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갈로르 - 어느 슬럼마을의 한가한 오후

2015. 4. 24. 12:03인도이야기/인도여행다큐

728x90

 

뱅갈로르에서 내가 살았던 꼬따누르 마을.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가난한 불가촉민들이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남편은 일용직과 릭샤왈라, 정원사, 청소부 등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고, 
아내와 사춘기를 지난 소녀들은 주로
주변 중상류층 가정에 아야(여자 하인)로 일한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 앞쪽 공터 한 쪽에도
그런 천막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나다니면서 눈인사와 손짓으로
아이들과 사귀기를 몇 차례, 
어느 날 오후, 카메라를 들고 천막들 사이로 들어갔다.

한 눈에 봐도 낯선 이방인.
그래도 그 마을에 아프리카와
아시아 몇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살고 있던 터라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이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이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고
나는 그렇게 그들의 일상을 렌즈를 통해 마음에 담았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천막, 비좁은 공간, 열악한 위생...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동이를 품에 안고,
머리에 이고 우물가에 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루.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바로 과거 우리의 모습이었고,
우리 또한 언제 이런 형편에 떨어질지 모르지 않는가?

마음에 깊은 연민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로 이방인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어느새 내 마음 한 켠의 무거운 짐들도
하나 둘 벗겨지기 시작했다.


---------------------------------------
2008년 8월 인도생활 초창기에
꼬따누르 마을에서


여인들은 코코넛 잎파리로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고, 맨발의 아이들은 트럭을 놀이터로 삼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카메라를 보자 어색한 미소를 흘리는 아이들..~


그래도 그 중 머리가 큰 녀석이 영화에서 보았을 법한 포즈를 취해준다.


옆에서는 새로 오픈하는 조그만 구멍가게의 간판을 쓰는 작업이 한창이다.
저렇게 요상하게 생긴 글자가 바로 이곳 까르나타카 주의 언어인 '깐나다어'이다.


어렸을 때 각종 현판을 자주 만들어본 내가 보기에도 숙련된 솜씨다.
그냥 줄만 두 줄 있으면 자유자재로 글씨들이 나온다.


마을 어귀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아낙네와 소녀들, 아이들이 여유롭게 둘러 앉아 있다.


날씨가 더워 매일매일 해야 할 빨래들도 많다.
수도가 없이 물동이에 길러온 물로 빨래를 해야 하니 지혜가 필요하다.


저 많은 빨래를 세탁기가 아닌 손으로 직접 빠느라 허리가 무척 아플텐데도 여인은 이방인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다시 바빠지는 손놀림...
비싸고 좋은 옷이 아니더라도 깨끗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던 어린시절 할머니와 어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집앞에서 황토로 냄비를 닦고 있는 여인...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한기를 견디기 위해 겹겹이 씌워놓은 허름한 천막집.


잠시 후에 며느리와 손자 손녀가 천막에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남인도 소녀들이 사랑스러운 것은 바로
쪽으로 묶은 머리에 다는 꽃 장식 때문이다.
저녁 때가 되면 내일 아침 아내와 딸들의 머리에 붙일
꽃장식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는 가장들의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근처에 예쁜 꽃들이 있으면 직접 따서 실에 꿴 다음 장식하기도 한다.


누구의 자전거일까...
아이들은 더 이상의 놀이감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내 내 손을 끌고 자기들의 집으로 인도했다.
아마도 천막이 아닌 자기 집을 자랑하고 싶었던가보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여인네도 어색한 표정으로 아이들 뒤에 섰다.


내가 말 한 마디만 건네도 까르르 웃음보를 터트리는 아이들.
저 웃음보가 너무 빨리 마르지 않아야 할텐데...


 

바이~ 하면서 손을 흔들자 아이들도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비록 한 두 평 남짓한 집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주변을 깨끗하게 쓸고 정돈한다.
어린 꼬마녀석이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빗자루를 집어들고 어른들 흉내를 내본다.


이 아이들도 글을 배우고 학교에 다니면서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할텐데....


부모님이 돌아오시기에는 이른 시간...
천막안에 있던 누이가 나와서 아이들을 돌본다.


이들은 아마도 같은 시골마을에 올라온 동일한 자띠(직업군으로서 카스트보다 세밀한 단위)에 속한 사람들일 것이다.


아이를 안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 소녀... 아직은 수줍어하는 영락없는 시골소녀다.


황구 한 마리가 마치 마을의 문지기처럼 당당하게 앞에 섰다.
그래도 날마다 밥 얻어먹은 값은 하는 녀석!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자고 떼를 쓰는 손자를 달래기가 버겁다.


사랑스런 손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할아버지....
나중에 나이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노인은 쉰 세 살이라고 답했다.
나는 잘못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그러나 노인은 다시 분명하게 쉰 세살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어렸을 때 머리가 하얗게 센 우리 할머니가
사실은 50대 초반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어른이 된 다음에야 알게 되었던 때의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 즐감하셨다면 공감버튼을 체크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