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00>과 테르모필레 전투, 그리고 아테네 가는 길

2022. 12. 1. 18:00세상의 모든 풍경/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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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에서의 아침은 참으로 감동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이틀 그곳에 더 머물며 수도원들의 역사와 문화유산 등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패키지 성지순례 프로그램인지라 언젠가 다시 한 번 오리라는 자신과의 약속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메테오라 절벽 위에 세워진 수도원 및 기암괴석들을 보며 탄성을 지르던 우리는 오전 10시 반쯤에 메테오라를 떠나 아테네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과 절경을 담은 사진들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필자의 이전 포스팅을 보시기 바란다.  


바위절벽 위에서 빚어지는 영성 -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https://lamour.tistory.com/236

 

바위절벽 위에서 빚어지는 영성 -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오래 숙성시켜야 더 향기롭고 맛있는 포도주처럼 때로는 우리의 추억도, 그리고 그 추억을 담은 사진도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친 후에 들춰볼 때 더 아름답고 더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을

lamour.tistory.com

 

아테네와 메테오라를 이어주는 철도와 병풍처럼 웅장한 산, 그리고 그 밑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따스한 햇살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들은 말그대로 전원풍경이다. 
 

한참을 달렸을까, 오른쪽으로 펼쳐진 거대한 산맥에 걸린 검은 구름에서 마치 은혜의 빛줄기가 쏟아진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담아본 장면이다.

유려한 곡선과 사선, 그리고 강렬한 음영의 조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신호대기 중에 잡은 풍경. 아테나와 델포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있어 카메라를 들었다.


 

영화 <300>의 배경, 테르모필레 전투 이야기


B.C. 480년, 2차 페르시아 전쟁 당시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1세가 죽고 그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1세가 30만의 대군을 이끌고 육지와 바다로 동시에 다시 그리스를 침공한다. 이를 통상 3차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부른다. 페르시아의 침공소식에 그리스 본토와 에게해 연안의 폴리스국가들은 고린도(Corinth)에 모여 동맹을 맺고 연합 방어태세에 들어간다.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백만대군(실제로는 25만~30만으로 추정)과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장군)이 이끄는 스파르타의 정예병 300명(실제로는 그리스 연합군 포함 7,000명)이 운명을 걸고 맞선 전투의 현장이 바로 이 사진에 보이는 테르모필레 계곡이다. 페르시아군이 아테네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이 험준한 산을 넘어야 했고, 이 산을 넘으려면 이곳 테르모필레 협곡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다.

지금도 도로가 넓지 않지만 당시에 이 협곡을 통과하려면 마차가 간신히 마주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 유일했다. 스파르타의 장군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명의 정예병은 그리스 연합군 7천명과 함께 절대적인 숫적 열세를 지리적 잇점으로 극복하면서 일주일 동안 이 협곡을 지켜냈다.  그래서 그들의 전설적인 무용담을 상당한 픽션과 적당한 왜곡(?)을 섞어 만든 영화가 바로 몇 년 전에 개봉한 <300>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8306

 

300: 전사의 귀환

Daum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movie.daum.net



스파르타와 그리스 연합군은 처절한 전투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협곡을 사수했지만, 한 배반자가 일러준 산길로 우회해온 페르시아군에 포위되었고, 먼저 후퇴한 병력을 제외한 스파르타군 300명과 1천여명의 연합군이 모두 전사했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의 이같은 불굴의 항쟁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테네를 포함한 그리스 반도 전체가 페르시아 군에게 유린당하고 만다. 어떻게 보면 테르모필레 전투는 그리스가 패배한 전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보여준 스파르타와 아테네 연합군 전사들이 보여준 불굴의 용기와 조국을 위한 희생정신은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며 찬사를 받고 있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석상들이다.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투,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압도적인 적과 맞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사랑하는 이들과 조국을 지키려했던 이들의 용기는 수천년이 지났어도 오히려 더욱 그 고귀함과 가치를 더하고 있다.

레오니다스 장군의 동상 아래에는 당시의 처절했던 전투장면을 부조로 담아놓았다.

몰론 라베(Molon Labe) : 와서 가져가라!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라는 크세르크세스의 사절의 종용에 레오니다스 왕은 단 두 마디로 대답했다. "와서 가져가라!"  순간 사절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는 가소로웠을 것이다. 아무리  테르모필레 협곡이 난공불락의 요충지라 해도 스파르타 전사의 수는 겨우 300명이었다. 감히 백만대군 앞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기는 레오니다스왕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항복을 권유하다니!’  스파르타의 전사는 후퇴와 항복이란 단어를 모른다.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은 자식이 전쟁에 나갈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방패를 들고 돌아오든지, 방패에 실려 돌아오라."  이기면 살아서 돌아오고 지면 죽어서 돌아오란 말이다. 

마라톤의 승리자에게 주는 월계수 잎으로 장식된 이름들... 여기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무명용사들의 죽음에도 동일한 월계관이 주어져야 하리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말년에 자신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7-8) 

비록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 전투에서 보여준 전사들의 불굴의 용기와 투지는 이후 그리스 연합군이 새롭게 정비되어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대승을 발판으로 페르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내는데 있어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한쪽 날개가 잘려나간 무명용사의 석상 앞에서 잠시 마음이 숙연해졌다.

어디서 유황냄새가 진동한다 했더니 테르모필레 전투기념비 옆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노천 유황온천이 있다. 물이 상당히 뜨거워서 잘못하다가는 살이 데일 것 같았다. 

뜨거운 온천수가 사시사철 콸콸 흘러내린다. 

함께 갔던 일행 한 분은 온천물에 곧바로 탈의하고 몸을 담갔다. 뜨거운 온천수를 맞는 여행자를 보며 나도 들어갈까 잠시 생각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주변에 관광호텔이 서고 유황온천탕을 만들어 큰 돈을 벌었을텐데, 이걸 그대로 노천에 놔두는 그리스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처럼 목욕을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테르모필레를 지나 아테네로 향하면서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길을 달리다가 이정표가 나오면 왠지 한 컷 담고 싶어진다. 내가 스쳐간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본능일까?

에게해의 옥빛 바다물과 낭만적인 섬풍경.

여기서 간단한 휴식과 간식시간을 가졌다.

아테네가 가까워 오면서 하늘이 아름답게 붉게 물들었다.

아테네 시내에 들어서자 벌써 도시에는 어둠이 깔리고, 거리는 자동차 불빛이 이어진다.


** 다음 편에는 아테네의 고대 유적들과 사도 바울의 선교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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