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만나는 바울의 발자취

2022. 11. 21. 13:33세상의 모든 풍경/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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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를 떠나 버스로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를 거쳐 메테오라까지 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여러곳에서 만나게 된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암비볼리와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 메테오라에 이르는 여정을 풍경과 도시의 모습, 그리고 주요 유적지를 포함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빌립보에서 약 한 시간, 60km 정도 달리다보면 암피폴리스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사도행전 17장 1절에 기록된 "바울과 실라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는 기록에 등장하는 암비볼리이다. 

암비볼리에 도착하기 직전 우리는 스트리몬 강을 만나게 된다. 사진은 스트리몬 강을 건너는 작은 다리인데, 건넌 다음에 반대편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자상(The Lion Monument)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며 담은 스트리몬 강의 모습이다. BC 480년,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이 강에 다리를 놓고 건너 내려갔다고 한다.

1912년, 제1차 발칸전쟁의 와중에 다리공사를 위해 강바닥을 파던 한 그리스 병사가 사자상의 기단과 사자 몸체의 일부를 발견했다. 이후 1916년 1차대전 당시 영국군이 이곳에 다리에 요새를 건설하면서 기념비의 상당부분을 발굴했다. 이후 1930년대 초에 케르키니 호수의 배수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대리석 사자의 다리부분이 발견되어 완벽한 복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모든 복원 과정은 1941년, 오스카 브로니어에 의해 출판된 <암피폴리스의 사자>(The Lion of Amphipolis>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후 고고학 조사에 의해 이 사자상은 주전 4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밝혔졌다. 따라서 주후 1세기에 이곳을 지나간 사도바울도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에 이 사자상을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1960년대에 이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던 최초의 인물인 오스카 브로니어와 고고학자 디미트리스 라자리디스에 따르면, 이 유적은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중요한 장군인 미틸레네의 라오메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사자상에 대한 헬라어와 영어 설명문이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사자상이 크기와 힘으로 인해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사람들은 예술가의 주제 묘사의 정확성을 강화하는 해부학적 세부사항(정맥, 갈기, 강력한 입, 한쪽으로 꽉 찬 입, 깊게 파인 눈 등)의 렌더링을 비롯하여 이 조각 작품의 상징성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폐허로 남아 있는 고대 암피폴리스가 자리잡고 있었던 마을이다.

암비볼리에서 데살로니가로 향하던 길에 점심식사를 위해 들렀던 도로변 식당 벽에 그려진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필자의 모습도 그림자로 함께 출현했다..^^

데살로니가는 해변도시이다. 가는 길에 창가에 펼쳐진 해변 풍경이 아름답다. 

데살로니가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또 하나의 도시 아볼로니아의 아름다운 풍경.

달리는 버스 앞쪽에 펼쳐지는 이런 멋진 장면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운전석 옆 앞자리에 앉을 때 얻을 수 있는 특권 아닐까?

데살로니가에 가는 길에 아볼로니아로 들어가는 표지판.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는 길에 아볼로니아에 들러 이 바위 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사도행전 17장 1절을 기록한 설명문이다. 그리스어 원문에 12:1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 참 묘하게 느껴진다. 우리 같으면 당장 고치라고 민원을 넣고 요란을 떨었을 텐데 말이다.

바위옆에 마을에서 잠시 산책나온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을 만났다. 

드디어 항구도시 데살로니가 도심으로 접어들고 있다. 익숙한 이름 아테나와 에데사로 향하는 도로 표지판도 함께 보인다.

도시로 들어서자 눈 앞에서 차량 3대가 추돌하여 도로가 막히기 시작한다. 어디서나 차조심!

유서깊은 도시 데살로니가에는 고대의 성벽과 각종 건물들이 도시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놀라운 것은 2차 대전 이후에 엄청난 유적들로 가득한 이 도시에 개발이 추진되어 그 위에 수많은 건물과 도로가 세워졌다는 것! 땅 속에 묻혀있을 고대 유적들이 언제 개발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데살로니가 시청이라는데, 도시 규모에 비해 아담하다.

유적 위에 세워진 도시 데살로니가.  아래에 엄청난 유적들을 깔고 있는 주택가의 모습이다.
 

데살로니가에는 역사가 1천년이 넘는 유서깊은 교회와 교회의 유적들이 20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곳은 성 게오르기오스 교회이다.

데살로니가 성에 들어가는 성문입니다. 성문 앞 뒤로 새겨진 부조들이 성문의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56년에 건축된 가장 최근 건물 중 하나인 파나기아 덱시아(Panagia Dexia) 정교회 예배당이다.

데살로니가 시내 곳곳에 고대 유물을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지만, 사실 도시 전체가 고대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 항구 주변에 조성된 공원. 여유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데살로니가 항구 옆에 세워진 15m 높이의 화이트 타워. 데살로니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탑은 15세기에 베네치아인들이 구축한 방어벽의 일부로서 터키가 이곳을 점령했을 때는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때 발생한 대량 학살로 인해 "피로 물든 탑"으로 불리기도 했다. 

데살로니가 항구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

유서깊은 항구에 자리잡은 고대 여객선을 활용한 까페. 우측에 펼쳐진 현대적인 아파트촌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화이트 타워를 중심으로 한가로이 오후 햇살을 즐기는 시민들.

맑은 하늘과 어우러진 항구에서 바라본 시내쪽 풍경이 참 아름답다. 

화이트타워가 있는 광장에서 시내쪽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건물이 아리스토텔레스 극장이다.

한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도시의 풍경을 담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는 데살로니가의 풍경이 무척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립포스 2세의 동상이다. 그는 마케도니아 역사에서 제국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대했고, B.C. 338년 케로네아 전쟁에서 아테네와 테베를 정복하고 그리스를 통일하였다.  발칸반도의 왕국들을 연합하여 코린트 동맹을 맺고 페르시아 원정을 계획했으나 불행히도 암살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필립포스 2세의 대망은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완성되었다.

공원을 거니는 젊은 부부, 유모차에 탄 아이와 뒤따르는 반려견까지 완벽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데살로니가를 비롯해 그리스 도시들의 벽에는 온갖 낙서와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다. 자유분방한 그리스인들의 기질을 보여준다. 우측 끝에 노숙하는 젊은이에게서 집시문화의 일면을 느끼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극장 앞에서 담은 활기찬 도시 풍경.

데살로니가 시민들의 여유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거리풍경.

데살로니가 해변에 세워진 알렉산더 대제의 동상. 동유럽과 소아시아,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그도 갑자기 찾아온 열병 앞에 무기력한 인간일 수 밖에 없었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대제국은 네 조각으로 나뉘어 그의 휘하 장군들에 의해 다스려지게 되었다.

데살로니가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유물은 바로 이 성 디미트리오스 대성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성당은 데살로니가에서 가장 큰 교회이자, 수호성인인 성 디미트리오스에게 봉헌된 주요 성지이다. 1917년 화재 이후 원래의 건축 계획에 따라 복원된 이 교회는 비교할 수 없는 역사적, 예술적 관심을 끄는 중요한 특징들을 유지하고 있다.

성 디미트리오스는 주후 270년 그리스 데살로니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고, 강인한 신체와 영웅적인 기질로 인해 어린 나이에 로마군의 고위 장교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는 자신을 첫째로 그리스도의 군인, 둘째로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독실한 선교사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비밀 모임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교도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시켰다. 

어느 날 그런 모임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는 황제의 근위대에 붙잡혔고, 개종에 대한 진실을 알기를 원했던 막시미안 황제 앞에 놓였다. 성 디미트리오스는 "...내가 믿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신앙을 선포했다. 그 선언과 함께 막시미아누스는 성 디미트리오스를 감옥에 보내어 가장 잔인한 고문을 명령했다.

성 디미트리오스는 감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감옥에서 그는 자신을 추앙하는 네스토라스의 방문을 받았다. 네스토라스는 키가 작은 남자였고, 곧 열리게 될 검투사 경기에서 싸우고자 사랑하는 선생님의 축복을 구하러 왔다. 황제는 거인 검투사 레오를 상대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도전함으로써, 이 검투 경기를 기독교와 이교의 결투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성 디미트리오스의 축복으로 네스토라스는 레오와의 결투에서 그를 죽이고 승리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검투사를 잃은 것에 분노한 황제는 그 자리에서 네스토라스를 참수하라고 명했다. 네스토라스의 배후에 성 디미트리오스가 있어 영감을 주었음을 알게 된 황제는 306년 10월 26일에 성 디미트리오스의 시신을 처형 장소에 묻으라고 명령했다.

성 디미트리오스 정교회 예배당의 내부이다. 이 예배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직전 디미트리오스가 순교한 이곳에 410년 처음 건축되었다가 1917년 데살로니가에 대화재로 인해 크게 파손되었으나 다행히 원형은 아직도 지하에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지하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아쉬웠다.

베뢰아로 향하는 길에 담은 여유로운 데살로니가 시내 풍경.

유적 때문에 고층빌딩을 지을 수 없는 데살로니가에서는 이렇게 5~6층 이내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건설되어 있다.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최대도시인 데살로니가의 거리풍경.

잡지 한 권을 들고 길을 건너는 정교회 사제의 모습. 
 

젊은 여성이 청소차를 타고 거리 청소를 답당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상가와 주택이 함께 어우러진 화려한 거리 모습. 마치 파리나 런던의 어느 거리처럼 느껴진다.

이제 시가지를 빠져나와 베뢰아로 향한다.

데살로니가 시내를 벗어나 달려가다가 폐차장을 만났다. 데살로니가 시내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접어드는 길에서 보이는 그리스의 허리라고도 할 수 있는 핀도스 산맥 줄기.

멀리 뿌연 연무 속에 언덕 기슭에 자리잡은 베뢰아 시내의 모습이다.

베뢰아 시내로 진입하는 진입로의 풍경.  데살로니가 서쪽 80㎞ 지점 와다르(Wardar) 평야에 위치한 마케도니아 주(州)의 한 성읍인 베뢰아(Beroea)는 북쪽으로 소아시아와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가 통과하고 있다. 제2차 선교여행 당시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의 폭동에 직면한 바울 일행이 이 도로를 이용하여 베뢰아로 피신하였다(행 17:10). 바울 일행은 베뢰아에서도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곳에서의 전도 사역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행 17:11-15). 훗날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바울을 수행한 소바더 역시 베뢰아 출신이다(행 20:4).

한편, 바울 당시 베뢰아는 농업과 금속 세공업 등이 발달하여 비교적 부유하고 번화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지방 사람들을 가리켜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 17:11)고 평가하였다. 그들은 좋은 성품을 소유한 자들이요, 진리탐구에 열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바울이 전한 말을 들으면서 무조건 수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깊이 묵상하여 그 사실을 판단하고 확인했던 것이다(딤후 3:16-17). <참고 : 라이프 성경사전>

베뢰아 시내를 지나 과거 유대인의 회당이었던 곳을 찾아간다.

작은 도시 베뢰아 시내의 풍경이 한가롭고 여유롭다. 도시내 주요 랜드마크들을 안내하는 표지판 아래를 지나는 모녀의 모습이 정겹다.

이곳이 바로 사도바울이 찾아갔을 것으로 예상되는 베뢰아의 회당이다. 입구를 담은 사진이 없어 부득이하게 구글에서 빌려왔다...^^

사도행전 17:11이 기록된 유대인의 회당 입구 석판. 과거 유대인의 회당이었던 이곳에 사도 바울이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행 17:1-2)

이 기념회당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이 사진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의 동상이었다.

베뢰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의 모습.

이 그림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아마도 지하 감옥에 갇힌 바울이 환상을 보는 장면일 것이다.

소박하게 느껴지는 사도 바울의 성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종 사도바울.

 

 

 

존경하고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자 첫 번째 선교사였던 바울 사도에게 기대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만 킬로를 걸었던 바울 사도의 발. 복음전하는 아름다운 발...

대머리에 매부리코, 늙고 갸냘픈 사도의 모습.. 그러나 그의 눈은 의지와 신념으로 가득하고, 굳게 다문 그의 입술은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그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한적한 베뢰아 시내의 풍경, 움직이는 차나 사람이 전혀 없어 놀랍다.

거리를 지나면서 만난 흥미로운 장면. 정교회 사제 한 분이 집회안내 포스터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베뢰아에서 메테오라로 향하는 길에서 핀도스 산맥 아래 자리잡은 대규모 화력발전소를 볼 수 있었다.

메테오라 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휴게소. 핀도스산 까페 옆에 방치된 폐차가 운치를 더한다.

메테오라가 가까워오면서 핀도스 산줄기가 느릿한 걸음으로 평야를 향해 내닫고 아름다운 석양빛이 그 위를 덮고 있다.

메테오라로 가는 길. 울긋불긋 단풍이 아름답다.

메테오라에 가까워오자 핀도스 산줄기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버스 앞에 가는 트럭에 그려진 그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트럭 주인이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우리는 빌립보를 떠나 메테오라까지 긴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암피볼리와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와 베뢰아까지 가는 곳마다 사도 바울이 남긴 흔적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힘든 여정 속에서 성령의 위로와 능력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던 바울을 본받아 그의 옷자락이라도 붙들고 따르고픈 작은 소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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