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인도 달리트 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

2021. 2. 4. 14:44인도기독교 이야기/인도기독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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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래된 논문이지만 인도 달릿 신학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글이어서 스크랩해 소개합니다. 저자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해 아쉽습니다. 추후 확인되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달릿신학이 인도의 대표적인 신학으로 소개되어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인도 기독교와 신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주로 인도 남부 마두라에 위치한 CSI 소속 '마두라이 타밀나두신학교'(Tamilnadu Theological Seminary, TTS)를 중심으로 연구되어왔고, WCC의 주류로 활동하고 있는 남인도교단(CSI)와 북인도교단(CNI) 소속의 신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진행중이며, 현장에서의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달릿 신학에 관한 자료는 추후에 계속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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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 달리트 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

저자 : 박성기



들어가는 말


1981년의 통계조사에 의하면 인디아 인구의 약 82%에 해당하는 549,779,481명이 힌두교인, 약 11% 정도인 75,512,439명이 무슬림, 그리고 2.6%인 16,165,447이 그리스도교인이다. 그리고 이들 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약 60%에서 75% 정도가 달리트 출신들이다. 그러나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은 오늘날 인디아에서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달리트이기 때문에 다수의 카스트 힌두인들로부터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교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달리트들을 후원하고 보호하는 정부특별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서도 상위 카스트출신 개종자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힌두교가 지배적인 인디아 사회에서 소수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이들이 선택한 그리스도교는 달리트들에게 어떤 기회와 여건을 제공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그들에게 어떤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가? 본고는, 이러한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교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달리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트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인디아 교회의 자기비판과 그리스도교의 해방성을 강조함으로써 해방자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신앙을 통해 달리트들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출현한 달리트 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인디아 사회에서 이 신학이 갖는 의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새뮤얼 헌팅턴의 표현대로 현대는 종교를 경계로 문명의 단층선이 나누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고 있는 인디아 사회에서 서구적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표방하며 대두한 달리트 신학에 대한 연구는 비슷한 외형적 여건에 처한 수많은 사회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본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들어가는 말에서는 문제제기와 논제의 제시를 통해 논의의 방향을 설정했다. 본론으로 들어가 Ⅰ장에서는 '달리트'라는 말의 의미와 그 지칭대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들의 열악한 지위가 어떻게 카스트 힌두사회에서 힌두경전에 의해 정당화되는지를 살펴보았다. Ⅱ장에서는 인디아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교회와 신학이 달리트들의 현실과 무관하게 되었는지를 고찰하고 Ⅲ장에서는 소수의 상위 카스트 출신의 그리스도교인들이 달리트들을 위한 특별법의 혜택을 거부함으로써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Ⅳ장에서는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달리트신학이 등장하게 맥락과 그 문제의식을 그리고 달리트신학의 주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본 후 본론의 마지막인 Ⅴ장에서 달리트신학이 인디아교회와 사회에 갖는 의의를 고찰하고 글을 맺었다.


Ⅰ. 달리트의 의미와 힌두교 내의 지위


'달리트'란 카스트 힌두사회에서 사성계급 즉,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에도 속하지 못한 카스트 밖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달리트'(dalit)는 '금이 가다,' '열다,' '쪼개다' 등의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 '달'(dal)에서 파생된 말로서 '학대받는,' '짓밟힌,' '파괴된,' '흩어진' 등의 의미를 갖는다. 원래는 억압의 영향을 기술하는 단어였지만 19세기 마라티(Marathi)의 사회개혁가이며 혁명가였던 마하트마 조티바 풀레(Mahatma Jotiba Phule, 1827∼1890)에 의해서 처음으로 카스트 제도로 인해 희생, 착취, 억압받아온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달리트'라는 용어가 오랜 억압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현재의 약탈당하고 억눌린 상태를 가리키는 다분히 이념적 용법으로 사용된 것은 1970년대 마하라슈트라의 달리트 팬더 운동가들에 의해서였고 이들로 인해 '달리트'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특히 오늘날에 와서 '달리트'라는 말은 협의에서 카스트에 기초한 힌두사회에서 네 가지 종성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카스트에서 제외되어 수세기에 걸쳐 억압과 착취를 받으며 인간이하의 삶을 살아온 카스트 밖의 사람들(the out-castes)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이들은 '불가촉민'(the Untouchable) '하리잔'(Harijan) '빠리아'(Pariah) '빤짜마'(Pancama) '전-불가촉민'(the Ex-Untouchable) '지정보호 카스트'(the scheduled castes) 등으로 달리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달리트'라는 명칭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위해 선택한 것으로 그들의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무어라 불리는지는 그들의 자기 정체성과 사회적 이미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달리트'라는 용어는 단순한 명칭이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인간성과 정체성을 되찾으려 하는 그들의 희망이 담긴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달리트가 되었을까? 달리트는 왜 힌두 사회에서 소외되어 차별과 억압을 받아야만 했을까? 카스트 힌두사회에서 달리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달리트로서 낙인찍힌다. 달리트라는 생득지위는 개인이 직업을 전환하거나 부의 축적을 통해 얻게되는 획득지위를 통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지역마다 다르기는 해도 '불가촉천민'이라 낙인 찍힌 사람들에 대한 종교적 혐오감과 편견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달리트가 경험하는 인간이하의 삶은 카스트 힌두 사회 속에서 출생부터 시작해서 일생동안 겪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달리트들로 하여금 그들의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카스트라는 위계질서이고 힌두경전과 법전이 그 안에서 달리트의 열악한 위치에 대한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따라서 힌두교는 이들을 달리트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힌두교의 가장 오래된 문헌인 『리그 베다』의 「푸루샤숙타」에 보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는 카스트의 위계질서는 창조의 질서에서 세워진 것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브라흐만이 그의 입이었으며 그의 두 팔은 라자냐(크샤트리아)가 되었고
그의 두 넓적다리는 바이샤가 되었으며 그의 발에서는 수드라가 생겨났도다.


이것은 단순히 네 종류의 신분의 기원을 종교적으로 기술한 것 일뿐만 아니라 카스트라는 인간의 사회질서가 창조라는 우주적 사건의 고유한 의미와 병합된 것이다. 즉, 카스트는 "우주론적으로 혹은 인간학적으로 이해되는 '사물의 본성'에 속하고 있는 것으로 당연시" 됨으로써 "인간의 어떠한 역사적 노력보다도 더욱 강력한 원천으로부터 안정성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적으로 확고하게 굳혀진 카스트라는 위계는 다시 업과 윤회 그리고 인과응보의 사상과 연결되고 결국 누군가가 겪는 현재의 어려움은 그 자신의 전생의 잘못으로 돌려진다. 『우파니샤드』는 이러한 관점에서 천민의 기원을 설명한다.

그들 중에 선업(善業)을 쌓은 자들은 좋은 탄생을 하는데 사제로 태어나거나, 무인으로 태어나거나, 바이샤로 태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악업(惡業)을 쌓는 자들은 당장 나쁜 탄생을 하게 됩니다. 개로 태어나거나, 돼지로 태어나거나, 천민으로 태어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현재 달리트로 태어나는 것은 그들이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해 벌을 받는 것이다. 즉, 불가촉민이라는 지위는 그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달리트들이 받는 비인간적인 대우는 마땅하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극단으로 나아가 달리트들의 인간성조차 인정하지 않은 것은 『마누법전』이다. 『마누법전』은 달리트들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슈드라와 바이사야 여자, 끄샤뜨리야 여자, 브라만 여자 사이에서는 각각 아요가와, 끄샤따 그리고 가장 비천한 인간인 짠달라와 같은 혼종신분들이 생겨난다.


『마누법전』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자기의 카스트에서 결혼해야 그 카스트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달리트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브라흐만 여성과 수드라 남성의 결합으로 인해 생긴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혐오스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달리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규제가 가해진다.

짠달라와 슈와빠쟈는 마을 밖에 거주해야 한다. 상한 그릇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이들의 재산은 개와 당나귀 뿐이다.
죽은 자의 옷을 입고, 깨진 그릇으로 식사하며, 쇠로된 장신구를 쓰고 항상 떠돌아 다녀야 한다.
다르마를 수행하는 자는 이런 자들과 어울리지 말며 서로 거래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카스트 힌두사회에서 달리트들의 부정적인 지위는 최악에 이르게 되었고, 달리트들은 비천한 일을 하며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정결함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모든 부정하고 더러운 일은 이미 부정한 달리트들이 해야 했고 결국 그들은 카스트를 기초로 한 힌두의 위계사회에서 영구적으로 맨 밑바닥에 위치하게 되었다. 수세기를 걸쳐 지속된 이러한 상황은 그들의 외적인 삶뿐만 아니라 내적인 삶에도 영향을 끼쳤고 달리트들은 그들 자신을 가치없고 근본적으로 결함투성이의 존재로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이하의 존재로 간주하게 하는 사회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요인의 복합으로 인해 오늘날 달리트들은 인디아 사회에서 가난으로 인한 '물질적 불행,'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해 겪는 '정신적 불행,' 그리고 죄책감에서 비롯되는 '영혼의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Ⅱ. 인디아 그리스도교의 역사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이 달리트라는 점에서 다른 달리트들과 공통된 경험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 더욱 특별해 진다. 인도정부가 위촉한 만달위원회의 1980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의 카스트 배경에 근거해서 다양한 종족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같은 교회의 시리아 교인들과 풀라야 교인들은 다른 건물에서 종교 의례를 행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낮은 카스트 출신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와 같은 아주 평등주의적인 종교로 개종한 후에도... 심지어는 몇 세대가 지나도록 그들의 카스트 배경이 가진 영향을 없앨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달리트들은 그리스도교와 같은 평등한 종교로 개종한 후에도 힌두교에서처럼 자신의 카스트 배경으로 인해 차별을 받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인디아의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디아의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오늘날 시리아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이 최초로 정착하던 시기이다. 시리아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사도 토마스가 A.D. 52년 코친(Cochin) 근처에 와서 인디아의 서부해안에 교회를 세우고 20년 후인 72년에 순교했다고 전해지지만 이러한 전승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미약하다. 그러나 적어도 4세기경에는 시리아출신의 토마스라는 이름을 가진 무역상인과 함께 두 명의 그리스도교 이주민이 케랄라(Kerala) 지역에 정착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이들은 초기에 개종자를 만들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루기는 했지만 카스트 힌두사회 속에서 그리스도교를 확장시키려는 적극적인 열망이나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무역업자나 정부관리로 사제나 크샤트리아보다는 낮지만 장인이나 노동자들보다는 높은 자티(jati)를 형성하며 그 지방의 카스트 질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었고 이들 자신이 카스트 힌두사회의 성원이 되었기 때문에 달리트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카스트 힌두인들의 태도와 차이가 없었다.


두 번째는 전문적인 선교사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16세기 이후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다시 둘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는데 로마 카톨릭 선교사들이 인디아에서 주도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16ㆍ7세기와 개신교 선교사들이 최초로 활동을 시작한 1706년 이후의 시기이다. 특히 이 두 번째 시기의 선교는 오늘날 인디아교회와 신앙의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했고, 그 핵심에 있던 인물들이 예수회 선교사였던 로베르토 드 노빌리(Roberto de Nobili)와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던 지겐발크(Bartholomew Ziegenbalg)와 플륏샤우(Henry Pl tschau)였다.


로베르토 드 노빌리가 선교사역을 위해 1606년 남인도의 마두라이(Madurai)에 도착했을 때 대다수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사회 최하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최하층의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보다는 상위의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상위의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킬 수 있다면 그들보다 아래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브라만들이 그리스도교를 혐오하는 이유가 소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잘 씻지 않고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포르투갈인들의 생활습관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브라만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해 그 자신이 철저하게 브라만으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산스크리트어와 지방언어를 배우고 그리스도교 브라만으로 행세하기 위해 채식을 하며 인도의상을 입고 모든 힌두의 종교관습을 따랐고 카스트와 불가촉민들을 인정했다. 그 결과 노빌리는 여러 브라만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마두라이 근처에서 어부들에게 선교하기 위해 어부들의 오염된 옷을 입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활동을 하던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선교와, 브라만들을 위한 자신의 선교를 철저하게 구분시켰고 결국 같은 장소에서 기도도 드리지 않고 따로 떨어져 예배드리며 같은 성수(聖水)에 손가락도 담그지 않는 브라만 사냐시스(Brahman sanyasis)와 판다라 스와미스(Pandara swamis)라고 불리는 카스트에 의해 구별되는 다른 종류의 그리스도교인들이 나타나도록 했다. 그의 선교전략은 브라만의 개종이라는 목전의 목표는 달성했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인디아 그리스도교에 카스트의식을 들여옴으로써 교회를 분열시키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잊게 함으로써 교회에서조차 달리트들을 차별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카스트 의식을 인디아 그리스도교회로 들여오는데 기여한 사람이 노빌리라면 인디아 그리스도교회의 신앙을 개인주의적이고 내세지향적으로 만듦으로써 달리트 집단의 현실문제에 대해 교회가 무관심해지도록 한 것은 지겐발크와 플륏샤우였다. 덴마크 왕의 후원하에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인디아에 파견된 이들은 1706년 트랑케바르(Tranquebar)에 도착해서 주로 도덕적인 가르침과 단순한 침례의식을 행했다. 특히 지겐발크는 타밀어로 신약성서를 번역함으로써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로 된 성서를 갖게 했고 그로 인해 성서를 읽을 수 있는 문자해독능력을 기를 수 있는 학교가 교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했다. 지겐발크는 13년간 선교활동을 하다가 1719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겐발크와 플륏샤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개종을 했지만 사비에르의 경우처럼 대부분은 하위 카스트 출신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지겐발크와 플륏샤우의 선교에 있어서의 문제점은 그들의 신학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독일 경건주의의 본산인 할레대학출신으로 당시 학장이며 경건주의자였던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33∼1727)에 의해 추천받아 파견된 선교사였다. 따라서 그들은 경건주의 전통에서 훈련받았고 인디아에서의 그들의 가르침 역시 개인의 중생의 체험과 개인적인 성결, 그리고 천국을 강조했던 그들의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 그 결과 개종자들은 신앙을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했고 교회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됐다. 이것은 개종자의 대다수였던 달리트들로 하여금 억압과 고통의 현실에 직면하여 그것과 싸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달리트들이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후 침례교의 선교사였던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가 동료들과 더불어 1793년 켈커타(Calcutta)에서 선교를 시작했고 영국교회 주교였던 미들턴(Thomas Fanshaw Middleton)의 1814년부터 그리고 그의 후임자였던 헤버(Heber)가 1823년부터 선교활동을 했다. 특히 헤버는 카스트 문제를 단순한 세속적인 사회ㆍ문화적 관습이라고 축소시켜 이해함으로써 영국교회가 카스트의 불평등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게 했다. 1830년에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선교사였던 더프(Alexander Duff)가 역시 켈커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더프는 그리스도교와 더불어 서구의 문화와 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강의하는 초급대학을 설립했지만 이 대학은 결국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의 자녀가 아니라 그들보다 기초교육을 더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능력이 있던 상위 카스트 출신 학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되고 말았다. 이후 그리스도교에 의해 설립된 다수의 고등교육기관은, 더프의 경우처럼 상위카스트 출신의 그리스도교인들이나 힌두교인들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달리트들의 교육을 통한 지위의 개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선구적인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결국 인디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달리트 그리스도교인의 문제를 인디아 교회에 남겨주게 되었다.


Ⅲ. 정부특별법

 

힌두 사회전반에 편재한 달리트들에 대한 편견과 교회내의 카스트 의식에 더하여, 1950년 독립 인디아정부가 지정보호 카스트와 부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그 목록에서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을 제외함으로써 이들은 달리트들 중에서도 최악의 상태로 떨어진다.

정부특별법은 전통적인 힌두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기본권 보장과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대통령령에 의해 선포된 법이다. 이 법에 의하면 모든 시민들은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정의롭게 대우받으며, 사유와 표현, 믿음과 신앙 그리고 예배의 자유를 가지며, 기회와 지위의 평등과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받을 기본적인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이 지정보호 카스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법의 후원 하에 국회의석을 배정받았고, 정부에 후원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또 그들의 이익을 돌보는 전문관리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의해 임명되었고, 교육의 기회와 경제적 지위의 개선을 위한 여건이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그렇다면 달리트 그리스도교들은 왜 지정보호 카스트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일까? 인디아 정부가 이 정부특별법을 제정할 때 당시의 저명한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었던 라즈쿠마리 암릿 카우르(Rajkumari Amrit Kaur), 제롬 드수자 신부(Fr Jerome D'souza), 그리고 무커지(H. C. Mukherjee)교수가 그 작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는 평등한 종교이고 따라서 카스트의 차별이 없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억압과 착취구조가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이 지정보호 카스트에 포함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상위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교인으로써 교회 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달리트들의 경험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반영하지도 못했지만, 이들의 의견은 결국 인디아 교회의 현실과 그들의 결정을 대표한 것으로 인정되어 정부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은 이후 그들이 지정보호 카스트에 포함되어야 하는 달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차별과 커다란 불이익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효력을 발휘하게 된 이 특별법의 최종형태에는 달리트라 할지라도 힌두교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지정보호 카스트로 간주될 수 없다는 조항이 첨가됨으로써 지정보호 카스트의 대상을 힌두교의 범위 내에 고정시켰다. 1950년 1월 26일 이 법이 효력을 발휘한지 5년만인 1955년에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Report of Backward Class Commission)에서 카렐카(Kaka Kalelkar)는 "힌두인들 가운데 지정보호 카스트로 분류되는 하리잔들은 인디아 정부의 후원정책아래서 그들의 조건을 보다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맞고 있지만 그리스도교에 속한 달리트들은 이중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더욱 열악해진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인디아 정부는 이 특별법에 이어 달리트들을 보호하기 위해 1955년과 1977년 시민권의 보호에 관한 법령, 그리고 1989년에는 지정보호 카스트와 지정보호 부족에 대한 잔학행위 금지법 등을 계속해서 반포했다. 이러한 법령들을 통해 힌두사회의 달리트들의 교육의 기회와 경제적 여건은 향상되었지만 법의 보호 밖에 있던 달리트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Ⅳ. 달리트 신학의 출현


정부특별법으로 인해 많은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이 혜택을 받기 위해 거꾸로 힌두교로 되돌아가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생겨났다. 또 도시와 시골의 가난한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의 경제적인 문제와 종교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인과 하리잔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달리트와 소수종교와 관련된 폭행이 증가했다. 게다가 80년대의 전반기에는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이 교회안에 편재한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한 항거로 이슬람으로 다시 집단 재개종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아래서 인디아 신학은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성의 인디아 신학은 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상위카스트 출신들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들의 경험과 사유, 그리고 문제의식은 다수인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것과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위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교인들의 신학적 관심이 자신들이 성장한 기성 힌두교 사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신앙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변증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 형성된 신학은 달리트들의 문제를 반영하지 못했다. 즉, 기성의 인디아 신학은 달리트들의 고통과 희망을 책임지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신학이 요청된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재해석을 통하여 달리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일련의 작업이 달리트신학이다.


그렇다면 왜 가난한 자의 신학, 혹은 억눌린 자의 신학이 아니라 '달리트신학'인가?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어떻게 다른가? 챠터지(Saral K. Chatterji)에 의하면 신학용어의 일반화 혹은 추상화는 달리트들의 구체적인 문제를 신학의 장으로 가져다 줄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의 실제적 문제를 유형화, 일반화시킴으로 왜곡할 우려가 있다. 즉, '가난한 자' 혹은 '민중'이라는 용어는 달리트들의 구체적인 주체성, 독특한 경험, 역사, 기대 등을 드러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신학, 민중신학이 아니라 '달리트 신학'이라는 명칭이 요구된다.


웹스터는 달리트 신학을 그 출발점이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자신들의 극빈, 억압, 차별, 소외, 비인간화, 고통이라는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방, 평등, 정의, 존엄, 인간성의 확보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여러 면에서 해방신학의 인디아적 표현이며 변화를 위한 일종의 신학적 운동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달리트 신학자의 한 사람인 니르말에 의하면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사회, 경제적 현실을 분석함에 있어 맑시즘을 따르고 있지만 맑시즘이 주장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자본주의의 병폐는 카스트로 인해서 지속되어 온 인디아의 달리트들의 역사적 경험과 현 상황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고, 따라서 달리트들에 대한 해방신학이나 맑시즘의 문제해결방식은 달리트들의 문제를 단순히 물질적인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환원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인디아 그리스도교 신학을 건설하는데는 만족할만하지 못하다고 한다. 또 맑시즘에 의하면 역사발전에 따른 사회변화가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데 스리니바스와 뒤몽의 지적처럼 인디아의 경우 사회 속에서의 변화는 있었지만 사회의 변화는 없었다는 점도 인디아의 독특한 상황에서 비롯된 달리트의 해방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달리트 신학'을 요구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디아의 고유한 해방의 주제를 다루는 '달리트 신학'의 주된 목적과 내용은 무엇인가?

달리트신학은 평등주의적이고 인간가치체제를 양성하려는 신학적인 노력의 산물로 힌두 사회의 피라미드의 맨 아래를 차지하는 달리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달리트 신학은 기본적으로 달리트들에 의한, 달리트들을 위한, 달리트들의 신학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신학적 작업에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달리트들의 주체성을 확립시켜줄 수 있는 그들의 역사와 그들의 현실에 대한 분석이다. 이러한 점에서 달리트 신학은 상위 카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기성 인디아 신학에 대한 반-신학(counter theology)으로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성 신학이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사실을 변증하고자 했다면 달리트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용어보다 '달리트'라는 용어를 더 중요시하며 상위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교인들의 신학적 작업이 주로 공식언어를 통해 이루진 것에 비해 달리트 신학은 대중인 달리트들의 언어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점을 역설하기 때문이다. 또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달리트 신학은 무엇보다도 힌두사회의 기성질서 속에서 훼손된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인간의 평등, 정의, 자유 그리고 존엄성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통해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달리트 신학은 달리트들의 정체성을 훼손시켜 온 기성 브라만 중심의 힌두 문화에 대한 반-문화로 이해될 수 있다.

달리트들의 문제를 정체성의 회복과 관련하여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카스트 제도의 영향하에서 달리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상위 카스트 사람들에 의해 달리트들의 영적인 능력이 평등하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카스트 위계사회 속에서 그들은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용서받지 못했다는 무의식적인 죄책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부끄러움과 의기소침함을 가져다 주었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이 오염되었다는 생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따라서 달리트 신학은 무엇보다도 다른 달리트 운동에서 다룰 수 없는 '영혼의 불행'을 치유하는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궁극적 달리트들은 기성의 억압된 질서로부터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 이것이 달리트 신학의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러한 '해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리트 신학은 기본적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해방성을 부각시키며, 출애굽의 하느님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서의 증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들의 신학적 작업이 이론적으로는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성서와 그리스도에 대한 재해석에 머물러 있고 실천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상황분석에 치중하고 그 분석을 근거로 당위적인 부분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달리트들의 인권확보와 사회개혁을 위한 일종의 신학적 운동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현실이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은 현 단계에서는 이 역할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달리트 신학은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희망의 복음이 되고 있으며 현대 힌두 사회와 그리스도교회 공동체에 커다란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달리트 신학이라는 것은 힌두 사회와 교회에 편만한 카스트주의에 대한 반발과 정의를 위한 달리트들의 기대라는 맥락에서 나타난 것으로 카스트 힌두사회의 위계와 차별에 대한 교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힌두교의 불평등한 제도를 비판하기 위한 신학적 작업이고 또 인디아교회 성원의 대부분이 달리트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그리스도교 신학이 달리트들의 문제와 그들의 투쟁의 보다 깊은 차원 그리고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기비판하에 달리트들에게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에 대한 요청에 부응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달리트 신학은 직접적으로는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이 처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만 단순히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디아의 달리트 투쟁을 위한 그리스도교적 입장의 정립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달리트신학은 인디아 사회에서 교회 내적 의미와 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Ⅴ. 달리트 신학의 의의


달리트 신학의 외적 의미 즉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달리트들이 왜 힌두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힌두교를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선택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해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달리트들은 왜 다른 종교로 개종을 했는가? 암베드카(B. R. Ambedkar)에 의하면 개종은 현존하는 힌두의 종교, 사회적 가치체제에 대한 항거요 존엄성과 영적 해방을 위한 새로운 정체성의 추구이다. 즉,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은 새로운 가치의 선택이요, 이 새로운 가치 아래서 기성 가치의 무효화가 선언되는 것이다. 이들이 거부하는 힌두 사회의 가치는 달리트들의 기원에 대한 힌두교의 설명, 그리고 그와 관련해 달리트들은 유전적으로 부정한 존재라는 종교적 판단, 업사상에 근거한 윤회에 대한 가르침 등이고, 이 모든 것은 '정'(purity)과 '부정'(impurity)이라는 중심가치로 환원될 수 있다. 힌두 사회에서 '정'이라는 가치는 브라만들로 하여금 그들이 그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치권력(크샤트리아), 경제력(바이샤) 인간의 존엄성, 평등, 자유 등 더욱 광범위한 다른 가치들을 지배하고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점에서 '정'과 '부정'은 힌두 사회의 전제적이며 지배적인 가치라 할 수 있고, 브라만들이 항상 그 가치의 담지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 가치는 브라만들에게 독점되고 있다. 모든 인간 사회가 그 사회성원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특수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정'과 '부정'이라는 가치의 지배력과 브라만들의 독점이라는 사회적 특징은 힌두 사회에 고유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사회의 구성원이 동일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보편성도 갖는다는 점이 망각되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본다면 힌두 사회는 달리트들의 문제에 관한 한 그 특수한 지배 가치로 인해 보편성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달리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함으로써 의도하는 것은 '정'과 '부정'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부정이요,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그들이 잃어버린 최소한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재분배에 대한 기대이다. 결국 이들의 기대에 부합하여 등장한 달리트 신학은 힌두 사회에서 배제시켰던 다른 가치들을 자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특수한 가치가 수천 년에 걸쳐 지배해 온 전제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기성 힌두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다른 달리트 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현대의 달리트운동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적 전략이라는 다섯 가지 방향 즉, 정치적 권력의 획득, 지배카스트로부터 경제적인 독립, 딜리트 문학 등의 활성화, 교육의 기회확대와 그것을 통한 생활 양식의 전환으로 새로운 달리트 문화의 창출, 종교적 정체성 확립을 통한 존엄성고양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사회, 종교적 운동은 크게 '산스크리트화'와 '자기정체성의 확립'이라는 형태로 이루어 졌고, 이 중 자기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극단적인 형태가 다른 종교로의 회심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달리트 신학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다양한 달리트 운동의 전략 중 종교적 운동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달리트 신학은 기존의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달리트들과 공유하지 않았던 상위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교인들의 가치의 독점에 대한 반발로서 교회 안에서 기능한다. 공동체의 가치는 성원의 공통된 관심에 근거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인디아 그리스도교회는 소수의 상위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리스도교의 가치들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했다. 따라서 달리트들의 평등과 존엄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긍정해 주는 달리트 신학은 한쪽으로 편중된 가치들을 공정하게 분배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고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교의 전파이래 이천년 간 왜곡되었던 그리스도교의 본래적 정신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끝으로 달리트 신학을 통한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운동, 그리고 더 나아가 연합 달리트 운동은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이라는 보편가치와 한 문화의 특수한 가치와의 우선성의 문제에 대한 관계정립을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는 현대사회에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나가는 말


이상에서와 같이 본고는 달리트 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의의를 살펴보기 위해 '달리트'의 의미와 힌두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 인디아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상황이 다른 달리트들보다 열악해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정부특별법에 대해 고찰했다. 결국 위계적 인간(Homo Hierarchicus)은 평등한 인간(Homo Aequalis)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수의 달리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카스트의식을 가지고 있던 교회와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던 신앙, 그리고 기성 힌두사회와의 변증에 주된 관심을 둔 상위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교인들의 신학은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달리트들에게 어떤 개선의 기회도 제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달리트의 상황이 신학적으로 극복되어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달리트 신학이 태동하기 시작했고 80년대에 들어와 빠른 발전을 이루며 달리트들을 위해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달리트 신학과 그 영향에 대해 어떤 전망을 할 수 있을까? 1999년 3월에 아시아인권위원회(Asia Human Rights Commission)가 발표한 달리트 인권헌장(A Charter of Dalit Human Rights)에 의하면 현재 인디아에서는 한 시간에 2명씩 달리트들이 폭행당하고 있고, 하루에 3명의 달리트 여성이 강간당하고 있으며, 하루에 2명이 살해당하고, 하루에 2채의 달리트 주택이 방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달리트 신학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달리트들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적 '해방'이 가능할지 현단계에서 전적으로 낙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아의 교회가 거의 이천 년에 달하는 교회의 관습을 끊고 달리트 신학을 통해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고 희망과 비젼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로 달리트들을 위한 다양한 신학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그들이 움켜쥔 가치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가치이고 그로 인해 세계의 다른 사회의 사람들에게도 연대감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달리트 신학과 그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조심스러운 낙관을 할 수 있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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