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그 경계선에서 사는 사람들

2015. 4. 18. 01:54인도이야기/인도여행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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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이중주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공간...
바라나시에 가면 반드시 들러봐야 한다는 곳, 
바로 갠지스 강변에 자리잡은 화장터이다.

갠지스 강변에서 시신을 화장하여 그 재를 강물에 뿌리면
생전의 모든 죄업를 씻고 가장 높은 까르마를 쌓아 
다음 세상에서 더 좋은 삶으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는 매일 인도 전역에서 수도 없이 시신들이 밀려들어온다. 

바라나시에 처음 방문하던 날,
나는 화장터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화장터인 마니까르니까 가트로 가는
좁은 길목에 있었고
나는 그곳의 2층,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방을 얻어 이틀을 묵었다.


화장터까지 가는 길은 좁디 좁은 골목길이어서
차량으로는 어림도 없고
오직 가족과 친척들이
망자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서만 이동할 수 있기에
밤낮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시신을 멘
상여꾼들의 외침을 들어야 했다.

"람, 람, 사떼이 헤, 람, 람, 사떼이 헤."

거의 2,3분 간격으로 들려오는 이 외침의 의미는 이렇다.

"라마신이여, 라마신이여, 진리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신에게
인간의 생과 사에 관한 모든 진리가 있다는 말로서
이는 화장터로 이동하는 동안
악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주문이라고 한다.

매일 최소 300여구 이상의 시신이 태워지는 이곳 화장터....
이런 화장터가 갠지스 강변에 수도 없이 많다고 하니 
매일 갠지스에 던져지는 시신의 수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러면 '람람 사테이 헤' 외침소리와 함께
이들의 길을 따라가 보자...

참고로 이곳 화장터에서는 절대로, 네버,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카메라를 들고만 있어도 옆에 달라붙어서
사진찍으면 안된다고 위협을 하고
함부로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빼앗겨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 올리는 사진들은 보트를 타고 멀리서 담은 장면들이고
이동중의 사진들도 대부분 노파인더 샷으로 담은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장례행렬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을까...
인도의 장례는 통상 이틀만에 끝나지만,
이곳 갠지스까지 오는 시신들을 때때로 냉동차를 동원하여
하루 이틀씩 달려오기도 한다고... 


시신을 멘 이들은 쉼없이 "람, 람, 사떼이 헤"를 외쳐야 한다.
시신이 운구되는 동안 망자의 영혼이 악한 귀신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가 늘 즐겨가는 라씨가게인 블루라씨도
마니까르니까 가트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맛있는 라씨를 먹는 동안 계속해서 시신행렬을 볼 수밖에 없다.
이곳 바라나시에서 죽음은 멀리 있는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라씨를 먹는 우리의 바로 앞에 펼쳐지는 일상의 하나이다.


이 시신행렬은 경찰의 에스코트까지 받으며 화장터로 향한다.
망자를 보내기 위해 시신을 메고 오는 유족과 친지들의 표정이 진지하기만 하다.


드디어 화장터에 도착했다. 
시신은 신의 세계로 향하는 계단인 가트를 지나 거룩한 어머니의 강, 강가로 향한다.


시신은 브라만 사제의 간단한 기도를 거친 후에
갠지스의 거룩한 강물에 세 번 잠긴다.
거룩한 물에 시신을 잠기게 함으로써
그가 생전에 행한 모든 악한 까르마를 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룩한 강가의 성수에 잠긴 시신은 이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장소인 불의 제단으로 향한다.


시신을 화장하는 제단은 오는 순서에 따라서 그 위치가 정해지고
가족과 친지들, 가까운 친구들이 그 행렬에 동행한다.
다만 이 장례식 현장에 여인들은 참석할 수 없는데,
아내나 딸도 예외는 없다.


매일 최소 300여구의 시신이 마지막을 맞는다고 하는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수선하고 무질서해 보여도 
모든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시신이 제단에 안치되는 동안 상주와 고인의 아들들은 함께 동행한 이발사에게서 머리를 깍는다.
이발사는 동네에 고인의 사망사실을 전파하는 카바르(소식전달자)일 뿐 아니라,
장례의 모든 정결예식을 담당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서 잘 타는 좋은 나무를 구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화장터 주변에는 나무를 파는 가게들이 여럿 있는데,
이 사업은 몰락한 과거 바라나시 왕족 자손들의 전유물이다.
일종의 전매제도로서 그만큼 화장용 나무를 파는 사업의 수익이 대단하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망자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화장터에서도 빈부의 차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리어카에 실린 것처럼 충분한 양의 잘 타고 좋은 나무를 구입하여 시신을 화장하려면
서민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 가난한 서민들은 질이 낮은 화목을,
그것도 시신을 완벽하게 태우기에는 부족한 양만큼 구입할 수 밖에 없다.


나무의 무게를 재는 저울.
망자의 인생의 무게도, 그가 지나온 삶의 가치도 과연 저 저울로 잴 수 있을까...?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계없이
이곳에서 화장을 잘 치루기만 하면 극락에 이를 것이라는 이들의 믿음은
죄와 심판의 의미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도덕적이고 고결한 삶의 가치마저 훼손시켜 버린다.


돈을 지불하고 나무를 구입하면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화장터 제단에 나무를 배달해준다.


나무를 달아서 파는 저 저울은 망자가 불태워지는 그 순간까지 이곳이 바로 속세임을 보여준다.


장작더미 위에 시신을 제단에 안치할 때는 머리가 남쪽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시신을 안치한 뒤에 브라만 사제가 제단 앞에서 불의 신, 아그니에게
시신을 받아 하늘로 데려가 줄 것을 바라는 주문을 왼다.
그리고 화장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상주의 뒤를 따라 시신을 왼쪽으로 세 바퀴 돈다.


이제 망자의 육신은 아그니 신에게 맡겨졌다. 
저 불꽃처럼 그의 영혼은 하늘로 날아올라
윤회의 사슬을 끊고 천계에 오르게 되리라.


시신이 완전히 소각되기까지는 통상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 시간 동안 상주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곧장 화장터를 떠나 가트로 내려간다.


상주를 제외한 모든 화장식 참석자들은
주검으로 인해 오염된 자신의 몸과 옷을 깨끗이 씻기 위해 
가트로 내려가 목욕을 하고 옷을 세탁한다.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공간.
이들에게 살아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며,
또 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수많은 시신이 거룩한 강 갠지스에 담겨진 후 저 계단을 오른다.
과연 그들의 죄는 그들의 믿음처럼 씻겨진 것일까...
비록 죽은 후에 시신으로 잠긴다고 할지라도...?


화장이 끝난 후 재와 모든 유물은 이곳에 버려진다.
유족들은 이곳에서 망자의 유품들을 수습하고 유골을 정리한다. 
때로는 그곳이 어떤 시신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채....


갠지스의 강물은 수많은 시신들을 품고 오늘도 어제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유족들은 유골들을 수습하여 분쇄한 다음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가 갠지스 강물 위에 뿌린다.
그가 부디 다음 생애에 비천한 자리에 나지 않고,
열반에 이르기를 기도하면서....


수많은 시신들이 불타는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동물인 견공들이 한 낮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화장터 바로 옆, 힌두사원이 있는 가트에서는
자신들과 너무나도 가까이 있어 오히려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장난끼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신과 인간, 인간과 짐승, 삶과 죽음,
선과 악의 경계선상에서 화장터는 지금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수 천 년 전 어느 날,
이 가트에서 첫 번째 시신이 태워지던 그 날과 다름없이....



한국에 있는 동안 수없이 장례를 치루고 
또 집례해 본 필자에게 이곳은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지만
시신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한국에서 처음 온 여행자들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깊은 묵상을 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모든 종교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교리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기독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제시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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