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의 유구한 역사 - 에치미아진의 교회와 유물들

2021. 3. 28. 16:13세상의 모든 풍경/Arm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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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치미아진(Echmiadzin)은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서쪽으로 약 20km 거리에 있는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의 역사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뿌리이자 중심으로서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과 같은 도시입니다. 

특히 기독교가 아르메니아의 국교가 된 4세기 초에 이곳에 아르메니아교회의 주교좌가 설치되었는데요, 이후 수도가 예레반으로 옮겨간 후 사산 왕조 시대인 5세기 중엽에 주교좌 역시 예레반으로 이전했지만, 1441년에 다시 총대주교 카라코스에 의해 총대주교 관구가 에치미아진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4세기 초(AD 301-330)에 성 그레고리에 의해 건축된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합법적이고 공식적으로 건축된 세계 최초의 교회건물로서 이후 건축되는 모든 아르메니아 교회와 수도원의 원형(prototype)이 됩니다. 따라서 이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고대 건축의 정수이자 기독교 건축술의 발달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중요성으로 인해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200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답니다. 이밖에도 에치미아진에는 성 흐립시메 성당(618), 성 가이아네 성당(630) 등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1800여년에 이르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역사의 유구한 전통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치미아진은 기원전 7세기 무렵 바르테사반(Barthesavan)이란 이름으로 시작되었는데, 기원전 4세기 또는 3세기의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후 기원전 140년 무렵 파르티아제국의 왕이었던 볼로가세스 3세가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바르가샤파트(Vargarschapat)라고 명명함으로써 1945년까지 공식적인 이름이 되었습니다. 1945년에 이곳을 에치미아진 대성당의 이름을 따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게 된 것이지요. 이 포스팅에서는 에치미아진 대성당과 박물관, 성 흐립시메 성당과 성 가이아네 성당, 그리고 마지막으로 즈바르노츠 유적지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치미아진 대성당과 총대주교 관구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주후 301년에 성 그레고리와 트리다테스 3세에 의해 아르메니아가 기독교 국가가 된 후, 건축을 시작하여 그레고리가 세상을 떠난지 5년 후인 331년에 완공된 세계최초의 공식적인 교회건물입니다. 에치미아진이라는 이름은 아르메니아어로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에 성 그레고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이 황금망치로 땅을 내려치는 환상을 본 후에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명칭이지요.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최초 건축 당시 중앙부가 돔으로 되어 있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세워졌지만, 480년에 사산왕조 총독이었던 바한 마미코니안(Vahan Mamikonian)에 의해 바실리카 양식 건물이 철거되고, 십자가형 모양의 성당으로 신축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618년에는 카톨리코스였던 코미타스(Katholikos Khomitas)에 의해 재건되면서 목조 돔이 석조 돔으로 대체되었는데요, 이 석조 돔은 네 개의 거대한 기둥에 의해 떠받쳐져 있으며, 이 기둥들은 아케이드를 통해 외부의 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5세기 중반과 16세기, 18세기에 부분적으로 보수한 건물을 근래에 다시 보수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희가 방문했을 때도 유네스코의 복원계획에 따라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성당 안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복원중인 모습만 볼 수 있었습니다.


대성당 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대형 하츠카르입니다. 모두 아르메니아로 기록되어 있어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대성당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 서술되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01년에 아르메니아 건국 7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대성당 입구의 대형 조형물인데요. 대성당의 위상과 중요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할만큼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대성당의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담은 조형물입니다. 십자가를 기준으로 좌측에 트리다테스 3세, 우측이 성 그레고리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네요.



대성당 출입문에 잇대어 지어진 조형물입니다.


조형물을 바깥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그레고리를 박해했던 트리다테스 왕이 그레고리와 화해하고, 그레고리는 왕을 용서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트리다테스 왕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후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되지요...



최근에 건축된 예배당인데, 모양이 매우 특별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들어가보지는 못했네요..



중앙부에 있는 부조만 확대촬영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의 한 손에는 망치, 한 손에는 십자가가 들려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이를 지켜보는 성 그레고리가 있네요. 아래로 아라랏산이 있고, 최초로 건축된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성당 내부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수많은 하츠카르들이 서 있습니다.



대규모 복원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대성당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대신에 구글에서 복원이전에 촬영한 사진을 찾아 첨부합니다.


1870년 당시 에치미아진 대성당의 모습으로 한 무명의 유럽화가가 그린 작품입니다. 그 규모와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겠지요?


 

아르메니아 여행 중 제가 본 가장 큰 하츠카르입니다.


 

복원공사가 진행중인 대성당을 다른 방향에서 담아보았습니다.



대성당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고 입구 부분만 사진을 담아왔습니다. 입구만보아도 그 화려함과 예술성을 엿볼 수 있지요.






지금까지 방문한 수도원과 교회들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을 보여줍니다.







대성당 서쪽에 있는 성 트리다테스의 문입니다. 문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트리다테스가 주도하여 건축된 총대주교의 관사와 관구 집무실입니다.



대성당 출입문 좌우측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성화들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세장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등이 그려져 있지요...



에치미아진 대성당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모습입니다. 복원공사가 끝난 후 아름다운 전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이곳은 아르메니아 총대주교의 사택과 관구 집무실 등이 있는 건물입니다. 총대주교 트리다테스가 주도하여 건축했다고 하네요.  



이곳은 출입이나 근접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멀리서 담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쪽으로 갈 때는 경찰들이 에스코트하는데, 감시인지 보호인지 그 경계가 애매했습니다...^^


 

넓고 푸른 정원을 가진 아름다운 건물이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때는 입장권을 구입해야 하구요. 사진을 촬영하려면 추가로 촬영티켓을 사야합니다.


박물관 안에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4복음서 필사본의 양장표지입니다.



이 십자가는 아라랏산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돌판(나무의 화석) 위에 붙인 것이라는데요, 4세기 경에 아르메니아의 수도사 한 사람이 아라랏산에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때 한 천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잠에서 깨어나시오. 당신의 손 위에 나무 조각이 있을 것이요. 이것은 노아의 방주에서 떼어낸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그 늙은 수도사가 잠에서 깨어나보니 정말로 자신의 손 바닥 위에 돌로 된 나무조각 화석이 놓여 있었다고 하네요. 수도사가 가져온 나무화석 위에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 십자가를 붙여 놓은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 드디어 이 박물관의 최고의 성물이자 보물인 게하르트, 즉 "롱기누스의 창"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병사 롱기누스는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는데, 찌르는 순간 그는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흘린 피로 자신의 눈을 씻자 곧 다시 보게 되었고, 그 후로 롱기누스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다대오가 아르메니아에 올 때 가져온 이 창을 약 5백년 동안 게하르트 수도원에 보관했다가 이 에치미아진으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치미아진 박물관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유물과 필사본, 총대주교들이 입었던 복식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마테나다란이 건립되면서 필사본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장면을 조각해 놓은 작품입니다.



역대 총대주교들이 입었던 예복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역시 총대주교와 카톨리코스가 입었던 예복입니다.



중세시대에 제작된 휘장입니다. 중앙에 있는 인물이 성 그레고리겠지요?



아라랏산에서 떼어온 노아의 방주 조각과 관련된 유물입니다. 저 손이 아마도 조각을 받은 노수도사의 손일 것 같습니다.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사도 안드레의 유골(유물?)입니다.



총대주교들이 예식을 집례할 때 착용한 관모들입니다.



청동주물로 제작된 이 작품은 그 정교함과 예술성에 있어서 정말 귀한 보물일 것 같네요.



총대주교의 관모에 장식된 문양과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입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 중 하나입니다. 무르익은 밀밭너머 멀리 보이는 수도원을 배경으로 묵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수도사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대부분의 아르메이나 사도교회 예배당 안에 장식되어 있는 성모자 그림의 원본이 이곳에 있네요...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문화권에 널리 퍼져있던 태양숭배사상이 기독교 전통 안에 들어오면서 그리스도를 "떠오르는 의의 태양"으로 묘사하는 상징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좌우에 총대주교가 들었던 홀과 함께 중앙에 에치미아진 대성당의 모형과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화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각종 예식 때 총대주교가 입장할 때 총대주교 앞에 들어오는 상징물이죠...



그 외에 다양한 십자가 장식물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십자가는 안에 4복음서를 상징하는 사람, 소, 사자, 독수리 장식이 함께 새겨져 있고, 좌우로 여닫을 수 있는 나무로 된 문이 달려있습니다.



꼭 불교의 불상에서 보는 것 같은 손가락 모양이 있어 궁금했는데, 여기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어 사진만 담아왔습니다. 중앙에는 하단부가 약간 훼손되긴 했지만 성 모자와 천사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 그레고리 등이 금으로 조각된 작품이 전시되어 있네요..



중세초기 팔레스틴과 아나톨리아 반도 일대에 널리 퍼져있던 성 조지(게오르기스)의 전설을 담은 작품입니다.


 

필사본의 표지를 장식했던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관에 걸려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총대주교의 초상화입니다.



총대주교관 앞에 있는 하츠카르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총대주교좌 본부건물 전경입니다.



현재 대성당 복원공사로 인해 대부분의 예식은 옆에 마련된 현대식 예배당에서 진행하는데요, 오늘도 그곳에서는 여러 예식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배당의 전면부 모습입니다. 아르메니아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져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오늘은 어린 아이의 세례식이 진행됩니다.



온 가족과 친척들이 예식에 참여해 함께 기념하고 축복해줍니다.



강단 전면부의 모습니다.



예배당을 지탱하는 기둥도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네요...



예식이 진행되는 예배실 전경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사제와 수도사들이 모여 담소하고 있습니다.


 

하츠카르와 원형예배당을 한 컷 더 담았네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신학교와 도서관 건물이라고 합니다.


 

에치미아진 대성당을 떠나면서 마지막 인증샷입니다...^^




성 흐립시메 교회(St. Hripsimeh Church)


성녀 흐립시메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예배당인 성 흐립시메교회는 주후 618년에 건축되었습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흐립시메는 로마제국 영지에 살던 아름다운 처녀였다고 합니다.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시안은 흐립시메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그녀는 이미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서원을 한 상태였습니다. 로마황제의 청혼을 거절한 흐립시메는 13명의 수녀들과 함께 망명하게 되었는데, 로마황제는 아르메니아의 왕 트리다테스 3세에게 사절을 보내 이 수녀들을 찾아 로마로 송환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르메니아 왕 트리다테스가 흐립시메를 잡고보니 너무 아름다워서 로마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흐립시메에게 청혼을 했지요. 하지만 로마에서와 마찬가지로 흐립시메는 왕의 청혼을 거절했고, 왕은 그녀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왕은 그녀를 고문하고 매질하였으며 마침내 돌로 때려죽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흐립시메와 함께 살던 38명의 수녀들도 모두 처형하였습니다. 

이후 왕은 밤마다 악몽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지요. 왕은 스스로를 돼지라고 생각하는 정신착란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때 왕은 자신이 12년전 코르비랍 지하 우물 속에 가두었던 기독교 전도자 그레고리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왕은 직접 그를 찾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했지요. 그레고리는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지긋지긋한 악령이 쫓겨나가 마침내 평안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왕은 흐립시메가 돌에 맞아 죽은 자리에 교회당을 건축하였고, 이후 618년에 현재와 같은 예배당이 세워졌습니다.


이후에 유럽에서 십자군 원정을 온 왕과 사제, 기사들은 이 성 흐립시메교회를 보고 본국에 돌아가 이를 바탕으로 예배당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흐립시메 교회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 건축물들의 원형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교회건축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 흐립시메교회의 측면 모습과 함께 담은 인증샷입니다.



교회 안 예배당에서는 여느 아르메니아 교회와 마찬가지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네요.



교회의 돔 부분입니다. 1,400년이 지난 교회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아직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지아정교회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를 보면 출생과 세례, 결혼, 장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하거나 장례식을 하는 사례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우리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볼 때 이런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예배당 문에 성녀 흐립시메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가이아네성당 (St. Gayane Church)



주후 630년, 카톨리코스였던 에즈라 1세에 의해 건축된 가야네 성당은 에치미아진 성당에서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이 성당은 17세기에 돔과 지붕의 보수공사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도 최초에 건축되었던 원형을 기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 가이아네 성당은 301년, 트리다테스 왕이 흐립시메를 처형할 때 그녀와 함께 처형된 38명의 수녀들 중 하나인 가이아네 수녀를 기념하여 건축된 교회입니다. 가이아네는 흐립시메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예배당이 서있는 이곳에서 돌팔매질 당해 순교했구요, 그녀에 이어 나머지 수녀들은 쇼하카트교회가 서 있는 곳에서 순교했습니다. 흐립시메가 감옥에 갇혀 고문당하고 있을 때 가이아네는 그녀를 찾아가 "믿음에 굳게 서서 담대하라"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가이아네 성당은 2000년에 처음 소개한 에치미아진 대성당, 흐립시메교회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가이아네 성당은 위에 언급했듯이 성녀 가이아네가 순교한 자리에 세워졌는데요, 이 교회는 위에 언급한 에치미아진 대성당, 흐립시메교회와 함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전통과 유산, 영적인 힘의 근거지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가이아네 성당은 가늘고 섬세한 선과 비율이 특징을 이루는 건물입니다. 서쪽 파사드에 넓은 아치형의 포르티코(portico, 회랑)이 있으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당의 돔과 천장은 16세기~17세기에 걸쳐 재건되었습니다. 멀리서 왜곡이 없이 담으니 건물의 아름다운 윤곽이 잘 살아납니다.



정문 아치속에 교회 건물을 담았습니다. 



이 가이아네 성당 부지내에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최고위 성직자들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예배당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담으며 축하를 받고 있습니다.



성당 입구 아치 윗부분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입니다.



이곳은 가이아네 수녀를 비롯한 아르메니아 교회 역사 속의 성인들의 무덤입니다.



결혼한 신랑신부가 이곳 묘지에 꽃을 헌화했습니다.



가이아네 교회의 전면부 제단의 모습입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신앙과 영성의 뿌리가 되어왔겠지요....



제단 전면부의 성화는 에치미아진 박물관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가이아네 성당의 내부 전체 모습입니다.



 

예배당 출입구쪽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두 번째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네요.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입장합니다.



사제의 집례로 정화의식을 거행합니다.



가족과 하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서약을 하고 제단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오늘의 신랑신부는 두 사람 모두 체구와 표정이 넉넉한 분들이네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혼배성사 예식에 따른 절차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제가 성혼 선언문을 낭독합니다.



들러리를 제외한 친척과 하객들은  좌석에 앉아 예식에 참여합니다.



이 구도에서 바라보는 예배당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네요...



떠나기 전에 정문을 좀 더 넓게 잡아 아치 안에 교회를 넣어서 담아보았습니다.




즈바르노츠 유적지와 교회 (Zvartnots Ruins and Cathedral)



에치미아진 도시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즈바르노츠 유적지와 교회는 카톨리코스이자 건축가인 네르세스가 아르메니아에 복음의 빛을 비춘 조명자 성 그레고리를 기리기 위해 643-662년 사이에 건축했다고 합니다. 즈바르노츠는 고대 아르메니아어로 '천사들의 땅'을 의미하지요. 교회건축이 진행되던 와중에 한때 동방교회의 관할권에 들어감으로써 건축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다시 관할권을 되찾은 이후 재개하여 662년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지금은 맨 아래층의 골격만 남은 즈바르노츠 교회 유적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에는 인증샷을 먼저...^^


 

한눈에 봐도 예배당의 규모가 웅장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 즈바르노츠교회는 매우 독특한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답니다. 심지어는 교회건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지요. 이와 같은 교회 건축양식은 전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 예배당은 안타깝게도 930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무너졌고, 그 잔해가 흙에 덮여 기록으로만 남은 채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즈바르노츠교회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점차 잊혀져갔죠.

그러다가 1901년에 아르메니아 교회 수도사 한 사람이 이곳에서 우연히 유물을 발굴하게 되었는데요, 그가 보기에 교회의 잔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유물들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전통 교회양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물 잔해를 보고 이 사제는 과연 이것이 입으로 전해오고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즈바르노츠가 맞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곧 오해는 풀리게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가 융성하던 시절의 수도였던 '아니'의 폐허에서 이와 거의 유사한 교회 건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르브르 박물관의 유물 중에서도 아라랏 산을 배경으로 한 교회 그림이 나왔는데, 이 교회가 여기서 발굴된 것과 동일하게 원형으로 된 3층 건물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 내부 제단이 설치되어 있던 곳의 잔해입니다. 이 예배당을 건축할 당시 카톨리코스였던 네르세스는 건축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그리스 건축을 모형으로 한 비잔틴 스타일의 예배당을 세우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그는 예수님의 사후에 천년재림설에 맞추어 '천사들의 땅'이란 이름으로 천사들을 위한 교회를 건축하고자 했다고 하네요. 


예배당 내부의 돔과 연결된 석주들이 서로 아치형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배당 내부의 석주들은 거의 대부분 발굴 되어 건축 당시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지요.



제단 전면부를 중심으로 세 개의 원을 겹쳐 그 바깥 선에 따라 18개의 내부 기둥이 설치되어 있고 외곽으로는 32면체의 형태로 건물이 구성되어 멀리서 볼 때는 원형으로 보이게 설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예배당의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이 예배당의 옆에는 여러가지 부속건물의 터가 있는데요, 왕의 궁전과 왕실묘지, 각종 예식과 예배를 위한 포도주 저장고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고대근동의 쐐기형 문자로 된 비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 기념관에 보관된 1906년 발굴당시 최종 확정된 건물의 평면도입니다.



3층 구조로 이루어진 예배당의 단면도입니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건물의 정면 설계도입니다.


 

위의 설계도면에 따라 완성한 건물의 모형입니다.



이 모형은 건물의 단면을 볼 수 있도록 중앙을 나누어 놓았습니다.



이 건물의 건축자인 카톨리코스 네르세스 3세의 이름을 장식한 결합문자, 즉 모노그램입니다.



현장에서 발굴된 다양한 문양의 벽돌과 돌들... 



벽돌의 포도덩굴 문양이 이채롭습니다.



예배당의 바닥을 장식한 비잔틴 스타일의 타일벽돌입니다.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아치의 시작부분에 양각으로 그려진 오반(Hovhan)의 인물조형입니다. 



이런 기둥의 형태는 그리스 건축에서 도리아식을 변형하여 채용한 듯이 보입니다.



이 예배당이 왜 무너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정된 정설이 없습니다. 처음에 설명했듯이 지진에 의해 무너졌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입장입니다만, 아랍왕조의 침략으로 폭파되었다는 주장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 튼튼한 구조물이 자연적으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건축 전문가들의 주장이지요.







□    ■    □    ■    □

이상으로 오늘도 긴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에치미아진 대성당과 흐립시메,
가이아네, 즈바르노츠 성당에 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제가 4월부터는 바빠지기에
3월에 작업을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좀 서두르다보니
너무 긴 포스팅이 자주 나오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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