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에서 만난 겨울왕국

2023. 1. 25. 17:48아름다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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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를 맞아 월요일 새벽에 광주를 떠나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동생들과 함께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님을 뵙고 함께 점심식사를 나누고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차도 마시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외출을 마치고 요양원의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아버님을 모셔다 드렸는데, 장남인 나를 향해 연신 머리를 숙이시며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시는 아버님을 보며 참 애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총명하시던 분이 치매가 심해지셔서 가끔씩 저와 아내를 못 알아보시고, 손자손녀들 이름도 기억을 못하시니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그래도 아픈데 없이 음식도 잘 드시고, 요양원 생활을 잘 하고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화요일에는 평소에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신 은퇴목사님과 몽골에서 오신 선교사님을 뵙고 점심식사를 하며 정담을 나누었지요. 그리고 저처럼 사진을 좋아하시는 목사님과 뜻이 맞아 셋이 함께 철원에 있는 한탄강에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올 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날, 영하 17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 얼어붙은 강물 위를 걸으며 겨울추위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제 몇 개월 후면 더운 나라로 가서 겨울풍경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껏 겨울을 느끼고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너무 추워 카메라 조작도 힘들고 렌즈 교환도 쉽지 않았지요. 결국 모든 사진을 24-120 렌즈 하나로 다 담았습니다. 그래도 삼각대를 가져간 덕분에 얼음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의 아름다운 흐름을 담아낼 수 있었답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03분이었는데, 3분이 늦어 주상절리길은 입장이 마감되어 가보지 못하고, 순담매표소에서 출발하여 고석정에 이르는 계곡풍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약 3km 정도의 길지 않은 코스인데도 사진을 담으며 걸으니 두 시간이나 소요되었네요. 다행히 순담매표소로 돌아오는 마지막 셔틀버스를 탈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손을 호호 불면서 담은 사진들을 즐겁게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에 절벽으로 이어진 길이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길인데, 3분이 늦어 그 길을 걷지 못해 아쉬웠네요.

바위 아래 졸졸 흐르던 옹달샘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겨울의 정취는 이렇게 추워야 제대로 느낄 수 있지요...^^

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얼음이 층을 이루어 얼어붙었습니다. 

한 달만 지나면 이렇게 매서운 겨울 추위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 봄 기운이 이 계곡에도 스며들겠지요?

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오싹합니다.

추위 속에서도 촬영은 포기할 수 없지요. 삼각대를 펼쳤습니다. 삼각대 덕분에 세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우유처럼 부드럽게 표현되었습니다.


셔터스피드를 조절하여 좀 더 역동적이고 힘있는 물결을 표현해보았습니다.

사진은 뺄샘의 예술인지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음으로 덮인 바위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의 역동적인 느낌을 담았습니다. 

같은 포인트지만 셔터스피드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느낌의 사진이 만들어졌지요?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부드럽게... 한 곡의 음악속에 포르테와 피아노가 있고 마에스토소와 아다지오가 어우러지듯이, 우리 삶에도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문득 이 추운 겨울을 물고기들은 어떻게 견뎌낼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이 한 겨울에 차가운 물속에서 옷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먹이를 찾으며 버텨내는 물고기들이 어쩌면 우리보다 더 강인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물이 흘러가 강을 이루고, 그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고.... 그렇게 세상은 하나가 됩니다.

군생활 할 때 여름에 고석정을 찾아 당시 가지고 있던 FM2 수동 카메라로 몇 장의 사진을 담았고, 신학교 교육전도사 시절에 중고등부 아이들을 데리고 이 강변에 있는 대한수도원에 와서 수련회를 하면서 멱을 감고 놀았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한 여름이었지요. 지금의 겨울 한탄강은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얼음밑으로 숨죽여 흐르는 물들도 봄이 되면 유난히 졸졸졸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물도 계절을 느끼는 것만 같습니다.

눈이 내린지 열흘 남짓 지났음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눈이 덮여 있습니다. 포천에서 군생활 할 때 혹한기 훈련을 위해 신철원에 자주 왔는데 그 때의 무시무시한 추위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한탄강의 암벽들은 참으로 특이합니다. 마치 인공으로 깎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고인돌처럼 채석하기 위해서 일부러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보기만해도 시원해지는 계곡입니다...^^

같은 계곡인데 셔터스피드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 묻어납니다.

중앙부만을 클로즈업하여 담아보았습니다.

바위 위로 덮인 얼음의 형태가 참 신비롭습니다.

136km를 흐르는 한탄강은 지금은 북한 땅인 평강군(광복 당시 행정구역으로 평강군 현내면 상원리)에서 발원하여 철원군과 연천군을 지나 임진강에 합류하는 하천입니다.  한탄강이란 이름은 궁예가 왕건의 쿠데타 당시 도망가던 중 이 강을 건너면서 한탄을 했다는 민간전승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잘못 알려졌지만, 사실은 크다는 의미의 순우리말 과 여울 (灘)이 합쳐져 '큰 여울이 있는 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대탄강(大灘江)으로 적혀 있다고 합니다. 

한탄강은 후삼국 시대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성을 끼고 도는 강이었기 때문에 수도를 감싸는 강의 지위를 얻었지만, 수운 교통 활용성이 낮았습니다. 이는 궁예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지적받는 부분인데요, 한탄강은 급류가 너무 세고 강의 고저차마저 심할 뿐더러 폭포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대규모 물자가 오갈 수 있는 수운의 활용이 불가능합니다. 모름지기 수도라고 한다면 많은 인구와 국가 기반 조직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자원의 조달과 물류가 원활한 곳이어야 합니다.  

철원 평야는 농업에 유리한 지역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수도의 인구를 부양하기는 부족하고, 결국 식량과 각종 물자들을 외부에서 실어날라야 하지요. 그런데 그 수송선 역할을 해야 할 한탄강이 그 구실을 할 수 없으니 결국 수도 철원의 쌀값이 폭등했고, 민심은 흉흉해졌으며, 이 때문에 왕건의 쿠데타가 쉽게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탄강 일대는 많은 부분이 용암대지로, 주상절리등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경치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소개할 직탕폭포도 주상절리가 무너지며 만들어진 절경이지요. 역시 주상절리 지대에 있지만 그 모양은 다른 재인폭포도 유명합니다. 한탄강은 경기도 일대의 인기 여름 피서지 중 하나로서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곳이며, 만수기에는 스릴넘치는 래프팅 코스이기도 합니다.  

바위와 돌 위를 덮은 얼음은 고드름이 되어 수면에 닿고, 그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흘러갑니다.

평소같으면 흔히 지나칠 바위지만 얼음모자와 고드름 장식 덕분에 특별한 관심을 받고 촬영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고, 추운 겨울에는 여름이 그립습니다. 분명한 것은 겨울도 영원하지 않고 여름도 지나간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그 사이에 만나는 봄과 가을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줍니다. 따라서 어느 계절이 찾아오든 낙심하지 말고 살 일입니다.

이 물소리가 시인에게는 고운 시어로, 음악가에게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려오겠지요. 그리고 사진가에게는 영원히 남을 한 컷의 기억으로 담겨질 것입니다.

한 겨울 얼음 속에서 봄의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붙드는 사람에게 기적은 찾아올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뜨거운 불가마 속에서도, 차가운 얼음장 속에서도 생명을 품고 지켜냅니다.

한탄강의 절경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군도, 조선명탐정, 대동여지도를 비롯하여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각시탈, 선덕여왕 등 이곳에서 촬영한 작품들의 수를 헤아리면 열 손가락도 부족합니다. 그만큼 특별한 풍경을 지닌 곳이라는 의미겠지요~

한탄강 전망대의 모습을 아래서 위로 올려 담았습니다.

고석정과 얼어붙은 한탄강의 모습입니다.

같은 풍경을 흑백으로 담아보니 느낌이 또 다르네요.

영하 20도의 혹한에 찾은 한탄강과 고석정은 추위를 잊게 할만큼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면장갑을 끼고서도 손이 시려워 셔터를 누르기 힘든 날씨... 그래도 오래오래 기억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목사님과 선교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밤도 여전히 춥네요.
모두들 건강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화재와 동파예방 잘하시구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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