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할치헤 사파라 수도원 - 세상의 광기가 멈추는 곳

2021. 1. 30. 11:58세상의 모든 풍경/Georgia

728x90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
날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주변을 살펴야 하는 불안함,

먼 미래는 고사하고
눈 앞의 내일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

내가 옳다고 믿고 신뢰해왔던 것들이
한 순간 무너져내릴 때 느끼는
허무와 공포....

광기에 사로잡혀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물고 뜯는 이리가 되어버린 세상을 떠나

절대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내 삶의 참된 의미와 본질을 살피고 싶을 때,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지친 몸과 영혼을 위로해줄 참된 안식처가 필요할 때,

사파라 수도원은 우리에게 그런
영적인 피난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할치헤 라바티성에서 남쪽으로
불과 30분 정도만 차를 달려가면 만날 수 있는 
사파라수도원(Sapara Monastery)은
최소 주후 9세기 이전에 설립되었으며,
조지아정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한 수도원입니다.
 

사파라 수도원은 울창한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협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는 새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 외에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참으로 평화로운 곳입니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가다보면 만나는 수도원의 정문에는 조지아정교회의 <성 그리골 칸첼리 신학교>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입구에 있는 작은 교회 옆에는 조지아를 상징하는 탐스런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지요...~

13세기에 몽골제국 기마병들이 코카서스를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이 수도원만큼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보존되었는데요... 당시 부호였던 쟈켈리 가문이 이 수도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가문의 지도자 사르기스가 몽골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네요. 사르기스는 훗날 이름을 사바(Saba)로 바꾸었는데, 그후 그의 아들 베카가 아버지를 기념하여 수도원의 중심 건물인 성 사바교회(St. Saba's Church)를 건축했다고 합니다. 바로 사진에 보이는 건물인데요...  건축학적으로 매우 정교하고 미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성 사바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 여행온 어린 남매가 놀고 있었습니다. 위쪽으로 아름다운 종탑이 보이네요..

성 사바교회의 내부입니다.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벽화의 내용은 일반적인 조지아정교회 건물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거의 8백여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역사적인 가치가 있고, 벽화의 수준도 아주 높습니다.

당초 이곳에는 귀한 성물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침략해 오면서 조지아의 다른 비밀장소들로 옮겨져 예배당이 텅비게 되었다고 합니다.

돔의 중앙부에는 부활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가 그려져 있고 주변에는 사도들이 둘러서 있습니다. 돔을 둘러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마치 천상에서 내려와 내 마음을 비춰지는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예배당 내부 정면인데요, 성체성사를 비롯한 중요한 의식들은 저 중앙문 안쪽의 성소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축일 때는 이곳에 조지아정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들이 방문하여 예배를 집전한다고 하네요. 작은 규모지만 신학교가 이곳에서 있어서 신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학생들이 자신들이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사진을 찍지는 않았습니다.

돔의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줄기는 언제나 신비롭지요... 마음의 어둠을 쫓아내고 마음 중심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현장에 서서 조용히 느껴볼 때만 알 수 있습니다.

성 사바교회의 건물은 노랑색과 붉은색 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무척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좁고 긴 창문 주위의 섬세한 장식은 조지아인들의 예술성을 잘 보여줍니다.

계곡 쪽에서 바라본 성 사바교회의 모습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채우기에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담한 교회의 모습... 여행자가 아니라면 며칠이라도 이곳에 머물며 묵상과 기도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집니다.

종탑에 올라가보니 프레스코 벽 주변에 낙서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작은 도마뱀이 누군가의 이름 위에 자리를 잡았네요...^^

종탑에는 두 개의 종이 달려 있습니다. 두 개의 종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은데 자세한 의미는 모르겠네요. 어린 시절 시골 언덕에 있던 교회에서 들려오던 종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이리 저리 어렵게 자세를 취한 후 좁은 아치 사이로 예배당의 돔과 십자가를 넣어봤습니다. 예쁘네요...

누군가의 추억과 기억들로 가득한 벽.. 그 너머로 보이는 십자가와 지붕...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요소가 이렇게 어울리다니... 그러고 보면 우리는 너무 내게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 어울릴 것 같은 물건들만 찾아다닌 것은 아닐지... 전혀 내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상이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편견을 접고 받아들이는 관대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유난히 푸른 하늘 아래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교회당 건물... 곳곳에 수리의 흔적이 있지만 100년도 채 쓰지 못하는 우리의 몸도 시시때때로 수리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수리하고 덧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요즘 세상에서 지탄을 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 속에서 교회가 지니는 가치를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지만 빛이 되지 못하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세상보다 더 썩어가는 교회의 모습을 우리 주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적어도 조지아에서 교회는 사람들의 안식처요, 희망이요, 끝까지 붙들 삶의 기둥이었습니다.

지붕과 탑의 장식이 너무 아름다워 망원을 사용해서 다른 프레임으로 잡아보았습니다. 두 가지 색을 지닌 돌의 조화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처마, 협창 주위를 감싸고 있는 성삼위의 영광스런 광채... 그 아름다움에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다시 이 문을 통해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나갑니다. 때로는 우리 삶에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고요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 사파라 수도원에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차를 주차해둔 곳까지 걸어가면서 길가에서 담은 작은 풀꽃과 나비... 이름없이 핀 풀꽃이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색을 지니고 있을까요.. 이름없는 꽃 한 송이도 그 아름다움으로 창조주를 경배합니다.

접사렌즈가 없어서 비교적 근접 촬영이 가능한 45밀리 렌즈의 간이마크로 기능을 이용하여 담아보았습니다. 

바람을 타고 엉겅퀴 씨앗을 멀리멀리 운반해줄 비행체가 막 이륙을 준비중입니다.
 

보라색의 종꽃이 나무들 틈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을 받았습니다.

보랏빛 종꽃 옆에는 순백색의 종꽃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네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아름다움이 아닌 내가 서있는 그곳에서 언제나 변함없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이상으로 아할치헤 남쪽에 자리잡은 사파라 수도원에 대한 포스팅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