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교회사 인물열전 1> 인도교회의 뿌리 - 사도 도마

2020. 10. 7. 13:29인도기독교 이야기/인도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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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회 역사를 서구교회와 동일하게 2천년으로 잡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바로 사도 도마에 의해 설립된 교회라는 전승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교회들, 특히 시리아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교회들은 이 도마전승을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도교회사의 인물들을 다루는데 있어 첫 번째는 당연히 사도 도마여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사도 도마가 인도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를 설립했다고 하는 도마전승은 그동안 인도기독교 역사연구에 있어서 핵심적인 토론의 주제가 되어 왔습니다. 이 전승에 대한 여러 논란과 진위여부를 따져보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 시리아 기독교인들 사이에 한결같이 전해져 온 이 전승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도마전승은 사실상 16세기에 인도에 도착하여 최초로 말라바르에 있던 시리아 기독교인들과 접촉한 포르투갈인들이 수집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그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시의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송되었는데, 그 열 두 사도 중 하나였던 도마는 인도를 사역지로 받았다고 합니다.

도마는 아프리카 북동부 연안과 연결되는 아라비아해의 한 섬인 소코트라(Socotra)를 방문한 후, 주후 52년경에 남인도의 서해안으로 항해하고, 현재 코친의 후미진 북쪽 지역인 페리아(Periah)의 크랑가노르(Cranganore), 즉 오늘날 꼿등갈루루(Kodangaluru) 해변에 상륙하였습니다. 도마는 이미 그곳에 정착해 있던 유대인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들과 토착 인도인들 모두에서 개종자를 얻었다고 합니다. 지금 꼿등갈루루에는 도마가 상륙했다고 추정되는 해변에는 사도 도마 상륙기념교회인 마르 토마 시로-말라바르 가톨릭교회(The Mar Thoma Syro-Malabar Catholic Church)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도마는 말라바르 지역의 남쪽 연안을 따라 전도여행을 계속하는 가운데 일곱 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 일곱 교회가 설립된 지역은 말리안까라(Maliankara), 빨라유르(Palayur), 빠루르(Parur), 고까망갈람(Gokamangalam), 니라남(Niranam), 차얄(Chayal)과 퀼론(Quilon)으로서, 이중 네 곳에는 아직도 그 전승에 기초한 시리아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도 도마는 말라바르를 떠나기 전에 그곳의 브라민 네 가정을 교회의 장로로 안수하였는데, 그들의 이름은 상까라뿌리(Sankarapuri), 빠칼로마땀(Pakalomattam), 깔리(Kalli)와 깔리안깔(Kaliankal) 등입니다.

이 일 후에 그는 동쪽 해안으로 건너갔으며, 거기서 동쪽으로 현재 말레이 반도를 의미하는 말라카(Malaka)는 물론, 심지어 중국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여행을 마친 후 도마는 다시 지금의 마드라스(Madras) 인근 지역인 마일라포르(Mylapore)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순교당하기까지 그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도마의 설교는 브라민들의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고, 그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소요를 일으켰으며, 이 소요의 와중에 군중들의 창에 찔려 죽었다고 합니다. 도마의 순교 시기는 대략 주후 72년경이라고 합니다. 

도마의 시신이 묻힌 곳에 세워진 산 토메 성당과 사도 도마의 상

 

이와 같은 도마의 인도사역에 대한 전승은 그 진위여부와 이 전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오랜 세월 논란거리가 되어왔습니다. 분명히 확인되는 것은 이 전승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3세기 이래로 지금까지 시리아정교회를 중심으로 확고한 신념으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남인도에 방문한 방문자들의 기록입니다.  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베네치아 출신 여행자 마르코 폴로는 1288년과 1292년에 두 차례에 걸쳐 남인도를 방문하여 도마의 유적지를 보았던 기록을 견문록에 남겼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고 거기서 사도 도마의 것으로 여겨지는 무덤 하나를 발견했으며, 그 무덤은 인도의 그리스도인들과 이슬람교도들 모두의 성지였다고 한다. 이 작은 마을은 통상 마일라포르로 추정됩니다.


그 후 14세기와 15세기에 남인도를 방문한 다른 유럽의 여행자들도 사도 도마의 교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인 니콜로 드 콘티(Nicolo de Conti)는 이 교회가 ‘인도 너머에 있는 두 번째 만(벵갈만)에 위치한 해변도시 말뿌리아(Malpuria)’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도마의 인도사역을 언급하고 있는 초기 기독교 문헌들로는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의 글, 히폴리투스의 유고집, 열 두 사도의 교훈집 등이 있으나, 여기에 나오는 인도의 위치와 묘사가 과연 지금의 인도대륙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합니다.  
또한 초기 기독교의 위경으로 분류되고 있는 영지주의 문서 '도마행전'(The Acts of Thomas)은 도마의 인도사역에 대해서 가장 풍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지만, 여기에 나오는 인도는 남인도 해변이 아니라, 현재의 북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이란에 걸쳐 있던 나라인 파르티아 제국이었습니다. 도마행전에 등장하는 '군다포루스' 왕이나 그의 동생인 갓(Gad) 등은 실제했던 인물들로서 이를 뒷받침하는 동전들과 비문 등의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전승과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사도 도마가 북인도 또는 남인도 지역에 방문하여 사역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로 인정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아직도 어떤 것이 진실인지 규명되어야 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뭏든 사도 도마는 인도교회의 뿌리로서, 오늘날 인도 기독교인들의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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