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고도(古都), 박타푸르에 가다.

2023. 1. 30. 10:04세상의 모든 풍경/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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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뜨뿌르(Bhaktapur, भक्तपुर)는 9세기 후반부터 15세기까지 네팔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13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박뜨뿌르는 카트만두, 빠탄과 함께 네팔의 3대 왕국 중 하나의 수도였다. 네팔의 역사는 주로 네와르 족의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4세기경 카트만두(Katmandu)에서 발흥한 릿처비(Lichhavis) 왕조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리처비 왕조는 카트만두 지역을 지배하고 7세기 이후 타국과 외교적, 문화적 교류를 시작하면서 티베트(Tibet)와 중앙아시아에 불교문화를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다.

8세기경에 카트만두 북쪽에 있던 누와코트(Nuwakot)의 타쿠리(Thakuri) 왕조가 지배세력이 되면서 네팔은 혼란과 전쟁의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11세기경에 타쿠리의 아리데브(Arideva) 왕이 말라 왕조(Malla Dynasty)를 세움으로써, 네팔 문화의 새로운 르네상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5세기에는 카트만두 분지 안에 말라(Malla) 왕조의 3개 왕국이 세워져 네와르족을 통치하였다. 각각의 수도는 카트만두(Kathmandu), 박뜨뿌르(Bhaktapur), 빠탄(Patan) 등으로 이곳에서 네와르 문화가 꽃을 피웠다. 

필자가 제목에는 박타푸르로 쓰고 본문에는 박뜨뿌르로 쓴 이유는 필자의 현지발음 우선 원칙 때문이다. 데바나가리 문자를 발음하는데 있어, त(t)나 क(k), प(p)가 단독으로 올때는 경음으로 발음해 줘야하고, 자음이 별도의 모음이 붙지 않은 채 다른 자음의 뒤에 올 때는 모음을 생략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뭏든 관광객들에게는 박타푸르로 알려져 있으니 제목에는 그렇게 붙여놓은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다.

 

박뜨뿌르 마을 입구 주차장 옆에 공동 우물이 있고, 이 우물에서 물을 받아가려는 이들이 전통양식의 물통을 도착 순서에 따라 도열해 놓았다.

현재 인구 약 8만명이 살고 있는 이 고도의 옛 이름은 '바드가온'(Bhadgaon)으로서 9세기 중반에 건설되었다. 9세기 중반에 네와르 족 왕조가 건설했지만 1769년에 구르카 왕조가 이곳을 점령했다. 이후 왕조가 바뀌면서도 도시의 보존이 워낙 잘되어 지금도 옛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12세기에 만들어진 더르바르(Durbar) 광장은 카트만두 계곡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곳의 힌두교와 불교 신도들은 여전히 수백 년 전통을 가진 축제를 기념하고 있으며,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은 도시의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인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더르바르 광장 이외에도 박뜨뿌르에는 말라 통치 시대의 사원과 건축물, 목각 및 금속 공예품이 가득하다.

물통은 우물 안 뿐 아니라 우물 밖에도 이어져 있는데, 수도가 보급되어 있을텐데도 이 물을 받아가는 이유는 이 우물이 가진 종교적인 의미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박뜨뿌르는 카트만두와 랄릿뿌르(빠탄)과 달리 급격한 문명의 변화에 저항했다. 실제로 박뜨뿌르의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검은색과 빨간색의 전통적인 네와리 의상을 입고 있다. 도자기 만들기, 농사, 절에서 노래 부르기, 아침저녁으로 쉼터에 앉아 있는 문화 등은 수세기 동안 그들이 지켜온 생활 방식 그대로이다. 박뜨뿌르의 1970년대 도시 복원 프로젝트 이후, 도시의 시정촌은 벽돌 외관을 유지하기 위해 새 건물 건설을 통제했고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건축물의 보존 뿐 아니라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고대의 형태 그대로 여러 축제를 유지해 왔다. 박뜨뿌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제 중 하나는 비스켓 자트라(Bisket Jatra)로 네팔의 새해를 기념하는 축제이다.

박뜨뿌르 고도로 들어가는 입구 커다란 나무 위에 두루미들이 둥지를 짓고 집단 서식하고 있다. 통상 이런 새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한적하고 안전한 곳에 둥지를 짓는데, 사람들이 새들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거나 새들 역시 이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박뜨뿌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전통의 모습이 무척 잘 보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카트만두 일원의 대대적인 근대화 개발 사업에도 불구하고, 박뜨뿌르에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세워진 웅장한 건축물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을 전체가 붉은 벽돌을 쌓아 지은 복고풍 건물 양식과 전통 관습을 간직하고 있어, 마치 잘 보존된 민속촌 같은 인상을 준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영화 <리틀 붓다, Little Buddha>를 촬영한 장소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전통신앙을 표현한 전형적인 부조작품으로서 각 손마다 들고 있는 물건들을 볼 때 이 신이 시바신일 것으로 추정해 보지만 석가모니 부처와 보살들을 묘사한 그림들처럼 크고 긴 귀를 가진 것으로 보아 불교의 관세음 보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맨 아래 왼손으로 악마의 머리채를 잡고 오른손에 든 삼지창으로 가슴을 찌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부조 역시 힌두교보다는 티베트 불교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보다 훨씬 크고 여유롭고 정돈이 잘 되어 있는 박뜨뿌르의 더르바르 광장.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유엔의 기금으로 보존과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말와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역사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가치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네팔을 찾는 거의 모든 관광객들이 필수적으로 들러가는 곳일만큼 볼거리도 많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상당히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박뜨뿌르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치 중세의 어느 도시 한 복판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창문 밖으로 타르초를 내건 이 집은 최소 2백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금전의 여유가 있다면 꼭 구입해오고 싶었던 수채화 작품이다. 박뜨뿌르의 거리로 쏟아져 내리는 아침 빛이 황홀하게 아름답다.

박뜨뿌르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판매하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사람들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나와 함께 일했던 인도 동료들이다.

빛이 부족하여 ISO를 높여 담은 사진이라 좀 거칠기는 하지만 박뜨뿌르의 골목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들과 다양한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희생제사에 쓸 염소의 머리를 자르는 장면이다. 인도의 경우 지금은 동물제사가 거의 사라졌지만, 꼴까타의 깔리사원에서 염소의 머리를 잘라 희생제물을 드리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네팔에서도 이런 동물제사가 행해진다니 놀라웠다. 이 의식을 집전하는 이들은 모두 흰옷을 입은 브라만들이다.

네팔의 전통 칼인 쿠쿠리로 동물의 머리를 자른 다음 피묻은 칼을 닦는 장면이다. 쿠쿠리는 네팔 용병들이 전투에서도 사용하는 칼로서 다양한 크기와 종류가 있다.

박뜨뿌르 골목길의 활기찬 모습이다. 뜨개질을 하는 아낙네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시장풍경과 비슷하다.

축제에서 사용하는 전차가 마을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 회랑에서 노인들의 대화가 무르익고 어린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박뜨뿌르 마을의 전통 우물... 깊이가 엄청나게 깊은 이 우물에서 여인들은 하루에 서너 번 씩 물을 길어 나른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우물가에서는 마을의 온갖 정보와 새로운 소식, 가십거리들이 넘쳐난다.

3백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이 우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태어나고 죽어갔을까...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 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3-14)

이 물을 마시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의 물로 오신 예수님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흘러가기를 기도해 본다.

수백년 전의 거리에 서 있는 오토바이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지고 있다.

길가에는 따뜻한 오후의 햇빛을 즐기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사진만 보면 이곳이 인도인지 네팔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인도에서 보던 익숙한 장면을 여기서 다시 만난다. 

길거리 이발소의 풍경이 다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기둥이 너무 가늘어서 불안하기만 한 낡은 나무의자에 앉은 소년의 뒷모습과 키가 훤칠한 이발사, 그리고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 청년의 모습...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고풍스런 나무 기둥과 벽돌의 질감, 밖이 잘 보이는 오래된 창호가 사진가에게 참으로 만족스러운 소재로 다가왔다.

짚으로 만든 각종 공예품과 신발을 파는 사나이가 손님이 없는 오후 망중한을 즐긴다. 분주히 오가는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하다.

네 칸으로 나뉘어진 가게의 문 안에 하나로 연결된 공간.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잡화들, 앞을 보고 있는 아내와 등을 돌린채 가게 주인과 대화를 나누는 남편.... 분리된 듯 연결되는 삶의 이야기들...

씨없는 청포도와 바나나, 사과, 현지에서는 빠삐따라고 불리는 파파야... 이 여인들은 어떤 과일을 살까?

자전거 한대에 과일을 저렇게 싣고 다니면서 그것을 전시해 판매하는 기막힌 지혜, 거기에 햇빛을 막아줄 우산까지 거치했으니..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다섯 사람의 시선이 무척 흥미롭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맨 앞에 앉은 아저씨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르바르 광장에 자리잡은 네팔에서 가장 높은 힌두사원인 냐타폴라 사원(Nyatapola Temple). 5층 목탑의 높이가 정말 대단하다. 기단만 5단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탑의 위용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단 좌우로 두 명의 승려와 코끼리, 사자, 그리핀(힌두신화 속의 독수리 비슷한 동물), 그리고 여신까지 각각 쌍으로 탑을 호위하고 있다. 1702년에 지어진 이 사원은 두 차례의 큰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아 더 신성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중앙의 큰 건물은 느리티야 바찰라(Nritya Vatsala) 힌두 사원이다. 

광장을 좀 더 멀리서 한 컷 더 담아보았다. 

축제에 사용될 이 전차는 평시에 어린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다.

줄을 감고 매달리고, 뒹굴고, 위로 올라타고, 남자 아이들이나 여자 아이들이나 신이 났다.

엄마와 세 자녀의 오붓한 시간... 이 사진을 담은 때가 2013년인데, 그 때 이미 네팔 여인들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다.

사원 입구 제물을 바치는 곳. 제물을 드리고 나면 오른쪽 끝에 있는 종을 울려 신에게 자신이 기도를 올렸음을 알린다.
 

5층탑과 전차를 함께 담아보았다.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소년의 표정이 즐거워보인다.

좌측의 높은 석조건물 역시 힌두사원으로서, 바찰라 두르가(Vatsala Durga) 사원이다. 이 사원은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박뜨뿌르 국립박물관이다. 국립박물관치고는 좀 초라해 보이지만 이 안의 유물들은 역사와 예술성을 자랑한다고 한다.

마침 이 근처 학교에 행사가 있어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VIP를 환영하기 위해 박뜨뿌르의 전통의상을 입고 도열해 있다.

맨 오른쪽 빨간색과 검정색이 섞인 옷이 이곳 박뜨뿌르 여인들이 입는 전통의상이다. 머리 장식도 특이하고 화려하다. 여자 아이들은 모두 같은 빨간색 까미즈와 노랑색 허리띠를 두르고 머리에 두건을 썼다.

이 학교에서 제일 예쁜 아이들만 뽑아왔는지 아이들이 하나같이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예쁘다. 

나와 함께 일하는 로힛 형제가 소금(小芩) 형태로 된 피리를 불어보고 있다. 소리를 잘 내지 못해 내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우리와 함께 동행했던 네팔 친구의 딸이 공예품 가게 안에서 포즈를 취해 주었다.



 

27°40'18.0"N 85°25'40.3"E

 

www.google.co.kr

 



오늘 다시 네팔에 관한 포스팅을 이어갑니다.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많다보니
일 주일에 두 세 편씩 포스팅하는 것이 쉽지는 않네요.
이번 주간에도 일정이 바빠서 자주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즐겁게 찾아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하고 은혜로운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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