 희생과 헌신에
겸손히 머리숙여 감사하고 그 분들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낙타는 주인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인이 지시하는 명령을 정확히 이해한다고 한다.
비록 조건반사적인 행위일지라도
우리 사람들이 낙타의 그런 점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저 낙타는 왜 몸부림을 치고 있을까...
덕분에 나는 이렇게 멋진 사진 한 컷을 얻긴 했지만...^^


55km 떨어진 마을에서 직접 낙타를 몰고 온 이 아저씨는 
어제 아침에 집에서 출발하여 해질녘에 이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낙타 두 마리를 팔기 위해 왔다는데 그 돈으로 딸을 시집보낼 것이라고 했다.


라자스탄의 전통신발을 신은 이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서 온 친척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오늘 복이 임하기를....!


낙타들의 표정이 마치 미소를 짓는 것 같다.
사막에서 최고로 강인하고 또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동물...
애매하게도 메르스의 주범으로 몰려 한 동안 미움을 받았지만
낙타는 어디서나 소중하고 환영받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만큼 세상에서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누구나 좋은 친구를 원하지만 내가 과연 좋은 친구인지를
돌아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문제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담배 한 모금을 빠는 노인의 여유...


옆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같은 풍경인데도 생동감을 더해준다.


낙타축제 기간 동안 이곳에 모이는 낙타가 3만 마리가 넘는다고 하니
그 장관을 제대로 보려면 기구를 타던지 헬기를 부르던지,
드론을 날리던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같은 뜻을 품고,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하지만 내 곁에 있는 동료들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참 많았다.


낙타시장이 들어선 들판....
이 도로의 오른쪽으로는 푸쉬카르 시내와 낙타축제가 벌어지는 카멜 그라운드가 자리잡고 있다.


낙타를 위해, 가족을 위해 모두 아침식사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간이다.


이 낙타는 평생 주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것 같다.
누가 아무리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선명한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늘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했던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낙인)을 가졌노라"
(갈라디아서 6:17)


축제에 참여할 낙타들은 지금 꽃단장이 한창이다.


낙타의 배설물을 모아 짚단 및 진흙과 배합하여 연료를 만들었다.
낙타의 배설물은 땔감이 부족한 사막지역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원이다.
세상에 더러운 것이 어디있고, 쓸모없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만드는 기준일 뿐이다.


낙타는 여인을 좋아해~
아내에게 키스하려고 기습하는 이 녀석을 내가 어찌해야 할꼬..!


사두께서 아침 공양을 얻으러 여기까지 납시었다...^^
사두 아저씨 굳모닝! ~


어디서나 마술 쇼는 행인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별로 신기한 장면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혹시라도 뭐가 나올까 싶어 자리를 뜨지 못한다.
그 중에는 물론 나도 있었다...^^


저 아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마술사의 지시에 따라 공을 쳐올리기도 하고,
머리를 위로 쳐들기도 한다.
저 상자에서 뱀도 나오고, 원숭이도 나왔다.
마지막에 저 상자에서 나온 것은 한 어린 소년이었다.
그 좁은 상자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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