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등갈루루 - 사도 도마가 인도에 첫발을 내딛다.

2015. 4. 19. 11:45인도이야기/인도여행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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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꼿등갈루르 - 사도 도마가 인도에 첫발을 내딛다.

Kodungaluru - The Apostle Thomas took his First Step in India.


우리는 인도를 흔히 힌두교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13억 인구의 8할 가까운 인구가 힌두교도들이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인도는 1억 6천만 명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고,
3천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들도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2천8백만으로 추정되는 시크교도와
소수의 자이나교도, 조로아스터교, 바하이교도들도
인도에서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하며 공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도는 독립 당시부터 세속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최소 2천년 이전에 인도에 유대교도들이 들어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정착촌이 존재해왔다는 점이다.
남인도 께랄라주와 북동인도 지역에 아직도 유대인의 회당이 있으며,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많은 유대교도들이
께랄라주의 아라비아 해 연안도시 코친에 회당을 세우고
유대인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사진들과 함께 포스팅할 계획이다.

남인도의 께랄라주는 종교적으로 볼 때
인도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전역에서 유일하게 모든 종교가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2001년도의 통계로는 약 55%의 힌두교도,
24%를 차지하고 있는 무슬림,
그리고 18%에 이르는 기독교도들이 케랄라주에 살고 있다.

인도에서 기독교는 소수종교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2천년의 전통을 가진 유서깊은 종교이다.
그 전통은 바로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통상 의심많은 제자로 알려진 사도 도마로부터 출발한다.

전설에 의하면 사도 도마는 AD 52년에 말라바르 해변에 위치한
고대의 유명한 항구인 크랑가노르(Cranganore)에 상륙한다.
오늘날 그곳은 지도에 꼿등갈루루(Kodungaluru)로 표기되어 있다.

인도에 상륙한 도마는 처음에 자기의 동족인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으나
그들이 거부하자 원주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많은 지역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였고  
힌두교의 상층 카스트에 속한 많은 브라민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말라바르 해안 지역에 7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그 교회들은 말란카라(Malankara), 꼬따꺄얄(Kottakkayal),
빨루르(Palur),
코까망갈람(Kokkamangalam),
니라남(Niranam), 퀼론(Quilon), 차얄(Chayal)에 세워졌고
그 중 네 교회는 현재도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도마는 남인도의 동해안을 통과해서
오늘날 타밀나주 첸나이의 일부인
마일라뽀르(Mylapore)라는 해변 왕국에 도착하였다. 
그는 거기서도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으로 중국까지 가고자 하였으나
중국을 향해 가던 중 생각을 돌이켜서 다시 마일라뽀르로 돌아왔다. 
그가 복음전파 사역을 재개하자 이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이에 분노하며 적개심을 품은 힌두들의 공격으로
그는 마침내 마드라스시에서 8마일 정도 떨어진
토마스산에서 창에 찔려 순교하기에 이르렀다.
그 해가 바로 A.D. 72년이었다. 

그의 시신은 제자들에 의해 마일라뽀르에 묻혔고
오늘날 그의 무덤 자리에 성도마교회가 세워졌으며 
교회 박물관에는 도마의 것으로 알려진 뼈 조각들이 있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인도에는 사도 도마의 선교 이후로
페르시아 지역에 있던 시리아정교회에서 파송된
네스토리우스파 주교와 기독교인들이
께랄라에 이주해 와서 목회와 선교를 계속하였고,
이 교회들은 현재 인도의 주류 교단 중의 하나인
마 토마교회(Mar Thomas Church)와
시리아정교회(Cyrian Orthodox Church)로 발전하였다.

이 사진들은 바로 사도 도마가 처음 상륙했던
말라바르 해안 크랑가노르 지역에 세워진
사도 도마기념교회로서 사도도마의 전승을
자신들의 신앙고백에 포함시킬 만큼 철저하게 믿고 고백하는
시리아정교회에서 건립한 교회이다.

사도 도마의 상에 보면 아래에 인도국화인 연꽃 상징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도마의 십자가에도 네 귀퉁이에 연꽃 상징이 들어있다.
이는 곧 도마가 인도의 사도라는 확실한 인식과 전승이
대대로 이어져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2009년 12월, 
께랄라의 크랑가노르에서 도마 기념교회를 담다.


크랑가노르의 오늘날 이름은 꼬둥갈루르(Kodungallur)인데,
도마가 첫 발을 내디딘 그곳에 가면 성 도마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예수와 사도 도마의 상이 아름다운 기념교회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 교회의 이름은 
성 토마스 시리안 가톨릭교회(The Mar Thoma Syro-Malabar Catholic Church)이다.


기념교회를 다른 각도에서 본 사진이다.
케랄라를 대표하는 코코넛 나무들이 주변에 심겨져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이 예배당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필자가 인도에서 가본 예배당 중
가장 아름다운 예배당으로 다섯 손가락에 꼽힐만큼 그 구조나 형태가 아름답다.


사도 도마는 의심많은 제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그의 못자국을 만져보고 옆구리 창자국에 손을 넣어봐야 믿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 그는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한 평생 복음선교에 헌신하였다.


예수와 사도 도마의 상 앞에 활짝 핀 연꽃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도 전역에 활짝 피어나기를 소원했던 도마의 기원을 담은 상징이라고 하겠다.


도마 기념교회의 전경사진이다. 
광장을 반원형태로 둘러싼 기둥들 위에 열 두 제자의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다.


마침 성탄절이어서 예배당안에는 성탄절 장식이 되어 있었다.


크랑가노르 해안에 상륙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사도의 모습이다.


예배당 전면 제대의 모습이다.
좌측에는 사도 도마의 상이, 우측에는 사도 도마의 심장이 세워져 있다.


연꽃 위에 서 있는 사도 도마의 손에는 창이 들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찔렀던 창이자, 마일라뽀르에서 자신이 마지막에 찔렸던 창이다.


예배당 뒷편 건물들 사이를 잇는 짧은 산책로가 참 운치있다.


사도 도마의 기념관이다.
도마 전승에 관련된 다양한 그림과 설명들이 소개되어 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도마의 표정에 드러나 있다.
마침 위에서 빛이 비추는 시작부분에 야생 말벌들이 집을 지었다.


이 문이 사도 도마가 인도 땅에 첫 발을 내디뎠던 것을 기념하는 상징이다.


게이트 앞에는 사도 도마의 상륙을 기념하는 작은 유람선,
"마르 토마호"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도 도마의 여정 및 크랑가노르에 이르는 사도 도마 시대의 육로 및 해로를 소개해 놓았다.


사도 도마에 관한 연구 및 그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기독교 수도원인 "마르 토마 아쉬람"이 예배당 옆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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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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