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 예수탄생교회와 베들레헴의 풍경들

2015. 6. 5. 15:12세상의 모든 풍경/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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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들레헴 - 예수탄생교회와 베들레헴의 풍경들
Bethlehem -  Nativity Church and the Scenery of Bethlehem


빵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베들레헴은 유대광야의 높은 언덕 자리에 있다. 해발 7백여 미터의 베들레헴에는 석회암 비탈에 벌집처럼 많은 동굴들이 있다. 성경에서의 첫 언급은 창세기 35장으로서 야곱의 식구들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몸이 쇠약해져 죽고 말았는데 야곱이 라헬을 이곳 베들레헴 근처에 묻고 비석을 세웠다. 이곳은 또한 룻기의 나오미와 보아스의 고향이며, 보아스의 증손자인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들레헴이 오늘날처럼 유명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이기 때문이다. 선지자 미가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700여 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나시리라는 것을 예언했다. 예루살렘 멸망 후 A.D.135년에 로마 수비대는 바르 코크바 군대의 살아남은 자들을 제지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터툴리안은 당시 베들레헴에는 유대인들이 없었다고 한다. 로마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 위에 교회를 세웠다. A.D. 4세기 말에 히에로니무스의 제롬은 베들레헴 동굴에 은둔하면서 두 개의 수도원과 교회를 세웠고,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불가타(Vulgate)역 성경이다.

1948년 이전까지 베들레헴은 예수님의 탄생지답게 기독교인의 도시였다. 당시 베들레헴 시민의 75%가 기독교인이었고, 나머지가 무슬림이었다. 오스만 터키의 통치당시 무슬림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은 것을 보상하듯 영국이 친기독교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아랍 난민들이 들어와 살면서 기독교인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1967년 당시 인구 14,439명 중, 기독교인은 46.1%였다. 이들은 주로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소속의 성도들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생활수준이 높고 따라서 그 자녀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미주와 유럽 등에 나가서 살면서 가족들을 그곳으로 초청하는 경우들이 많아 더 급격히 기독교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위험하고 생활여건이 열악한 이곳에 거주하기보다는 해외생활을 택하는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다가오는 어느 날 이곳은 기독교인이 전혀 없는 기독교성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포스팅에서는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두 곳과 목자들의 교회를 소개하고, 오늘날 베들레헴 시가지의 풍경, 룻과 보아스의 로맨스가 흐르는 베들레헴 들녘 풍경 등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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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성지 베들레헴의 모습들을 담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려면 유대인 거주지역과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사이의 분리장벽을 통과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은
매일 까다로운 검문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갈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분리장벽의 부착물과 그림들.


팔레스타인의 야당이 벽에 그려놓은 아랍어로 된 정치광고.
아마도 이 정당의 기호가 2번인 듯 싶다.


베들레헴 입구에 들어서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운영하는 소규모의 상점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역시나 이곳에도 삼성과 LG 대리점들이 많이 눈에 띈다.


곳곳에 십자가가 세워진 건물들이 눈에 띈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초승달이 그려진 모스크 탑들이 보인다.


주로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교도들이 이곳 기독교인들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무슬림 모녀.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책을 옆구리에 끼고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무슬림 여대생들.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오는 팔레스타인 소년.
그가 사는 세상이 언제나 평화롭기를 기도한다.


동방정교회에서 세워놓은 예수탄생 기념교회의 탑이다.
원래 예수님이 탄생했던 자리에 동방정교회에서 교회를 세웠고,
1881년에 그 좌측에 로마 가톨릭 소속의 캐더린교회가 세워졌다.


성 캐터린 교회의 아름다운 내부전경.
매년 12월 25일 자정에 이곳에서 드려지는 성탄미사는 전 세계로 방영되며,
예루살렘의 대주교가 이 미사를 집전한다. 
이 때 성지에 와 있는 기독교국가의 대사 및 주요대표들이 이 미사에 참석한다.
베들레헴을 관할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무슬림임에도 성탄자정미사에 반드시 참석한다고 한다.


예배당 정면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탄생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교회당 양쪽 벽면에는 비아돌로로사 12지점을 상징하는 성화가 조각되어 있다.


예배당의 우측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로 예수님의 탄생동굴과 연결되는 제롬 동굴이 있다.
원래는 마리아와 요셉이 머물려했던 여관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유명한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로마 히에로니무스의 제롬은
자신의 친구 다마수스를 이어 교황이 되고자 갖은 노력을 했지만 실패하자
A.D. 386년 로마를 떠나 이곳에 와서 정착했다.
그리고는 거의 34년간에 걸쳐
신구약 성경을 라틴어로 완역하는 대번역 작업을 완성했다.

아마도 그가 교황이 되었더라면
오늘날의 불가타 역 성경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번역한 셩경은 가톨릭교회의 공인을 받아
중세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다.


420년에 생을 마감한 제롬은 죽기전에 자신의 비문을 작성해 놓았고
자신을 서재 옆 동굴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대로 서재 옆 동굴에 무덤이 만들어졌고,
석판 앞면에는 그가 손수 작성한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있다.
"이곳은 내가 영원히 안식할 자리로, 여기에 거하는 것이 내 소원이다."


그러나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죽은 직후 그는 이곳에 묻혔으나 13세기에 로마의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빈 석관만 남아 있다.


캐터린교회 앞뜰에는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한 손으로 해골을 옆구리에 끼고 서 있는 모습이다.
이는 곧 성서번역에 일생을 바친 절대헌신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캐터린교회 방문을 마치고 교회문을 나서면 다음과 같은 영어문구룰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만일 여행자로 이곳에 들어왔다면,
나갈 때는 순례자로 남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순례자로 이곳에 들어왔다면,
나갈 때는 더 거룩한 이로 남을 것입니다."

나는 과연 더 거룩한 이로 남아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동방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예수님의 탄생장소에 세워진 교회에 남아있는
비잔틴시대의 바닥 모자이크.


예수탄생교회는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라 제대로된 사진을 담아올 수 없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에
은으로 만든 별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라틴교회가 1717년에 만든 것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우리의 다음 일정 때문에 내부를 담아오지 못해 아쉬웠다.

위의 사진은 정교회 양식으로 만들어진 탄생교회 전면 모습이고,
이 밑으로 들어가면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이 있다고 한다.


성지순례자들과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St. George)가 악한 용을 무찌르는 모습.

성 조지(라틴어: Georgius, ? - 303년)는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이자
14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게오르기우스 혹은 제오르지오라고도 한다.
게오르기우스는 농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라틴어이다.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특별히 이곳 팔레스타인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집에는
대부분 이 성 조지의 부조가 대문이나 벽에 붙어 있다.


예수탄생교회의 외부모습..
현재 공사중이라 제대로 된 외관을 보기는 어렵다.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
그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세워진 이 탄생교회는
페르시아 군대가 대부분의 성지교회들을 파괴했을 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예배당 안에 그려진 동방박사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페르시아 복장을 한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본 페르시아 군대의 지휘관이
자신들의 조상이 그려진 교회를 파괴할 수 없다며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아랫부분 왼쪽에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는데,
이 문을 겸손의 문이라고 한다.
거대한 탄생교회 건물에 비해 문이 너무나도 작은 이유는 
이곳을 찾는 이는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누구나 몸을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비잔틴 시대에는 아치형의 큰 문이 있었는데
말을 탄 사람까지도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높이 1.2미터의 현재의 문으로 축소된 것은
500여 년 전 오스만 터키 때라고 한다.

무슬림 순례자들이 이곳에 말을 타고 드나드는 것에 대해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들레헴 거리의 여유로운 모습...
팔레스타인 지역의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울만큼 평화스럽다.


버스 정류장 내부에는 KFC를 비롯한
서구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이곳 깊숙이 침투했음을 볼 수 있다.


목자들의 계곡에 있는 천막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주문한 본 메뉴가 나오기 전에 무한리필로 공급되는 아랍스타일 빵.
인도의 로띠와 비슷하지만 좀 더 두껍고 고소하게 느껴졌다.


목자들의 들판교회의 외부 전경.
전면에는 가브리엘 천사의 상이 붙어있다.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이 목자들의 들판교회는
성지에 지어진 유일한 개신교회로서 캐나다의 지원으로 건축되었다.
이탈리아 건축가 안터니오 바루치가 디자인한 이 교회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말 아릅답게 지어졌다.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하늘에서 빛이 비취고
가브리엘 천사의 음성이 들렸다는 성경의 기록을 반영하여
예배당 전면 돔에는 자연 채광이
강단을 비출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예배당 전면부의 아름다운 모습.


베들레헴의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마굿간)을 찾은 목자들과
별이 반짝이는 베들레헴 들판,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사들의 찬송...
가장 비천하고 낮은 곳으로 오셨지만
가장 위대한 탄생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아기 예수님을 뵙고 다시 베들레헴 들판으로 돌아오는 목자들과 양떼들...
기쁨에 들떠 춤추고 찬양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목자들이 양을 치던 계곡과 언덕..
지금은 언덕위에 번화한 도시가 세워져 있다.
베들레헴은 이곳의 좌측편에 있다.


목자들의 들판에서 바라본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맨 왼쪽 위의 구불구불하게 난 길이 베들레헴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다.
오래 전에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성화에서 보았던 느낌을 생각하며 사진을 담았다.


목자들의 들판교회 주위에는 목자들이 추위를 피하던 동굴이 있다.
동굴 안에서 들판을 잘 내다볼 수 있도록 유리로 칸막이를 만들어 놓았고,
이 사진처럼 20~30여 명이 기도회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작은 예배실도 겸하고 있다.


동굴 안에 만들어진 예수님의 탄생장면을 담은 소품들.


당시에 양을 치던 목자의 모습.


목자들의 교회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분수대.
중앙에 목자가 서 있고 주변에는 양 세 마리가 물을 먹고 있는 장면이다.


이 곳은 목자들의 들판교회 입구에 있는 기념품 샵으로
'보아스의 집'이라고 되어 있다.
이 지역이 바로 룻과 보아스가 사랑을 나누고
가정을 이룬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곳에 정말 다양한 목각 기념품들이 있는데
그 중의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장면이다.
우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보는 것과 같은 식사장면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식사장면이 당시의 상황과
유대지역의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ㄷ 자 형태로 배열된 식탁,
열려있는 전면부로는 하인들이 드나들며 시중들도록 되어 있다.

당시 중동문화에서는 식사를 할 때
비스듬히 누워서 먹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가격표가 3,000불이 붙어 있었다...^^


동방박사들의 방문장면을 표현한 이 작품은
전형적인 모자이크식 구성을 보여준다.

본래 마태복음에 묘사된 동방박사들의 방문은
예수님이 탄생한 후 최소한 1년 가까이 경과했을 때여서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집에 있을 때였다.

반면 누가복음 2장에 묘사된 목자들의 방문은
예수님이 탄생하던 당일, 또는 그 다음 날 이루어진 것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성탄절날 연극하는 것과 똑같이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이 함께 등장해 있다.

이 작품의 가격표도 1999불,
그냥 사진으로 담는 것으로 만족한다...^^


보아스의 집 전면에는 역시나
용을 무찌르는 수호성인 성 조지의 부조가 붙어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 중 기독교인들이 약 2% 남짓 된다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 이 성 조지를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삼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의 모습 잘 보셨는지요?

일정상 지나친 곳들이 있어서
사진을 소개하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다윗의 우물이라던지, 라헬의 무덤 등도 가볼 만한 곳이었지만
거기까지 다녀오기에는 우리의 일정이 너무 촉박했답니다.

예수님의 탄생동굴에도 들어가보지 못해 아쉽군요.
언젠가 찾아올 두 번 째 방문 기회를 기다려봅니다.

잘 보셨다면 공감체크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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