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② - 네팔 티벳불교의 중심, 부다나트 스투파

2023. 1. 9. 11:29세상의 모든 풍경/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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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카트만두의 부다나트 스투파에 두 차례 방문했다. 2012년 9월에는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과 함께, 그리고 2013년 4월에는 인도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펀잡의 동역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따라서 이 포스팅에는 두 번의 방문을 통해 담은 사진들이 함께 섞여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파란 하늘이 보인다면 그것은 2012년의 사진이고, 반대로 구름이 많은 잿빛 하늘이라면 2013년의 사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부다나트 스투파는 카트만두의 외국인 거리이자 최고 번화가 중의 한 곳인 타멜 거리에서 6km 정도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타멜에서 출발한다면 카트만두 시내의 혼잡한 교통사정상 대체로 30분 정도의 이동시간을 잡아야 할 것이다.

부다나트 스투파로 올라가는 길에는 작은 규모의 스투파와 사리탑들이 여럿 보인다. 이곳은 쇠엠부 사원으로서, 네팔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악귀를 쫓는 커다란 금강경으로도 유명하다고...^^ 

부다나트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원형 티벳불교 사원이 눈앞에 등장한다.
 

네팔은 인도와 함께 대표적인 힌두교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인도연방은 인도내의 힌두교도가 78%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세속주의 국가이지만, 네팔은 왕정이 폐지된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힌두교를 국교로 삼았던 나라였다. 네팔에서 힌두교도는 전체 인구의 87%를 차지하고 있고 불교는 8%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로 티벳불교에 속한 네팔의 불교는 힌두교와 더불어 네팔 사회와 문화에 있어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부다나트 사원은 티벳 이외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티벳 불교사원이다. 이 사원은 카트만두 동쪽에 위치한 티벳 문화의 중심지로서, 네팔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다나트 사원은 대략 1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외부의 모습은 불교의 우주를 상징한다. 사원의 내부에 들어가면 불교 신앙의 많은 신성한 숫자가 포함되어 있는 놀라운 프레스코화와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스투파(Sthupa)는 산스트리트어로 저장소를 의미한다. 특히 고대에 곡식을 둥그런 원의 형태로 높이 쌓아놓은 것을 스투파라고 불렀다. 2500여 년 전에 인도 쿠시나가르에서 부처님이 열반하자 당시 장례 절차에 따라서 화장을 했는데, 이때 곳곳에서 부처의 유해를 모셔가겠다고 경쟁을 하는 바람에 결국 그 재를 여덟 곳으로 나누어 보냈다고 한다. 이 8개 지역의 수장들은 부처의 화장한 유해 위에 당시의 관습에 따라 흙이나 벽돌을 쌓는 형식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 형태가 둥그런 우리나라의 능 무덤 형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스투파란 이름이 붙여졌고, 이는 인도와 티벳에서 불교사원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네팔의 스투파는 원형 둥근 지붕 위에 사각형 탑을 설치하고 그 탑 위에 부처님의 눈을 그려놓았다는 점이 다른 나라의 스투파와 차이가 난다. 지혜의 눈으로 불리는 이 눈은 네 방향으로 모두 설치되었는데, 이 때문에 방문객들은 네 방향 어디에서나 똑같은 모양의 사원을 보게 된다. 이 탑에 그려진 눈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가시세계, 즉 현상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 즉 깨달음을 통한 참된 진리를 보는 눈을 의미한다.

티벳불교 사원에 가면 곳곳에서 원통모양의 마니차(摩尼車)들을 볼 수 있다. 저 마니차 안에는 불경이 들어 있고, 겉에는 진언(眞言), 즉 만뜨라가 적혀 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은 셈이라고 하니, 꼭 성경을 머리에 베고 하룻밤 자면 성경의 내용이 머리 속에 다 들어온다는 우스갯 소리를 듣는 듯 했다. 쉽게 표현해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부대중들의 신심을 고취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도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또한 티벳불교사원에 가면 마니차와 함께 곳곳에 설치되어 하늘에 휘날리는 타르초들을 볼 수 있다. 타르초 역시 오색의 다양한 깃발에 '옴마니받메훔'  같은 불교경전의 진언을 써 넣어 휘날리게 함으로써 그것을 보고 기도할 때마다 부처에 자신을 귀의하도록 하기 위한 도구이다. 동시에 타르초는 부처의 깨달음과 불법(佛法)이 바람을 타고 세상 어디에나 퍼져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네팔에서 티벳불교는 주로 중국의 불교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온 티벳인들이 주로 믿고 있지만, 힌두교도들도 이 사원에서 똑같이 기도하고 같은 뿌리를 가진 종교로서의 동질감을 확인한다. 사진에서도 네팔인과 티벳인들을 모두 볼 수 있다.

마니차를 돌리며 사원의 중앙탑을 돌고 있는 사람들...

스투파 주변의 작은 불탑에 새겨진 불상 앞에서 기도를 바치는 여인. 여인은 지금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

사리탑 위에 놓인 자홍빛 꽃잎이 유난히도 강렬히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불탑 앞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절을 하며 기도를 바친다.

다른 쪽에서 바라본 부다나트 스투파. 어디서 봐도 같은 모양이다...^^

신앙과 일상의 삶이 상당히 분리된 기독교와 달리 힌두교도들이나 불교도들은 일상의 삶이 곧 자신들의 신앙영역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성경에서 늘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는 로마서 12:1의 말씀은 우리의 예배, 우리의 신앙이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어서는 안되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힌두교도나 불교도들의 일상적인 삶에 녹아든 신앙적인 행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투파 앞에 있는 작은 석탑에는 머리를 대고 기도하는 신도들이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스투파 상단부만을 클로즈업 해서 담아보았다.

부다나트 스투파 주변 풍경이다. 젖먹이 아기를 품에 안은 아빠와 이마에 크게 빈디를 찍은 할머니의 미소가 정겹게 다가온다.
 

스투파 주변에는 크고작은 규모의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즐비하고 티벳불교의 승려와 신도들, 관광객들의 발길로 혼잡스럽다.

내가 두번째 방문했던 때가 2013년이었으니 이제 거의 10년이 흘렀다. 지금 이곳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기 길을 오가고 있을까?

한국사회에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무종교화 현상은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국 기존의 종교들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그 본래적인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복음이 생명력을 회복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 영적으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참된 삶의 좌표와 희망을 제시할 때 그들을 다시 영적인 삶의 영역으로 돌이킬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몇 장의 사진들을 통해 카트만두 부다나트 스투파에서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며 회고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지난 시간들을 정리할 수 있는 지금 이 몇 달간의 여유가 내게 참으로 소중한 이유이다.

카트만두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앞에 펼쳐진 멋진 경치보다는 관광객들이 남겨두고 간 제물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내는데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

진리를 추구하고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당장 쾌락을 안겨주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선 안 될 것이다. "너희는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는 골로새서 3장의 말씀으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짙게 드리운 월요일 아침,
그래도 추위가 그리 심하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라도 외출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하루도, 이번 한 주간도
맑고 밝은 햇살이 여러분의 마음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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