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기독교 이야기/인도교회사(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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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회사 인물열전 13> 여성해방과 사회개혁의 선구자 빤디따 라마바이
오늘 우리는 인도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인도여성의 해방과 인권을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했던 평신도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빤디따 라마바이 사라스와띠(Pandita Rama Bai Sarasvati, 1858-1922)이다. 라마바이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고도 특이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남부 까나라(현 까르나타카)의 서부 산악지대에 정착한 마라타 브라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아내에게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칠 만큼 독립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와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라마바이가 태어난 후 유년 시절에 집을 떠나 방랑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들은 한 성지에서 몇 달을 보낸 후 다른 성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다시..
2021.08.03 -
실크로드 고대기독교 유물전시관을 찾아서
인도교회사를 연구하면서 수년 전부터 고대 동방교회의 동진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중 2년 전에 세미레치예 학술세미나에 참석하여 인도 기독교, 특히 인도의 시리아교회 역사에 대해 발제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알게 된 동방교회(경교) 연구자 중 한 분인 김규동 박사께서 지난 4월 7일(수)에 광주 광신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실크로드 고대기독교 유물전시관을 개관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오늘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경교연구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장안의 봄」이란 제목의 동방교회 연구서를 펴낸 바 있는 김규동 박사님은 약 30년 동안 중국선교사로 사역해왔으며, 중국은 물론 중앙아시아, 소아시아 지역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고대 동방교회의 선교 및 동진 역사를 탐구해왔습..
2021.04.13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 12> 링겔타우베와 베다마니깜의 아름다운 동역
세람포르에서 캐리를 포함한 삼총사에 의해 선교가 시작된 초창기에 인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 트라방코르(Travancore, 현 타밀나두 깐야꾸마리 관구)에서는 또 다른 유형의 개신교 선교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동인도회사는 공식적으로 여전히 선교사들의 입국에 반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지요. 트라방코르에서는 기독교 공동체가 빠르게 큰 규모로 성장했고, 풍성한 선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링겔타우베의 소명과 남인도 정착 이 트라방코르 선교의 개척자가 바로 모라비안 유형의 경건주의 성향을 가진 독일 루터교도 링겔타우베(William Tobias Ringeltaube)인데요, 그는 1770년 8월에 실레시아의 브르제그 근처 쉐이델비츠(Sheidelbitz)의 대목이었던 고틀리프 링겔타우베(Gott..
2021.03.03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 11> 윌리엄 캐리와 그의 동료들
위대한 선교의 세기의 문을 연 현대선교의 아버지, 열정적인 사회개혁가, 뛰어난 번역가, 저명한 식물학자, 박식한 문화인류학자..., 구두수선공이었다가 인도선교사가 된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를 묘사하는 수식어들입니다. 윌리엄 캐리에 대한 평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지만, 여기서는 인도교회사의 저자 C. B. Firth의 기록을 재정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캐리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는 주로 그가 서구 제국주의적이고 물량주의적인 선교, 빼내오기식 선교, 그리고 현지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기독교 우월주의 선교 등 오늘날 선교현장에서 대두되고 있는 중요한 이슈들이 대부분 그에게서 출발했다는 데 집중되고 있습니다. * * * * *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상황 먼저 우리는 ..
2021.02.19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 10> 크리스챤 F. 슈바르츠 – 통전적 선교의 모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인 지겐발크와 플루차우에 의해 시작된 트랑케바르 선교사역은 탄조르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슈바르츠 시대에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크리스챤 프레드릭 슈바르츠(C. F. Schwartz)는 자신의 시대는 물론 그 이후의 시대까지 트랑케바르 선교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지요. 그는 1750년에 트랑케바르에 도착하여 1798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긴 세월을 타밀나두 지역에서 사역했습니다. 슈바르츠는 그 자신의 순전한 성품이 가진 영향력으로 인해 널리 존경을 받았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우러러보게 만드는 넓은 마음과 목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트리치노폴리에서의 사역 슈바르츠는 인도에 도착한 후 12년 동안은 트랑케바르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선교회 조직 내에서의 일상적인..
2021.02.05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 9> 지겐발크와 트랑케바르 선교
예수회 선교사들이 타밀나두(Tamilnad) 지방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동안 같은 타밀나두 에 인도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나타난 것은 18세기 초반 무렵입니다. 17세기 동안 포르투갈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의 무역 회사들도 인도에 근거지를 설립해 왔습니다. 새로 인도에 온 이들은 대부분 개신교도였고 그들이 정착지는 대부분 인도 동해안 지역이었지요. 네덜란드는 풀리캇(Pulicat, 1609), 사드라스(Sadras, 1647) 그리고 나가빠탐(Nagapatam, 1660)에, 영국은 마술리빠탐(Masulipatam, 1622), 마드라스(Madras, 1639, 현재의 첸나이), 쿠딸로르(Cuddalore, 1683)에, 그리고 프랑스는 폰디체리(Pondicherry, 1674)에 근거지를 마련했..
2021.01.27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8> 베스치 신부와 예수회 선교의 쇠락
1656년, 드 노빌리가 세상을 떠난 후 18세기까지 마두라선교회의 사역은 마두라에서 벨로르까지, 또한 탄조르에서 사띠야망갈람까지 타밀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며, 대체로 드 노빌리가 시작했던 선교방법을 고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마두라선교회에서 사역했던 예수회 선교사는 한 번도 10명을 넘은 적이 없을 정도로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드 노빌리의 계승자들과 예수회 선교의 확장 그들 중에는 상층 카스트 힌두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브라만 사냐시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수드라 및 하층카스트를 대상으로 사역한 빤다라스와미들이었습니다. 소수의 사제 선교사들이 방대한 지역을 담당하면서 이들은 현지인 교리교사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드 노빌리가 그토록 세우고 싶어 했던 브라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신학교는..
2021.01.03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7> 토착화를 위한 과감한 시도 – 로베르토 드 노빌리
인도기독교사상 세 번째 연재,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 이미 드 노빌리의 시도에 대해서 다룬 바 있습니다. 거기서는 주로 드 노빌리의 선교방법론과 신학적인 시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지요. 이번 인물열전에서는 드 노빌리의 삶과 사역을 중심으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탈리아 귀족 출신 사제, 마두라에 오다 1605년에 인도에 도착한 로베르토 드 노빌리(Roberto de Nobili)는 이탈리아 귀족혈통의 예수회 신부입니다. 날카로운 지성과 불타는 열정을 가졌던 그는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놀라운 업적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마테오 리치는 유교의 고전들에 능통했고, 기독교를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중국의 형식으로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고아에 잠깐 머문..
2020.11.25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6> 디암페르의 정복자 - 알렉시스 드 메네제스
인도교회 역사, 특히 2천년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말라바르 시리아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바로 1599년에 디암페르(Diamper, 현재 지명 Udayamperur)에서 열린 총회(synod)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총회를 통해 대다수의 말라바르 시리아교회와 도마 기독교인들이 로마 가톨릭의 고아 대주교의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었고, 자신들의 동방 시리아교회 예전과 교리를 포기하고 라틴예전과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결정적인 장면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포르투갈 출신 신부이자 고아의 대주교였던 알렉시스 드 메네제스(Alexis de Menezes, 1559-1617)였습니다. 필자가 번역한 《인도교회사》(CLC, 2019)에서는 그의 이름을 프랑스어식 발음으로 '메..
2020.11.16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5> 시리아교회 수호를 위한 몸부림 - 마르 아브라함
16세기에 접어들면서 포르투갈은 인도 서해안과 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고아와 코친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자신들의 정착지를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와 더불어 교황으로부터 부여받은 파드로아도(Padroado)에 힘입어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교와 교세확장에도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런 노력은 주로 프란시스교단과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신부와 수도사들에 의해 이루어졌지요. 이들과 주로 네스토리우스파에 속한 시리아교회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양자 모두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형제들로 여기며 좋은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를 알아감에 따라 서로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했지요. 특히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교황에게 복종하지 않는 이들의 존재에 대하여 교황청..
202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