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고대유적과 아레오바고에서의 사도 바울

2022. 12. 9. 08:22세상의 모든 풍경/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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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 언덕(광장이라기보다는 언덕이 어울릴 듯 싶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며, 공식적인 기록만으로도 3,400년 이상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도시 중 하나이다. 예술과 학문, 철학의 중심지요, 플라톤의 아카데미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라이세움이 자리잡은 본거지이기도 하다. 동시에 서구문명의 요람이자 민주주의의 발생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제2차 선교여행의 여정 동안 이곳 아테네에 방문하여 아레오바고(Areopagus) 광장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당시 청중들 가운데는 유명한 에피큐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도 있었다. 아레아바고에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인물 가운데는 디오니시우스(디오누시오, Dyonisios))의 이름이 사도행전 17장에 언급되어 있고, 그는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

유명한 아크로폴리스의 언덕의 전경이다. 일리소스 계곡에서 156m 높이로 솟아오른 바위 언덕에 세워진 아크로폴리스는 B.C. 2천년 전부터 그리스인들이 신을 숭배하는 신전과 왕궁을 보호하는 요새였다고 한다.

제1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그리스의 상징과도 같은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로고가 바로 이 파르테논 신전이니 그 가치와 중요성은 말로 다하기조차 어렵다고 하겠다. B.C. 479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서 기존에 이곳에 자리잡고 있던 신전이 무너지자, 아테네인들은 그후 약 40년이 지난 438년에 전쟁의 신 아테나에게 헌정하기 위해 이 신전을 건축했다. 여러 차례의 지진과 전쟁, 약탈로 인해 심각하게 파괴되어 현재까지도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저녁시간에 나와 야경을 담을 수 있어 감사했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주된 출입구로서 프로필라이아라고 부른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과 병사들이 이 문을 통과해 들어가기 때문에 개선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B.C. 432년에 도리아 양식의 대리석 기둥을 사용하여 건축되었다.


복원공사가 한참 진행중인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 아무리 튼튼한 건물도 반복되는 지진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든 것 중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자랑하는 현대 문명 역시 언젠가는 이 신전처럼 잔해만 남게 될 것이다.

북쪽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 무너진 잔해들을 세밀하게 분류해 번호를 매기고 이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복원공사는 정말 고도의 고고학적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에렉테이온 신전 쪽에서 바라본 파르테논의 모습이 압권이다.

도리아식 대리석 기둥 위로 이어진 난간은 다양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아테나가 전쟁의 신이다보니 말을 탄 전사와 전쟁무기들이 많이 보인다.

무려 2천 5백년 전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 현대의 건축장비나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하게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지은 건축물의 규모와 섬세함, 과학적이고 미학적인 정확성과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전문 문화재 복원 기술자들에 의해서 복원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지진으로 무너지기 전에 아테나 신전의 내부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 완공된 신전의 내부에는 금으로 장식된 거대한 아테나 신상이 중앙에 자리잡았고, 지붕과 난간이 화려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서쪽에 자리잡은 에렉테이온 신전은 B.C. 421년에 착공하여 B.C. 406년에 완공된 건축물로서 아테네의 여신상을 모시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전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이 도시가 생길 때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도시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고, 둘 다 양보할 생각이 없어 시민들이 투표로 수호신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땅을 쳐서 올리브나무를 자라게 해 시민들에게 선물했고, 포세이돈은 멋진 전쟁용 말을 선물했는데, 시민들이 지혜와 올리브나무를 선택했고,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따라 도시 이름을 아테네로 지었다고 한다.

에렉테이온 신전은 신전입구에 있는 포르티코(현관)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 조각 작품들 때문에 더 유명하다. 2500년 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략했던 당시 마라톤 평원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를 통해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유럽진출을 막아낸다. 당시 아테네 여신들의 가호 때문에 승리했다고 생각한 아테네 시민들은 여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을 아름답게 건축했으며, 이 여섯명의 여신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에 있는 작품들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여섯 개중 하나는 영국이 약탈해가는 바람에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니, 대영박물관은 전세계의 약탈품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도리아식 기둥의 전형적인 문양이다. 코린트식과 함께 고대 그리스 건축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아레오바고 언덕과 그리스 시내 전경이다. 날씨가 맑았지만 미세먼지가 있어 먼 곳 풍경들은 그다지 선명하지 못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보이는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B.C. 6세기에 지어진 이 야외극장은 1만 5천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 역시도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그리스의 희극과 비극이 공연되었을 것이다.

역시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보이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으로서 A.D. 2세기에 건축되었다. 복원이 어느 정도 완료되어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오케스트라 공연 등 콘서트와 연주회가 열린다고 한다.


자, 그럼 이제 사도 바울 선배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아레오바고 언덕으로 가보자!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와 청중들과의 토론,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들이 기록된 표지판이다.

이곳이 바로 아크로폴리스가 바라다보이는 아레오바고 언덕이다. 사도 바울 당시 이곳에는 주로 그리스의 귀족들과 청년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토대로 발전한 스토아 학파와 에피큐로스 학파에 속한 철학자들이 모여 날마다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벌이던 곳이었다. 그들은 늘 새로운 소식과 지식, 이론을 추구했고,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을 존경했다고 한다. 아테네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당시 아테네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와서 그들과 일종의 토론 배틀을 벌였으며, 그들의 관심사로부터 출발하여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개념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창조, 통치하심을 설파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회당에서는 유대 사람들과 이방 사람 예배자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였고, 또한 광장에서는 만나는 사람들과 날마다 토론하였다. 그리고 몇몇 에피쿠로스 철학자와 스토아 철학자도 바울과 논쟁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몇몇 사람은 "이 말쟁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 하고 말하는가 하면, 또 몇몇 사람은 "그는 외국 신들을 선전하는 사람인 것 같다"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를 전하고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울을 붙들어, 아레오바고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당신이 말하는 이 새로운 교훈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소? 당신은 우리 귀에 생소한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소" 하고 말하였다. 모든 아테네 사람과 거기에 살고 있는 외국 사람들은, 무엇이나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신을,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새겨서 만든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하신 사람을 내세워서 심판하실 터인데,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 들었을 때에, 더러는 비웃었으나, 더러는 "이 일에 관해서 당신의 말을 다시 듣고 싶소" 하고 말하였다. 이렇게 바울은 그들을 떠났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바울 편에 가담하여 신자가 되었다. 그 가운데는 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도 있었고, 다마리라는 부인도 있었고,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사도행전 17:16-33)



아레오바고 언덕에서는 주변의 여러 유적과 종교시설물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로 그리스정교회에 속한 따시오의 성녀 마리나 교회이다.

아고라 박물관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고풍스럽고 아담한 그리스정교회 소속 예배당이다.

중앙의 수많은 대리석 기둥으로 받쳐진 붉은 지붕 건물이 재건된 아탈로스 스토아로서 한때 만남의 장소이자 시장이었지만 현재는 아테네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볼 수 있는 헤파이토스 신전이다. 아테네의 모든 고대 유적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로마시대의 유적이라는데 정확한 정보를 찾지 못했다. 추후 업데이트 예정...^^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다가 자신에 대해서 부당한 판결을 한 아레오바고 법정의 결정에 대해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며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애 동안에 어떤 저술도 남기지 않았고, 그에 관한 모든 기록들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 그리고 그에게 비판적이었던 극작가 아리스토 파네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그는 당시 수사학적 궤변을 일삼던 소피스트들에게 놀아나는 아테네의 지식인들에게 실망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고 상대주의에 빠져 논쟁만을 일삼는 풍조에 반기를 들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함을 이른바
"영혼의 산파술"을 통해 깨우쳐 준 철학자였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개념이 사실은 오류가 있는 개념임을 깨닫게 되고, 당황하거나 화내거나 부끄러워하게 되었고, 이를 가리켜 아포리아(Aporia, ἀπορία)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가 했던 명언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도 제자의 질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답변이었다. 희랍철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를 던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곧 "너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라"는 뜻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계속 산파술을 시전하고 다닌 끝에, 결국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 다는 것을 안다"는 말을 남겼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델포이 신전에 어떤 사람이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가 있습니까?' 라고 묻자, 무녀는 평소에 늘 쓰던 은유나 수사들을 생략하고 단 한 마디로 '아니'라는 신탁을 주었다고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여,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 즉 정치인, 작가, 장인 등을 닥치는 대로 만나고 다니며 그들의 지혜를 시험해 봤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똑똑해 보였던'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혹은 편견)조차 몰랐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그제야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자신이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레오바고에서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영접한 최초의 아테네인인 디오누시오 기념교회. 디오누시오는 이후 아테네의 초대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된 다마리라는 여인도 아테네에서 최초로 세워진 교회의 중요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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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거리 풍경들을 슬라이드로 모아 보았다.

 

아테네에서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사도바울의 선교 여정에서 너무나 중요한 또 하나의 고대도시 고린도로 향해 출발!

한적한 도로 위 풍경... 높은 건물들이 없어도 이런 정겨운 풍경들이 좋다.

고린도로 가는 길에 펼쳐진 해변의 모습, 멀리 해발고도 2734m의 고린도 지역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킬리니 산의 산줄기가 보인다.

드디어 고린도시에 진입한다. 해변쪽으로 신 시가지가 있고, 고대 로마시대에 조성된 구 시가지는 여기서 약 2km 정도 가다가 메인 도로 좌측으로 진입하면 된다.

고린도의 유적과 바울사도의 사역, 고린도교회 이야기는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아테네의 유적과 사도바울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사역 이야기
즐겁게 보셨는지요?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실패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선교학적으로 볼 때는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설교는 다른 종교인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으로 다가가
소통하는 데 있어 훌륭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요.

선교학 토론을 위한 포스팅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게 될 기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오늘도 은혜롭고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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