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안 캠프의 황홀한 아침

2023. 2. 3. 07:41세상의 모든 풍경/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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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서 털털거리는 15인승 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들은 저녁 때가 되어서야 포카라에 도착했다. 도로사정도 열악한 네팔에서 열 한 시간에 이르는 버스여행에 모두들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저녁을 어떻게 먹은 줄 모르고 꿀잠을 잔 우리는 다음날 오전에 휴식과 정비를 마치고 난 후 점심을 먹고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 오르기 위해 칸데(Kande) 마을로 향했다.

 

Australian Camp Trail head · 7RVC+MF, Dhampus 33700 네팔

★★★★☆ · 하이킹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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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데마을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하이킹 스타팅 포인트에서 캠프 정상까지는 약 두시간 남짓 소요되는 그리 길지 않은 코스다. 하지만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길도 미끄러워서 가는 길은 쉽지 않았고, 오랜만의 등산이라 두 세 차례 쉬어가야만 했다. 

그래도 등산로 초입에서 만나는 네팔 산골마을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히말라야 산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 한 장 담았다.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는 네팔 산골소년들의 모습. 

두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들... 평소에 운동을 좀 많이 해둘걸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비가 내리거나 날씨가 습하면 끊임없이 습격해 오는 산거머리들이었다. 등산할 때 나무 위에서도 떨어지고 잔디밭에 잠시 서 있으면 신발을 타고 기어 올라와 피를 빨아먹는다. 갑자기 다리나 목이 가려워서 긁으려고 보면 거머리가 붙어 피를 빨고 있으니 징그럽기 그지 없다. 떼어내도 한 동안 가려움증이 가시지 않아서 반드시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야 한다.

오르고 또 오르다보면 반드시 정상이 나타난다.

도착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는 온통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우리가 저녁밥을 먹게 될 엔젤스 헤븐 게스트하우스의 레스토랑. 이 잔디밭에서도 거머리들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네팔친구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일출시간에 맞추어 일어났다. 잔디밭과 주변언덕을 산책하며 안개낀 계곡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만났다.

밤새 날씨는 깨끗하게 개었으나 햇살을 받고 피어오르는 안개로 시정이 맑지 못하다.

햇살이 강해지면서 점차 하늘도 깨끗해지고 어둡고 축축하던 세상이 환하게 밝아온다.

해가 솟아오르자 하늘은 맑게 개었고, 멀리 안나뿌르나 남봉과 한출리 봉이 장엄한 자태를 드러낸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과 장쾌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꿈꾸었던 히말라야의 장관 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냥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어린 시절부터 숟하게 들었던 바로 그 안나뿌르나 봉우리다. 안나뿌르나 정상은 아니고 남봉이지만 이렇게 손에 잡힐듯이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는 이런 멋진 풍광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문적인 산악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나무들 사이로 길이 열린 길을 따라 저 산의 끝까지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저 마음만...^^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는 이런 롯지들이 여럿 있는데, 롯지의 수준에 따라 아주 저렴한 가격에도 이용할 수 있다. 옆에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꽃이 예쁘게 핀 넝쿨이 낭만적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아이들도 씩씩하게 잘 올라갔다 내려온다.

정상에 오르면 언제나 내려갈 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귀여운 산골소녀들...^^ 천진한 미소가 사랑스럽다.

아이들의 뒤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끝냈을 막내가 소리치며 울고 있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네팔 아이들은 외지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거운 바랑을 지고 오르는 산골소녀... 내가 순창 복흥의 산골에 살던 어린 시절, 우리 할머니도 늘 머리에 무거운 광주리를 이고 산을 넘어 다니셨다.

이 소녀의 크고 맑은 눈동자에 슬픔이 차오르지 않기를, 그 순수함과 동경이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기를 기도해 본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산골마을에는 장난감이 없었다. 최고의 장난감은 대나무 통을 잘라서 막힌 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어만든 대나무 물총이었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 막대기를 꽂아 가지고 노는 아이의 모습이 내 어린시절을 보는 듯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 있을까? 이제 막 20대가 되었을 소년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산골마을에 펌프를 설치하고 이곳에서 물을 받을 수 있도록 수도를 만들었다. 보통은 여인들이 물을 긷는데, 이곳에서는 남자 아이들이 이 일을 맡았다.

깔끔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네팔의 버스들은 우리나라 1970년대에 다니던 버스와 형편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루종일 돌을 깨는 여인..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데리고 나왔는데, 아이는 너무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먹고 살기 위해 매일 돌을 깨야 하는 여인이나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지 못한 채 엄마 옆에만 붙어있어야 하는 아이나 힘들기는 매한가지... 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찾기를 기도한다.



10년 전에 다녀온 네팔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사진을 보면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사진이 없었더라면 기억에서 이미 사라졌을 그때의 이야기들...
이렇게라도 다시 되돌아보며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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