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기독교사상 연재 (1) - 인도 기독교 사상의 출발점

2020. 10. 4. 17:32인도기독교 이야기/인도기독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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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빈 보이드 박사(Dr. Robin Boyd)

제가 번역하여 지난 달에 출간된 로빈 보이드(Robin Boyd) 박사의 "인도 기독교 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들을 발췌하여 약 30회에 걸쳐 저의 블로그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물론 책 전체의 내용에 비하면 지극히 일부가 되겠지만, 인도 문화와 종교, 철학을 재해석하여 기독교 신학에 적용하고자 오랜 세월 고투해온 인도 기독교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영성과 신학이 좀 더 풍성해지고 확장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서의 저자 로빈 보이드 박사는 북아일랜드 출신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며 선교사로서 부모의 뒤를 이어 북인도 구자라트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였습니다. 구자라트 연합신학교의 학장으로 오랜 기간 봉직한 그는 '인도 신학에서의 교의신학의 자리'라는 논문으로 에딘버러대학교의 Ph. D를 받았는데, 본서는 그 논문을 발전시키고 보완하여 완성되었으며, 인도 기독교 신학을 가장 체계적이며 알기 쉽게 요약정리한 책으로서 인도의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초기 몇 백 년 동안 그리스 세계에서 기독교가 적응하고 그리스 철학 사상의 특정 범주를 사용하게 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의해 충격을 받게 된다. 이는 곧 초기 기독교가 ‘세속화된’ 그리스 철학 사상 및 철학적인 용어들을 수용했지만, 그리스의 종교와 신화는 철저하게 배격했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 종교는 점차 세속화되었다. 한때 종교와 통합체로 존재했던 철학은 종교로부터 분리됐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시대로부터 이미 세속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종교의 내용은 문화와 문학, 예술적 실체로 발전했으며 오르페우스와 신비주의 전통을 제외하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생동감 있고 실존적인 신앙으로부터 ‘압축되고’ 분리되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사본을 수도실 초가지붕에 숨겨놓고 종교 지도자가 지켜보지 않을 때 은밀하게 꺼내 읽던 중세 수도승들은 그리스-로마의 이교주의로 되돌아가지 않으면서, 단순한 수도원 생활이 그들로부터 빼앗아 가버린 예술적, 문화적 출구와 자극을 찾고 있었다. 예전 그리스 신들은 죽었지만, 그 정신은 유럽의 문학과 문화적 유산 속으로 전해져 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을 보존한 것은 바로 교회였다. 그리스 종교는 철학으로부터 분리된 채 세속화됐으며, 보존되었고, 마침내 르네상스 시기에 근대 유럽 문화에 포함되었다.

기독교 시인과 철학자들, 미술가와 심지어 신학자들까지도 캡슐에 넣어진 그리스 종교와 신화를 자신들의 작품에 주저하지 않고 사용했다. 밀턴(Milton)으로부터 엘리어트(T. S. Eliot)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라인홀드 니버와 같은 신학자들에게도 그리스 종교의 신화적 유형과 이야기들이 기독교적인 주석을 위한 배경과 예증을 제공해 왔다. 기독교 문화는 좀처럼 뮤즈의 신들과 미의 여신들을 추방하지 않았고, 그리스 비극의 내용은 때때로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힌두교에도 이와 비슷한 발전 가능성이 있을까? 일반적인 대답은 힌두교의 철학과 종교가 그리스의 그것들보다 더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은 거의 전적으로 세속적이었던 반면 힌두 철학은 종교이며, 상까라(Sankara)와 라마누자(Ramanuja)를 위대한 철학자들임과 동시에 위대한 종교적인 인물들로 간주한다.

그러나 현재 힌두교 내에서 세속화의 급속한 이동 과정이 진행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외견상으로 이러한 경향은 인도인들이 세속국가를 건설한 데서 볼 수 있다. 카스트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이전의 관습법들과 구별하여 모든 공동체에 대한 입법을 단일화하며, 그렇게 유효하게 만드는 경향이 증가하는 것은 종교적 제재가 갖는 지배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그것이 보편적이고 세속적인 입법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동시에 람 모한 로이(Ram Mohan Roy) 시대로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온 일반 세속화 과정은 여전히 추진력을 얻고 있으며, 최근의 연구들은 현재의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서구의 젊은이들과 거의 똑같이 세속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중 힌두교의 전통적인 경건성이나 심지어 힌두교의 보다 더 철학적인 형식들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대중을 힌두교의 종교적인 신화들과 동화시키는 주요 매체는 영화이며, 거기서 힌두교의 위대한 이야기와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서사시와 뮤지컬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서양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장엄한 성서 영화가 현재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힌두교의 이런 형태가 거의 전적으로 세속화되고 캡슐화되어 있다는 사실, 즉 깊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다.

철학적인 힌두교는 전통적인 신화로부터 상당히 큰 폭으로 단절된 것처럼 보인다.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나 라다크리슈난 박사의 저술들은 전통적인 철학 체계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예화로 쓰기 위한 목적 외에는 ‘신화’(mythology)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 같다. 철학적인 힌두교는 전반적으로 ‘비신화화’(demythologized)되어 왔다. 이는 단순히 인격적인 신을 향한 헌신의 종교라는 개념을 뛰어넘은 일원론, 혹은 아드바이타(advaita)의 승리만은 아니다. 이는 신화로 가득한 전통적인 힌두교를 넘어선 비신화화된 힌두교의 매우 광범위한 승리이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이미 그리스 종교가 걸어갔던 길을 제대로 따라 걷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신학자들이 여전히 종교적 힌두교라고 주장하는 범주를 사용하고 적용하는 것이 합법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힌두교는 이미 매우 광범위하게 세속화되어 있다.

‘힌두’(Hindu)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이 단어는 전적으로 신화적인 힌두교를 묘사하는가? 아니면 특정한 철학적-종교적 체계들을 뜻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인도의 문화’와 동의어인가?

우리는 몇몇 인도인 기독교 신학자들, 특히 브라흐마반답(Brahmabandhab)이 기독교는 문화적, 세속적 힌두교와 양립할 수 없었다고 믿어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관점이 의미하는 바를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든 신실하고 유능한 신학자들과 동일하게 인도의 기독교 신학자들에게도 두 가지 주요한 관심사가 있다.

첫째는 자기 삶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경험과 지식에 대해서 신실함을 지키는 것으로서, 이는 그가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게 된 그 원천들에 대한 충성심을 포함한다. 둘째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과 같은 지식에 이를 수 있도록 자신이 이해하고 경험한 것을 해석하고 선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신학자는 자신의 동시대 사람들과 동포들이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중요성에 대해 선포해야 하며, 이는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설득력 있는 선포라는 문제를 포함한다. 자신의 동족들에게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선포하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도록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은 신학자가 추구해야 할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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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은 본 필자가 번역한 도서 「인도 기독교 사상」(Robin Boyd 저, CLC, 2020)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전제를 금하며, 혹시 인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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