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 통곡의 벽에 평화가 있기를!

2015. 5. 31. 13:03세상의 모든 풍경/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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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 - 통곡의 벽에 평화가 있기를!
Jerusalem - Peace on the wall of wailing!


통곡의 벽은 아마도 예루살렘 최고의 유대인 성지일 것이다. 원래 통곡의 벽은 성전산을 둘러싼 450m 가량의 서쪽 외벽을 말한다. 그래서 이를 서쪽벽(Western Wall)이라고 부른다. 또한 나라 잃은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통곡했다고 하여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고 있다. 

서쪽 벽은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들어가는 입구쪽에서 볼 때 북쪽(왼쪽)은 남자들이, 남쪽(오른쪽)은 여자들이 기도하는 장소이다. 아무래도 남녀가 섞여 기도하면 기도에만(?) 전념하기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한편 강한 햇빛으로부터 그늘이 더 많이 지는 남쪽이 여성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통곡의 벽에 들어가는 모든 남자들은 키파라고하는 조그만 모자를 쓴다. 이곳은 매일 24시간 개방되어 있으며 매주 금요일 해가 진 안식일 이후에는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기 때문에 이때만큼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연중 이 통곡의 벽에 최대의 인파가 모이는 때는 매년 아빕월 9일(양력 7~8월 경), 성전파괴일이다. 이날에는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밤새 철야기도를 한다.

이곳이 유대인들의 가장 거룩한 기도장소가 된 것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때문이다. 당시 솔로몬 성전은 파괴되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성전의 서쪽 외벽이었던 곳은 고스란히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비록 솔로몬의 성전은 사라졌지만, 솔로몬의 영화로웠던 성전을 그리워하며 남은 모퉁이 돌이라도 의지하여 기도한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 서쪽 벽 접근이 항상 열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대인들은 서쪽벽으로 다니기가 어려웠다. 로마시대에는 성전이 파괴된 아빕월 9일, 그날 하루 동안만 성역에서 기도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아랍시대에는 이것조차 허락되지 않아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에서 가장 가까운 이 서쪽벽에서 기도하는 풍습이 생겼다. 이후 오스만제국 때부터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기도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 서쪽벽을 포함한 성전지역은 모두 요르단의 관할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은 접근할 수가 없었다. 단 정해진 날만 이곳을 방문할 수가 있었다. 일년에 단 한 번 서쪽 벽을 찾는 날에는 유대인들에게서 한이 맺힌 통곡의 기도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날이 어두워지고 서쪽벽을 떠나야 할 때쯤, 유대인들은 내년을 기억하자며 자신들의 기도를 적은 작은 쪽지 하나를 고이 접어 슬쩍 벽틈에 구겨 넣는다. 그리고 그제야 뒤로 돌아선다. 이런 연유로 서쪽벽을 통곡의 벽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기도쪽지를 벽 틈에 남겨놓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6일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의 최대 진격지는 단연 통곡의 벽이 되었다. 비아돌로로사를 지나 통곡의 벽에 다가서는 이스라엘군의 틈바구니에서 이 소식을 무전으로 타전했던 병사의 떨리는 목소리는 현재도 들을 수가 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을 점령했을 때, 병사들은 앞다투어 꺼칠한 돌벽을 손으로 만지며 성벽에 얼굴을 비비면서 흐느끼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유대교의 최고 랍비가 예루살렘의 진정한 귀환을 선포하였다.

1967년 6월 7일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모세 다얀 장군은 당시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그동안 분할되어 있었던 예루살렘을 드디어 통합하였다. 우리의 친구인 기독교인과 이슬람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가 예루살렘에 온 것은 타 성지를 차지하거나 간섭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곳 예루살렘의 거룩함을 보호하고 이곳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함이다."

다얀장군의 연설은 1899년과 1907년의 헤이그협정(전쟁 및 군사점령기간의 문화자산 보호법)의 제56조에 기초한 것으로서 어느 국가도 종교기관을 사적 소유재산으로 인정하거나 이를 고의적으로 파괴하거나 손상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1954년 헤이그 협정에서 협의한 '군사대치기간 중 문화자산 보호법'에 따라 종교구역 및 문화재에 대한 어떠한 무력공격이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6일전쟁 직후인 6월 11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 인근 하라트 알 마가림 지역의 아랍인들에게 즉각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미적거릴 시간도 없이 이스라엘 공병대는 아랍인들의 가옥과 건물들을 폭파시켰고, 분문(Dung Gate)으로 밀고 들어온 불도저는 건물잔해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의 커다란 통곡의 벽 광장이 조성되었다. 

1967년까지만 해도 통곡의 벽은 1.5m의 조그만 통로로만 존재했었고, 벽 뒤로는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요르단 치하에서 통곡의 벽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던 유대인들은 135채의 가옥과 두 채의 모스크를 헐어내고 현재의 광장을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해 당시 630여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다. 사실 그 당시 전쟁에서 패한 요르단이나 민족 정체성조차 희미한 아랍인들이나 이렇다 할 저항조차 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후 통곡의 벽은 유대교 최대의 성지로 자리매김하였다.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독교와 유대교간의 화해의 표시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다. 교황은 통곡의 벽을 찾아 평화의 기도문을 바위팀에 꽂으며 중동의 평화를 기원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세계의 유명인사들은 당연한 절차인양 통곡의 벽을 방문해 의미있는 말을 한 마디씩 던지곤 한다. 이는 이스라엘 국내 정치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또한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에는 통곡의 벽을 방문해 기도를 드리며 그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다.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성지로 간주되면서 국가의 주요행사를 치르는 곳이다. 또한 이스라엘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통곡의 벽은 이미 종교적인 성지를 넘어 모두의 관광명소가 된 셈이다. 서쪽 벽을 바라보면서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시대상을 볼 수 있다. 맨 아래 부분의 태가 둘려진 큰 돌의 열한 번째까지는 2천여 년 전 헤롯왕에 의해서 건축된 것이고, 그 위 중간 크기의 다섯 줄은 초기 아랍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윗부분의 조그만 벽돌들은 19세기에 더해진 것이다. 성벽은 지하에 숨겨져 보이지 않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는 솔로몬 시대의 성벽까지 볼 수 있다. 지하성벽은 서쪽벽 터널을 타고 들어가야 한다.

<참고자료, 이스라엘 성지로의 초대(이강근 저), 도서출판 미드바르>


 

통곡의 벽 북쪽, 남자들이 기도하는 구역의 전경이다.


지금은 유대인 뿐 아니라 다양한 피부색과 인종의 사람들이
이 벽을 찾아 자신의 기도를 바친다.
유대인들은 메시야 왕국의 도래와 성전회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다른 방문객들은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한다.

그런데 이 두 기도는 사실 서로 반대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회학자나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제3성전을 세우는 날은
곧 세계 3차대전으로 이어지는 날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머리에 검정 실크햇을 쓰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은
바로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종교적인 열심을 가진 이들,
이른바 종교인들이다.

이들은 직업을 갖지 않으며
성경을 암송하고 기도하는 일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기면서 산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는데,
일반 세속 유대인들은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고 한다.
일종의 왜 우리가 저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불만일 것이다.


많은 유대인들은 잠깐 이곳을 들러가는 관광객들과 달리
통곡의 벽을 찾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곳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
그래서 아예 이곳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하루종일 머무는 것이다.


통곡의 벽틈에는 빈틈하나 없을 정도로 빼곡히
기도문을 적은 종이들로 채워져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기도문은 우편으로도 접수할 수 있고,
접수된 기도문은 이곳을 관리하는 랍비들이 벽틈에 꽂아준다고 한다.
다만 인터넷 접수는 받지 않는다.
자신의 친필로 적은 기도문이 아니면 안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종교적인 절기 외에는
일반인들과 똑같은 옷을 입는다.
하지만 예배를 드릴 때,
통곡의 벽에 모일 때는 항상 키파를 쓴다.
일상생활을 할 때도 키파를 쓰는 경우가 많다.


벽을 바라보며 성경을 읽는 종교인들은
때때로 두 손바닥과 머리를 벽에 대고 간절히 기도한다.


통곡의 벽의 북쪽에는 에어콘까지 나오는 시원한 공간이 준비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도서관 시설이 되어 있고
유대교의 랍비들, 종교인들의 발길이 하루종일 그치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 이곳에서 셩경을 읽고 기도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작은 책에는 주로 모세오경,
특히 신명기서의 말씀과 각종 기도문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성경을 읽을 때 고개를 앞뒤로 세차게 흔들면서 읽는데
과연 저러면서 글씨가 제대로 보일까 싶을까 싶었다.
조명이 부족한 실내인데다가 고개를 앞뒤로 흔들어대니
흔들리지 않은 선명한 사진을 담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앞뒤로 흔드는 이유는
다른 잡생각을 하지 않고 성경말씀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검은 정장을 입은 저 친구도 얼마나 앞뒤로 흔들어대던지 도무지 사진을 담기가 힘들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토라 및 기도서.
이걸 줄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앙에 커다란 옷장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토라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일명 '토라의 방주'이다.


도서관의 장서들은 모두 히브리어 경전들과 주석서인
미쉬나, 탈무드 등으로서 모두 히브리어로 된 책들이다.


이들은 아마도 에디오피아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들인 것 같다.
유대인들은 유럽계, 헝가리계, 인도계, 에디오피아계 등
다양한 인종과 혈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 이상 유대인을 인종적, 또는 혈통적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인도 동부의 몽골리안 계통의 종족인
나갈랜드인들 일부가 유대교로 집단개종하였고,
이스라엘 정부가 그들에게 이스라엘 국적을 부여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는 유대교가 인종적 단일성을 뛰어넘어
세계종교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라를 낭송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성경에 집중하는 젊은 종교인.
이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암송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토라 전체를 암송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아직 고전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이나 이민자들은
서로 발음과 의미를 물어가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히브리어는 아랍어와 함께
운율에 대단한 강조점을 두고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낭송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선율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금요일 해가 질 때쯤 이곳에 찾아와
안식일을 맞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물론 사진을 촬영해서는 안되겠지만....


현재 보이는 아래에서 여섯 번째 줄까지의 돌들이
예수님 시대의 헤롯대왕 때 건축된 것이고,
그 위의 다섯 줄은 초기 아랍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그 위의 작은 벽돌들은 19세기에 더해진 것이다.


여성들이 기도하는 남쪽 구역은 한결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이 광장을 조성하는 동안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아픔을 잠시 생각했다.


지금 보이는 벽의 테두리가 둘러진 돌들은 모두
2천여년 전 헤롯 시절에 지어진 것들이라고 하는데,
이 돌들만 보아도 이 성전의 규모와 화려함이
어떠했을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유대인들이 그 성전을 보며
솔로몬시대의 영광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 통곡의 벽 구역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올 수 없다.
중앙에 세워진 이스라엘 국기가 그 사실을 대변해준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은
이 벽 위의 성전터에 건설된 모스크,
즉 바위돔(The Dorm of Rock) 사원과
그 옆에 세워진 '알 아크사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


통곡의 벽 뒤로 우뚝 솟은 황금돔은
이슬람에 의해 유대교의 성전 터 위에 AD691년에 세워진 것으로서
'바위의 돔 사원'이라고 부른다.
이슬람 전통에서 이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을 제물로 드리려 했던 곳임과 동시에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곳으로 여겨진다.


이슬람의 상징인 황금돔 사원과,
그 앞에 길게 내려진 이스라엘의 국기.
이것이 예루살렘의 현주소다.


이미 종교적인 성지를 넘어서 관광지가 되어버린 통곡의 벽...
유대인들에게 이곳이 지닌 의미를 우리가 피부로 느끼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소란스럽지 않을까...


정통 유대교도들에게 이곳은
메시야 왕국이 실현될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무슬림들이 세워놓은 이슬람 사원을 헐어버리고
제3성전을 세워야 할 성스로운 곳이다.
그러나 그 상황이 가져올 비극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들과 반대로 기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 돔이 바로 바위돔 사원 바로 옆에 건설된 알 아크사 사원으로서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천마를 타고 날아와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고 한다.


샬루 샬롬, 예루살라임...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나 역시 이들과 다를 바 없이 이곳을 지나쳐가는 나그네이지만
이 땅의 평화가 곧 세계평화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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