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2015. 5. 25. 14:20세상의 모든 풍경/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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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 -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Jerusalem - The Way of Cross, Via Dolorosa


비아돌로로사, 라틴어로 고난의 길, 슬픔의 길을 의미하는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갈보리) 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800m의 길과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써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비로소 확정된 길이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이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으며, 이는 18세기에 확정된 것이다. 이 중 일부는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현재 매주 금요일 순례자들은 십자가 수난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두산백과사전 참고) 이 14개 처소 가운데 10~14처소는 성묘교회 안에 위치하고 있다.

'비아'는 길을 뜻하고 '돌로로사'는 슬픔 또는 고난을 의미한다.  '비아 돌로로사'는 곧 고난의 길이다. 예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고 성 밖으로 나가 골고다로 가신 십자가의 길이다. 사실 이 길은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길이었고, 좋아서 가신 길도 아니다. 예수께서는 마 6:39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어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다. 그가 이 고난의 길을 가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아 돌로로사는 자신을 버린 길이었다. 

동시에 그 길은 고통의 길 이었다. 가시관을 쓰고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가는 그분의 등에 수없는 채찍이 날아와 살점을 찢는 고통의 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달리신 죽음의 길이었다. 그 길은 곧 육체적, 정신적, 영적고통으로 점철된 길이었다. 그분의 기적을 보고 환호하던 사람들, 그분을 통해 질병을 치료받았던 사람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환호했던 사람들이 이제 그를 조롱하고 비웃으며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다. 그를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제자들은 다 도망쳤고, 어떤 제자는 그를 은 삼십에 팔아 넘겼다. 그 길은 자신을 버린 길이었음과 동시에 타인들로부터 버림받은 채 걸어간 길이었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한 고통은 온전한 사랑의 관계로 연합된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이었다. 가장 흉악한 죄인들이 지는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아들을 아버지는 외면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라고 부르짖었다. 그 길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은 길이었다.

그분이 뙤약볕 아래서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올라갔던 그 길을 맨몸으로 걸어가자니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이제 그분이 걸어가신 골고다의 길, 고난의 길, 슬픔의 길을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 걸어보자. 

 

비아 돌로로사 14개 처소가 모두
이 사진 안에 들어있다.

맨 아래 높이 솟은 첨탑의 옆이 빌라도의 법정이고,
그곳에서 시작되어 약 800m를 위로 올라가면
그 길을 따라 아홉개의 처소가 이어지고, 
커다란 회색 돔지붕이 있는 곳이 무덤이며
그 옆의 작은 지붕이 골고다 언덕이다.

10~14번째 처소는 그곳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의 조감도이다.
전면 중앙에 헤롯대왕이 건축한 웅장한 성전이 있고,
그 우측에 안토니아 요새, 
위쪽 가운데에 헤롯의 궁전이 보인다.

제1처소는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빌라도의 법정자리이다.
현재 그곳에는 이슬람 초등학교 건물이 세워져 있다.


제1처소의 맞은 편에 있는 제2처소는
선고교회와 채찍교회이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오른쪽이
채찍교회(Chapel of the Flagellation)이고, 
왼쪽이 선고교회(Church of the Condemnation and Imposition of the Cross)이다.

위의 사진은 제2처소인 선고교회의 내부모습이다.


선고교회 안에 그려진 성화부조.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예수님과
슬퍼하는 그의 어머니, 요한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이 휴식시간에
즐겼을 것으로 여겨지는 주사위판.
시온수녀원 에케호모교회 안에 보존된
예수님이 걸으셨던 돌바닥에 그려져 있다.


채찍교회의 전면 모습.
채찍교회는 전통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이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조롱을 당했다고 하는 장소이다.
십자군 시대 교회의 폐허 위에 현재의 교회가 세워졌다.


채찍교회의 내부 전경.
이 교회당 안에는 세 개의 스테인드 글라스 그림이 있는데
바나바가 풀려나서 기뻐하는 장면,
채찍질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
그리고 빌라도가 손을 씻는 모습이다.


이 예배당의 천정에는 당시 예수님의 머리에 씌워졌던
가시면류관이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제3처소는 직선으로 시작된 비아 돌로로사가
처음으로 왼쪽으로 굽어지는 모퉁이로서
십자가를 지고가던 예수께서 첫 번째로 넘어지신 곳이다.

아르메니안 교회가 1856년에 터를 사들여 이곳에 교회를 건축했고,
이 안에는 19세기에 발굴된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제4처소는 제3처소와 거의 같은 곳에 있는데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멈추셨다는 지점이다.

교회 입구 위에는 예수님이 어머니를 만나는
반신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교회 지하에 있는 모자이크에는
한 켤레의 신발 자국이 있다. 
이곳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나가는 그의 아들을 바라보았다고 전해진다.


제5처소를 기점으로 오른쪽으로 돌아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제4처소에서 오른쪽 언덕 위로 난 길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순례차 와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로마 병정에 의해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지점이다(마27:32).

언덕길이라 지치신 예수님이 더는 못 올라가자
시몬에게 대신 지게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 이곳을 멈추지 않고 지나쳐 사진을 담지 못했고 
위의 사진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구글의 이미지 검색으로 가져온 사진임. **


제6처소는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의
왼쪽에 있는 지점이다. 

이곳은 성 베로니카의 집을 표시하고 있는데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았으나 베로니카 여인은
십자가를 지고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길가에 서 있던 여인 중의 한 명으로
땀을 흘리시는 예수님께
손수건을 거네준 여인이라는 전승이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땀을 닦고 돌려준
그 손수건에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베로니카라는 이름은 그 여인의 본래 이름이 아니라
"참된 이미지, 형상"이라는 뜻의 라틴어로서
후에 자연스럽게 이 여인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제7처소는 예수께서 무거운 십자가와 채찍질,
그리고 탈진을 이기지 못하고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다. 

오랜 시간을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채찍질을 당하며 걸어가면 
누구나 다 피가 부족해 빈혈 증세가 일어나게 되고
수분 부족으로 탈진까지 일어나며 안 쓰러질 수가 없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비아 돌로로사에서 세번을 쓰러지셨는데,
3처소, 7처소, 9처소가 그곳이다.
그곳에 세워진 교회로서 전면에 쓰러지신 예수님의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제7처소 예배당의 전면에 장식된
십자가를 지고가다 쓰러지신 예수님.


제7처소 예배당의 입구모습.


비아돌로로사의 제8처소는 7처소에서 조금 비켜
오른쪽 언덕으로 오르면
왼쪽 벽에 라틴어 십자가 모양이 새겨 있는 돌이 있는 곳이다.
돌판에 'NIKA'(예수는 승리하셨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예수께서는 울며 따르는 여인들을 향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9)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8처소에서 9처소 사이는 건물로 막혀있어서
내려와 돌아가야 한다.


제9처소로 돌아가는 길에 걸린 현수막.
ISIS의 박해로 순교 당하는 이들을 향한 애도와
그들의 탄압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 거의 다 올랐을을 때
마지막 힘을 다해 걸었지만 끝내 한번 더 쓰러진다. 

제9처소는 예수께서 세 번째로 쓰러지신 곳으로서,
이곳에는 콥틱(Coptic)교회의 성 안토니오교회가 세워졌다.

제9처소는 무덤교회의 지붕에 해당한다.


들어가는 정면 입구 오른쪽이 성 안토니오교회의 입구이다.


성 안토니오교회는 오직 콥틱 기독교인들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종파가 다르다고 해서
같은 기독교인들에게 성지를 개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콥틱교회와 에디오피아교회 사이에 있는 제9처소


비아돌로로사의 제10처소로부터 14처소까지는
무덤교회 안에 위치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제10처소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전
옷 벗김을 당한 곳이라고 한다(요19:23).

로마 병사들은 그렇게 예수님의 옷을 벗긴 후에
제비뽑아 나눠가졌다.


성묘교회 앞 광장으로
이 아래에는 오래된 물 저장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12세기 경에 현재의 마당으로 포장되었다.


성묘교회로 들어가는 입구
이곳은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가
각각 예배당을 건축하고 성지로 관리하고 있다.


성묘교회의 아래에서 위로 바라다본 모습.


성묘교회의 웅장한 아치와 돔...
좁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장소가 나온다.


제11처소는 예수님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소로서
성화와 제대가 설치되어 있다.


제12처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장소이다.
십자가의 명패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가  
아람어와 라틴어, 헬라어로 쓰여졌다.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이곳은
정교회 양식으로 수많은 등잔을 걸어놓았다.
이곳 제단의 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졌다는 바위구멍이 있다.
이곳을 찾는 순레객들은 모두 여기에 엎드려 기도한다.


이 바위는 예수님이 운명하셨을 때
천둥번개가 치고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때 갈라진 것이라고 전해진다.
아크릴로 보호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을 좀 더 선명하게 담아보았다.


십자가가 세워졌던 곳에 손을 넣고 기도하는 것은
이곳 성지순례자들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다른 각도에서 성묘교회의 돔 지붕을 향해 담은 전경이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서 내리는 장면을 담은 성화.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앞에 두고
오열하는 마리아와 여인들,
그리고 사도요한과 아리마대 요셉의 모습이 보인다.


 

 

위의 두 사진은 비아 돌로로사 
제13처소로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놓고
수의를 입혔던 바위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의 시신에 몰약과 침향을 넣고
세마포에 싸서 염을 했다고 한다.

신심이 독실한 정교회와 가톨릭교도들은
모두 이곳에 입을 맞추고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그 은혜를 입기를 기도한다.


돔의 중앙에는 다시 오실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주변에는 12사도의 전신상이 그려져 있다.


예수님의 무덤 바로 앞에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세운
카톨리콘(Katolicon)이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세상의 중심,
이른바 아담의 배꼽이 놓여져 있다.


마지막 14처소는 예수님의 무덤이다. 
운명하신 예수께서는 이곳에 사흘 동안 묻히셨다가
이곳에서 부활하셨다. 

이곳 안으로 들어가면
예수의 부활을 알렸다는 천사의 방이 있고, 
다시 또 하나의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세 사람 정도가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공간이 나온다.
그 곳이 바로 예수의 무덤이다.

이 건물의 이름은 애디큘(aedicule, 작은 건물), 
정확히 표현하면 예수님의 무덤을 덮고 있다고 하겠다.


예수의 무덤 주변에 있는
예수님 당시에 사용했던 다른 무덤들로서
바위를 깍아 시신을 묻을 공간을 만들었다.


예수님 당시의 무덤으로 사용했던 곳에
콥틱교회에서 예배처소를 만들었다.
이곳에 그려진 성화들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색이 바래고 희미해졌지만 그들은 이를 덧칠하지 않았다.

문자를 모르던 시기,
성경의 메시지들은 그림으로 그려져 전해졌고
그들은 이 그림을 성경말씀과 동일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것은 인위적으로 변개해서는 안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와 지금의 비아 돌로로사는
사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금은 곳곳을 성역화하였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것이 상업화되었다.

더구나 비아 돌로로사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무슬림 거주지역 안에 있기 때문에 

성지로서의 경건함을 상실하고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찾아온 이들이게는 
상당히 당황스럽고
생경한 곳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지닌 역사적, 신앙적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고,
오늘날 전 세계 인류의 1/3 이상이 믿고 있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임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자신을 버리신 곳,
예수께서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곳,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까지 버림을 받으신 곳.
그것이 바로 비아 돌로로사의 진정한 의미이다.


비아 돌로로사,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내가 보이고, 그분이 보이고,

십자가가 보이고, 생명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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