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0. 06:46ㆍ아름다운 대한민국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전주에 방문했지만, 경기전 안에 들어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한옥마을과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에 쫓겨 정문 앞을 지나쳐 갔을 뿐이었죠. 이번에는 작심하고 티켓을 구입하고 경기전 구석구석을 돌아보았습니다. 물론 봄이나 가을풍경을 담았으면 더 생동감있고 아름다웠겠지만, 겨울의 나목들과 어울린 경기전 역시 건물 그 자체가 가진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대부분의 사진은 라이카 M마운트 수동렌즈인 보이그랜더 녹턴 클래식 40mm f1.4와 50mm f1.2 렌즈를 이용해 담았고, 광각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Nikkor AF-S 20mm f1.8N 렌즈가 제몫을 다했습니다.
경기전은 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한 곳으로서, 영정을 실제로 모신 정전 건물은 보물 제15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경기전 권역은 1991년 사적 제339호로 지정받았다. (나무위키 백과 참고)
1410년(태종 10년)에 전주,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는데, 1442년(세종 24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숭전(永崇殿)'으로 이름을 고쳤다. '경기(慶基)'라는 이름은 조선의 국성(國姓)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이므로 '경사스러움(慶)이 터잡은(基)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경기전을 제외한 4곳은 모두 불탔고 정유재란 때 이 경기전마저 소실되었다. 그 후 광해군 때 경기전만 복원했다. 태조 어진은 임진왜란 당시 묘향산,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 정유재란 때는 서울 명륜당 그리고 동학농민운동 때는 위봉산성으로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경기전 입구에 있는 하마비(下馬碑)에는 이곳이 어떤 장소였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늦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경기전의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하지만 사계절 각각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므로 꼭 가을방문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여기서부터는 태조의 어진을 봉안했던 정전(正殿)이다. 현재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어진은 원본과 거의 똑같이 그린 모사본이다.
경기전에서 가장 멋진 포토존이라고 할 수 있는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서면 짧은 대나무 숲길로 이어지는데,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었을만큼 너무 낭만적이고 멋진 곳이다.
정전의 처마와 단청이 참 깔끔하고 미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늘 혼자 사진을 담으러 다니는 몸인지라, 이 멋진 곳을 모델도 없이 담았다.
20mm 화각으로 담은 경기전의 정전 모습이다. 보물로 지정될만큼 아름답고 균형미를 갖춘 건물이다.
정전을 정면에서 담아보았다.
이번에는 오른 쪽에서... 건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역시 한 낮의 태양과 맞짱을 뜬 역광사진은 플레어를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때로는 플레어가 담긴 사진도 나름 매력이 있지 않은가?
왜 중고생과 아이들 한복차림이 많은가 알아봤더니 성인 렌트비용의 50%를 할인해 준다고...^^
개인적으로 한옥이 지닌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구도라고 생각된다.
과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실록각이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보관되어 실록들을 일본군에 약탈당하지 않기 위해 정읍 선비인 손홍록이 우마차를 이용해 극적으로 내장산에 있는 한 암자까지 운반하여 끝까지 지킨 이야기는 참 감동이었다. 손홍록, 오희길을 비롯한 정읍의 선비들이 1천여 권에 달하는 전주서고의 실록을 내장산 골짜기에 있던 은봉암, 용굴암, 비래암으로 차례로 옮기며 왜란이 끝날 때까지 실록을 지켜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총 4부가 발행되어 전국 각지의 서고에 비치하였는데, 다른 세 곳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이곳 실록만 살아남아 오늘까지 조선왕조의 역사를 온전하게 전해주고 있으니 우리 후손들은 그들의 헌신과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왕조실록 기적비에 당시의 상황과 이동경로, 날짜 등이 적혀 있다.
40mm 화각이 주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실록이 보관되어 있는 전주서고를 돌아나가면 오른쪽으로 조경묘를 볼 수 있다. 조경(肇慶)은 '조선왕조 창업의 경사가 시작되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경묘는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과 시조비 경주김씨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조선 왕실의 시조 사당이다. 이한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이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가 강원도 삼척을 거쳐 함경도 의주로 옮겨갈 때까지 전주 이씨가 대대로 살던 곳이다. 조경묘는 영조 47년 (1771)에 경기전 북쪽에 세워, 영조가 세손(정조)에게 쓰게 한 전주 이씨 시조 내오의 위패를 모셨다. 조경묘는 태조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신 경기전, 이한의 묘역인 조경단, 태조의 고조할아버지인 목조가 살던 이목대와 함께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임을 상징하는 곳이다. (조경묘 안내문 참조)
경기전의 정전 뒷 모습과 겨울 숲 나목의 그림자가 자아내는 분위기가 사뭇 오묘하다.
경기전에 있는 어진은 1872년(고종 9년)에 원본이 너무 오래되어 모사한 것이다. 현재 경기전 진전에 있는 어진은 모사본이며, 〈조선태조어진〉 원본은 어진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원본은 1년에 1번 11월중에 약 3~4주간 전시된다고 한다.
어진 박물관은 내부 공사중이어서 어진이 보관된 곳만 일부 개방되어 있었다.
고궁과 성당이 어우러진 풍경이라니...^^ 한복을 빌려입은 소녀들은 인증샷을 담기에 바쁘다.
유교의 대표적인 유적과 천주교 성당이 마주보고 있는 이 풍경은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호남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은 대한제국 말기에 세워졌는데, 조선말에 서학을 배격하며 극심한 박해가 일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담장너머의 건물과 풍경이 그대로 보일 수 있을 만큼 높지 않게 쌓아올린 기와 돌담이 운치를 더해준다.
왕궁에서 드려지는 제사음식을 만들던 수복정.
한옥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을 잘 보여주는 각도이다. 담과 담이 만나고 처마와 처마가 이어지는 한옥의 정겨움은 서양식 건물들이 갖지 못한 동양적인, 그리고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준다.
구도에서 안정감과 평안함이 느껴진다.
한옥의 열린 문들처럼 조선왕조도 좀 더 일찍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더라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그러나 역사는 상상과 가정의 영역이 아님을 기억하고 오늘을 바탕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왕실의 제사에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모녀가 막 들어서는 곳이 왕이 마시는 물을 긷는 우물, 즉 어정(御井)이다.
마당과 뜰이 넓어 여유롭게 느껴지는 한옥구조. 우물의 앞쪽에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제관들의 제계의식(제사 지내기 전에 몸을 정결하게 하고 의관을 정제하는 것)을 위한 제각이다.
이곳은 마청으로서 조정에서 제사에 참례하기 위해 온 관리의 말을 두는 곳이라 한다.
서재를 중심으로 담아본 경기전 부속건물들.
부속건물에서 정전으로 이어지는 문.
경기전의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하급관리들이 수직하던 수복청.
수복청 내부의 모습을 20mm 화각으로 담았다.
경기전 부속건물들은 넓은 뜰을 중심으로 여유있게 자리잡고 있다.
부속건물들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
부속건물들을 밖에서 바라보노라면 푸르른 소나무 두 그루와 더불어 사뭇 그 아름다움이 더 느껴진다.
오늘 저녁부터는 매서운 명절 추위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날씨는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포근한
행복한 설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설 연휴에는 저도 포스팅을 쉬어야겠네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탄강에서 만난 겨울왕국 (6) | 2023.01.25 |
---|---|
순교지에 세워진 호남 최초의 서양식 건물, 전주 전동성당 (10) | 2023.01.21 |
전통의 미(美), 수동렌즈로 담은 전주 한옥마을 풍경 (14) | 2023.01.19 |
오리, 날다 (14) | 2023.01.17 |
황룡강변의 겨울연가 (feat. 겨울연가 OST) (12) | 2022.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