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② - 비잔틴 예술의 꽃, 아야 소피아 대성당

2023. 1. 2. 12:31세상의 모든 풍경/Türki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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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왜 그곳에 가느냐, 무엇을 가장 보고 싶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성소피아 대성당을 꼽을 만큼 성 소피아 대성당은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상징이요, 이스탄불 여행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된 성 소피아 대성당은 과거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현재는 아야 소피아(Ayasofya)라고 불린다. 그리스어 명칭인 하기아 소피아, 아이아 소피아(Αγία Σοφία)는 '거룩한 지혜'라는 뜻으로, 정교회에서는 말씀(Logos)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둘 다 거룩한 지혜라는 뜻이다. 이 대성당은 16세기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성당이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은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명으로 건설되어 537년 12월 27일 축성된 성당으로서 정교회의 총본산 역할을 해왔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군주 메흐메트 2세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여 아야 소피아에서 금요예배를 본 이래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된 후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시로 1931년부터 잠시 봉쇄되었고, 1934년 11월 24일 내각의 결정에 따라 1935년 2월 1일 박물관으로 개방되었다. 1985년 이스탄불 역사지구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020년 7월 10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같은 달 24일에 박물관에서 다시 모스크로 개방되었다.

앞에 언급했듯이 아야 소피아는 당시 세워진 그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광대한 실내 공간을 가진 건물로, 돔의 직경만 하더라도 31.87m로, 로마의 건축물인 판테온 다음 가는 크기였으며 수백 년 뒤인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피렌체의 두오모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조적 돔(벽돌과 모르타르로 만들어진 돔)이기도 했다. 아야 소피아는 많은 정교회와 이슬람 문화권 종교 건축물들의 기본 구조가 되었으며, 르네상스 건축물의 구조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야 소피아는 세계사의 우여곡절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이다. 그 내용을 여기에 세세히 서술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일단 간략하게 요약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건물 기     간 용도 비고
최초의 건물 A.D. 360년 2월 15일 A.D. 404년 6월 20일 정교회 성당 목조지붕 바실리카
폭동으로 소실
두 번째 건물 415년 10월 10일 532년 1월 13일 테오도시우스 2세 재건
니카의 반란 대화재 소실
세 번째 건물 537년 12월 27일 1204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 재건
1204년 1261년 가톨릭 성당 4차 십자군의 약탈
1261년 1453년 5월 29일 정교회 성당 정교회의 탈환
오스만투르크의 점령
1453년 5월 29일 1931년 이슬람 모스크 오스만 메흐메트2세 점령
내부회칠,미나렛 건축
1935년 2월 1일 2020년 7월 24일 박물관 튀르키예 공화국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
정책으로 박물관 개조
2020년 7월 24일   이슬람 모스크 에르도안 대통령과 보수
이슬람의 득세로

모스크로 다시 전환

 

아야 소피아의 원래 모습을 담고 있는 조감도

 

유스티니아누스가 재건한 성당 내부의 화려한 모습을 재현한 그림(구글검색)

 

황제 전용 입구에 그려진 모자이크. 아야소피아를 출입하는 입구 중에서 오직 황제만이 사용할 수있는 문의 박공벽을 장식한 9세기 말 10세기 초의 작품으로서 옥좌에 앉은 전능하신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사람은 레온 6세(886-912) 또는 콘스탄티누스 7세(913-959)로 추정된다. 

그리스도께서 들고 있는 책의 문구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이다.  이 성화에서 그리스도의 좌우편의 원형 공간에는 각각 성모 마리아와 대천사 가브리엘을 나타냈다.
 

성당 내부의 모든 벽은 이와 같은 황금색을 배경으로 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회벽으로 덮여 있다는 사실...^^

후진(apse) 모자이크. 후진의 반 돔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성화로서 테오토코스(theotokos, 하나님의 어머니) 모자이크이다. 6세기에 제작되었다가 8세기의 성상파괴 때 훼손 되었던 것을 9세기 경에 복원했다고 한다. 옥좌에 앉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서 받침대 위에 발을 올려 놓았는데 대좌와 옥좌 모두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크가 이어지는 공간에는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형상 등이 그려져 있다.

삼각대를 가져가지 못해서 내부 전경을 ISO를 높에 담아보았다. 10년 전에 담은 사진이라 당시 디지털 카메라의 성능 때문에 노이즈가 많이 보이는 점은 양해를 바란다. 

중앙 돔을 담아보았는데, 아직도 복원 및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완전치 못한 모습이다. 본래 중앙에 그리스도를 묘사한 성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꾸란의 구절로 장식되어 있다.

돔과 돔이 만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클로즈업 하여 담아보았다.

각도를 달리하여 담아본 내부 풍경...

삼각대를 이용하여 깨끗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면 좋아겠다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는 내부 모습.

십자가의 가로축을 제거한 문양이 현재 아야 소피아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아야소피아 내부의 문양들....

지금쯤은 저 보수공사가 끝나 아야소피아 내부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방향에서 담아본 내부의 모습.

아야 소피아의 가장 유명한 성화로 꼽히는 데이시스('Δέησις) 중앙부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데이시스'는 간청, 애원을 뜻하는 단어로 심판자 그리스도가 죄인의 벌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요한을 거느린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1261년에 제작되었다. 아야 소피아 내부의 다른 모자이크보다 훼손 상태가 심각해 성모는 얼굴과 왼쪽 어깨 부분만 남아 있고,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은 상반신의 상당부분이 남아 있다.

위의 데이시스 모자이크 아래에 본래 모습을 그려놓은 그림이 있어 담아보았다. 

 

남서쪽 입구의 모자이크다. 우측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을, 좌측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아야 소피아를 성모자에게 바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보좌에 앉은 성모는 무릎에 앉힌 아기 예수를 감싸고 있는데, 아기 예수는 왼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성모자의 좌우에 있는 MP와 ΘΥ는 Μήτηρ(어머니)와 Θεού(하나님의)의 모노그램으로 하나님의 어머니, 곧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중세 교회의 마리아 숭배는 이 테오토코스, 즉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하나님의 어머니로 높인 것으로 대표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처음 제작되었을 당시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웠을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아야 소피아 본래의 모자이크와 회벽으로 덮은 후 이슬람 예술가들이 그려놓은 문양을 함께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야 소피아의 무게를 지탱하며 1500년 이상을 꿋꿋이 버텨온 대리석 기둥. 

콤니노스 모자이크. 요안니스 2세(재위 1118-1143)와 이리니 황후, 그리고 황태자 알렉시오스 콤니노스(측면에 그려져 있어서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음)가 아기예수를 품에 안은 짙은 청색 옷차림의 성모 마리아로부터 축복을 받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1122년에 제작되었다. 오안니스 2세 콤니노스 황제의 손에 들린 돈자루는 교회에 대한 황실의 기부를 의미한다.

조이 여제의 모자이크. 조이 여제와 남편 콘스탄티누스 9세가 파란 색 옷을 입고 왼선에 성경을 든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는 모습을 형상화한 모자이크다. 그리스도의 좌우에 있는 IC와 XC는 그를 상징하는 이에수스 크리스토스(Ιησούς Χριστός)의 모노그램이다. 콘스탄티누스 9세가 들고 있는 단 자루는 위의 콤니노스 모자이크에서와 마찬가지로 황실의 기부를 상징한다. 재미있는 것은 조이 여제가 결혼을 세 번 했는데, 남편이 바뀔 때마다 이 모자이크의 남편 얼굴과 문구도 바뀌었다고 한다.

회벽이 칠해지지 않은 모자이크화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습. 정교회의 총대주교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이 두 인물은 성 요한 크리소스톰(왼쪽)과 성 이그나티우스(오른쪽)다. 이들을 포함한 여러 성인을 형상화했다. 이 모자이크들에 회칠이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슬람 시대에 모스크로 사용하기 위하여 추가로 시설물로서, 이맘이 꾸란을 낭독하고 설교하는 장소이다. 

회벽으로 덧칠해진 벽은 이슬람식 단순한 문양으로 채색되어 있다.

비네팅이 생기지 않는 화각으로 다시 담아본 남서쪽 입구의 모자이크.

외부 다른 방향에서 다시 담아본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에서 남쪽으로 바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있는 '소 아야 소피아 모스크'.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이 건물은 아야 소피아보다 조금 빠른 527년에 기공하여 536년에 완공하였다. 아야 소피아의 건축가들이 이 성당을 설계하였기 때문에 작게 만들어진 일종의 구조 테스트 건물이란 통념이 있지만, 큰 구조를 제외한 디테일들은 다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견해가 맞선다. 완성된 이후에는 성 세르기오스와 바코스 성당(Church of the Saints Sergius and Bacchus)으로 쓰였고, 이름대로 현재는 모스크로 쓰이고 있다.

소 아야 소피아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커플의 모습이 참 정겹고 아름다웠다.

아야 소피아의 부속 건물들과 풍경들...

아치와 기둥으로 이어진 성당 주변의 복도들.

아야 소피아의 건물구조를 보여주는 3D 조감도

 

야야 소피아의 건축에 관한 건축 구조학적인 설명이나 건축과정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들까지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중세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대성당은 그 역사와 파란만장한 세월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거리들을 담고 있다.

 


 

2023년의 첫 포스팅으로 이스탄불의 두 번째 이야기, 성 소피아 대성당에 대한 포스팅을 마칩니다.
다음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블루모스크와 그랜드 바자르, 베야지드 광장, 지하저수지 등을 비롯한 볼거리 다양한 거리 풍경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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