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눈물겨운 역사 - 제노사이드(대학살) 추모관

2021. 3. 30. 10:09세상의 모든 풍경/Armenia

728x90

아르메니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아르메니아의 눈물겨운 역사를 담고 있는 제노사이드 기념관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껏 나치에 의한 유태인의 대학살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잘 알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아르메니아인들이 그런 대학살의 아픔과 시련을 겪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제노사이드 추모관에 가신다면 유태인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아픔을 겪어야 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의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Massacres)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이 제국 내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자 변두리 지역에 거주하던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 약 150만 명을 살해하고 강제추방을 통해 사망하게 한 사건입니다. 이 대학살은 두 번에 걸쳐 벌어졌습니다. 처음 일어난 대학살은 압둘 하미드 2세가 통치하던 1894년에서 1896년에 걸쳐 행해진 집단학살 또는 습격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 이스탄불 등 서부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 전역에서 약 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집단적으로 학살당했습니다. 

두 번째 학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부터 1916년에 걸쳐 케말 파샤 등이 이끄는 청년 투르크당 정권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강제 이주를 통한 인종청소 정책으로 인해 수 천년 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해 온 땅인 대아르메니아의 남서부 지역, 오스만 제국령 아나톨리아 반도 동부에서 살고 있던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이 두 번째 대학살에서는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이 조직적으로 집단학살되어 약 백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이라고 하면 두 번째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사건을 현대의 첫 조직적 집단학살 사건으로 인정하는 견해가 대다수지만, 터키 정부는 이를 강제이주에 따른 불가피한 희생이었다고 강변하면서 현재까지도 집단학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시관을 돌아보는 동안 구한말 시대로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에 이르기까지 고난과 질곡의 터널을 지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와 오버랩되면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노사이드 기념관의 추모탑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추모탑과 함께 추모관이 세워져 있는데, 추모관 입구의 조형물입니다. 이후의 사진은 카메라로 담지 않고 실내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이라 화질이 좋지는 않지만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비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자료사진들 중 일부만 촬영해서 소개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군대에 복무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의 단체사진



하이파 인근에서 오스만 군대에게 살해당한 다섯 명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사제들



아르메니아의 정치가이자 작가였던 그리고르 조랍이 알레포에서 살해 당하기 며칠 전에 자기 아내에게 보낸 편지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온 근거지로부터 강제이주 당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의 긴 행렬. 강제이주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150만 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집단적으로 살해되었습니다.



네모로 표시된 곳들이 제노사이드 집단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고, 삼각형은 집단수용소가 있던 곳입니다.
화살표는 아르메니아인 강제이주가 이루어진 루트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이슬람으로의 개종이 아니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에치미아진 근처의 수용소에서 장티푸스로 죽어간 사람들....



에치미아진의 수용소에서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장티푸스로 죽어간 수많은 아르메니아인들


에치미아진의 고아수용소 풍경, 1915년



학살당한 아르메니아인들의 시신들 앞에서 기독교 예식으로 장례를 치루는 장면



러시아 군인들의 호위를 받아 학살의 위험을 피해 크누스에서 동부 아르메니아로 탈출하는 아르메니아인 고아들



아르메니아를 탈출하여 미국으로간 아르메니아인들이 뉴욕의 수용소에서 굶주림에 시달려 죽어가는 모습



영화 '영혼의 경매'에서의 아르메니아 소녀들의 십자가 처형장면


 

영화 '영혼의 경매'(Auction of souls)에서 목만 남긴채 모래에 묻힌 오로라와 로잔 등을 구하는 장면입니다.


  

대학살에서 생존한 기독교소녀, 오로라 마르디가니안의 이야기를 다룬 "Ravished Armenia". 이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Ravished Armenia의 영화포스터



무슬림에게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가 구조된 16세 소녀 구르드지
고문으로 인해 이슬람으로 강제개종 당한 채 고난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납치당해 이슬람으로 강제개종 당하고 강제로 문신을 새겨야 했던 아르메니아 여인



무슬림에게 납치되었다가 노예로 있던 아르메니아 소년과 함께 탈출하여 알레포의 수용소에 수용된 여인.


 

대포로 무장한 터키청년당에게 포위당한 반(Van)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아르메니아의 젊은이들. 이들은 민병대를 조직하여 저항했지만 결국 반이 함락당하고 수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불타는 아르메니아인 거주지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아르메니아 어린이들



대학살 이후 이라크 바쿠바의 고아원에 수용된 아르메니아인의 고아들입니다.



가이사랴에 있는 성 카라펫 수도원의 고아원에 수용된 아르메니아출신 고아들입니다.



전쟁과 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자와 아이들입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슬픈 역사를 다룬 영화 "영혼의 경매"(Auction of Souls)를 다룬 잡지와 신문 기사들입니다. 이 기록영화는 유튜브를 통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24분 정도의 길지 않은 분량이니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에 연령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성인들만 보시는 게 좋겠네요.



 



오늘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제노사이드 추모관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렸습니다.

종교와 인종, 이념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과 갈등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안겨줍니다. 


수난주간을 보내며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진정한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정신을 묵상하며 이 땅의 평화를 기도합니다.


오늘 포스팅이 유익하셨다면
공감체크 ♡ 를 부탁드립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