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기독교 이야기(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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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회사 인물열전 10> 크리스챤 F. 슈바르츠 – 통전적 선교의 모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인 지겐발크와 플루차우에 의해 시작된 트랑케바르 선교사역은 탄조르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슈바르츠 시대에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크리스챤 프레드릭 슈바르츠(C. F. Schwartz)는 자신의 시대는 물론 그 이후의 시대까지 트랑케바르 선교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지요. 그는 1750년에 트랑케바르에 도착하여 1798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긴 세월을 타밀나두 지역에서 사역했습니다. 슈바르츠는 그 자신의 순전한 성품이 가진 영향력으로 인해 널리 존경을 받았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우러러보게 만드는 넓은 마음과 목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트리치노폴리에서의 사역 슈바르츠는 인도에 도착한 후 12년 동안은 트랑케바르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선교회 조직 내에서의 일상적인..
2021.02.05 -
<스크랩> 인도 달리트 신학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
좀 오래된 논문이지만 인도 달릿 신학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글이어서 스크랩해 소개합니다. 저자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해 아쉽습니다. 추후 확인되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달릿신학이 인도의 대표적인 신학으로 소개되어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인도 기독교와 신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주로 인도 남부 마두라에 위치한 CSI 소속 '마두라이 타밀나두신학교'(Tamilnadu Theological Seminary, TTS)를 중심으로 연구되어왔고, WCC의 주류로 활동하고 있는 남인도교단(CSI)와 북인도교단(CNI) 소속의 신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진행중이며, 현장에서의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달릿 신학에 관한 자료는 추후에 계속 업데이트 하도록 ..
2021.02.04 -
<인도기독교사상 10> 인도의 컵에 담긴 생명의 물 - 사두 순다르 싱 ①
이전 연재에서 우리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 초반에 걸쳐 인도에서 성취신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그에 대한 반응과 평가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그들과 동일한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여러 측면에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신학적인 발전의 외부에 서 있었던 한 사람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바로 썬다 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까지 살았던 인도의 기독교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꼽히는 사두 순다르 싱(Sādhu Sundar Singh, 1889-1929)이다. 사실 우리는 순다르 싱을 전문적인 신학자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저작물과 그의 가르침을 기록한 문서들은 신학, 특히 인도의 신학으로 가득 차 있고, 이점에서 그는 그 업적에 있어 우리가 살피고 있는 가장 위대한 ..
2021.02.01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 9> 지겐발크와 트랑케바르 선교
예수회 선교사들이 타밀나두(Tamilnad) 지방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동안 같은 타밀나두 에 인도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나타난 것은 18세기 초반 무렵입니다. 17세기 동안 포르투갈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의 무역 회사들도 인도에 근거지를 설립해 왔습니다. 새로 인도에 온 이들은 대부분 개신교도였고 그들이 정착지는 대부분 인도 동해안 지역이었지요. 네덜란드는 풀리캇(Pulicat, 1609), 사드라스(Sadras, 1647) 그리고 나가빠탐(Nagapatam, 1660)에, 영국은 마술리빠탐(Masulipatam, 1622), 마드라스(Madras, 1639, 현재의 첸나이), 쿠딸로르(Cuddalore, 1683)에, 그리고 프랑스는 폰디체리(Pondicherry, 1674)에 근거지를 마련했..
2021.01.27 -
<인도기독교사상 9> 성취신학 : 그 기원과 발전, 그리고 한계
* 본 글은 필자의 저서 "박띠의 다리를 넘어 그리스도께로"(CLC, 2018)에서 발췌하여 재정리한 것입니다. 성취신학(Fulfillment Theology), 혹은 성취이론(Fulfillment Theory)이란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역사 속에 자신의 신적 로고스를 통해 진리의 씨앗을 뿌리고 준비시키셨다가 마침내 때가 차면 세계인들이 갈망하는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다는 신학적 관점이다. 이 입장을 인도 기독교 신학에 적용하면, “하나님이 인도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분의 내재하시는 영으로 힌두 성자들을 통해 복음을 준비시키셨는데, 그 준비와 갈망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었다”가 될 것이다. 이 성취이론이 갖는 장점은 그리스도의 최종적이고 완전..
2021.01.24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8> 베스치 신부와 예수회 선교의 쇠락
1656년, 드 노빌리가 세상을 떠난 후 18세기까지 마두라선교회의 사역은 마두라에서 벨로르까지, 또한 탄조르에서 사띠야망갈람까지 타밀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며, 대체로 드 노빌리가 시작했던 선교방법을 고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마두라선교회에서 사역했던 예수회 선교사는 한 번도 10명을 넘은 적이 없을 정도로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드 노빌리의 계승자들과 예수회 선교의 확장 그들 중에는 상층 카스트 힌두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브라만 사냐시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수드라 및 하층카스트를 대상으로 사역한 빤다라스와미들이었습니다. 소수의 사제 선교사들이 방대한 지역을 담당하면서 이들은 현지인 교리교사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드 노빌리가 그토록 세우고 싶어 했던 브라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신학교는..
2021.01.03 -
<인도기독교사상 8> 지존하신 그분 외에는! - 브라흐마반답 우빠디야이
본명이 바바니 차란 바네르지(Bhavāni Charan Bānerji)인 브라흐마반답 우빠디야이(Brahmabandhab Upadhyaya)는 1861년 벵갈의 한 브라만 가정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그는 훗날 자신이 현대 인도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단언한 케샵 찬드라 센의 영향을 받았다. 어린 소년시절부터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따뜻한 애착을 가졌으며, 이 사랑은 그가 공부했던 캘커타의 스코틀랜드총회연구소(the Scottish General Assembly’s Institution)와의 접촉을 통해, 그리고 센과 모줌다르(P. C. Mozoomdar)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더 깊어졌다. 그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또 다른 기독교적인 영향은 그의 삼촌이자 초창기 벵갈의 위대한 기독교인 민..
2020.12.03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7> 토착화를 위한 과감한 시도 – 로베르토 드 노빌리
인도기독교사상 세 번째 연재,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 이미 드 노빌리의 시도에 대해서 다룬 바 있습니다. 거기서는 주로 드 노빌리의 선교방법론과 신학적인 시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지요. 이번 인물열전에서는 드 노빌리의 삶과 사역을 중심으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탈리아 귀족 출신 사제, 마두라에 오다 1605년에 인도에 도착한 로베르토 드 노빌리(Roberto de Nobili)는 이탈리아 귀족혈통의 예수회 신부입니다. 날카로운 지성과 불타는 열정을 가졌던 그는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놀라운 업적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마테오 리치는 유교의 고전들에 능통했고, 기독교를 중국의 지성인들에게 중국의 형식으로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고아에 잠깐 머문..
2020.11.25 -
<인도기독교사상 7> 힌두교에 대한 합리적 반박 – 느헤미야 고레
케샵 찬드라 센이 ‘새로운 섭리의 교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다듬고 있는 동안, 정통 힌두교의 육파철학체계에 대한 반박문을 발표하고 브라흐마 사마즈와의 긴 논쟁을 시작한 기독교 정통주의의 챔피언이자 매우 특별한 인물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닐라칸트 샤스트리 고레(Nilakantha Shastri Goreh, 1825-95)였다. 그는 ‘느헤미야’라는 기독교식 이름을 취했는데, 말년에 영국성공회에서 안수를 받은 다음부터는 고레 신부(Father Goreh)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개종 이전에 이미 산스크리트 학자로 뛰어난 명성을 얻었고, 전통적인 힌두교 대변자였다. 빤디따 라마바이를 제외하면 그가 아마도 인도의 모든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정통 힌두학문을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었을 것이..
2020.11.19 -
<인도교회사 인물열전6> 디암페르의 정복자 - 알렉시스 드 메네제스
인도교회 역사, 특히 2천년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말라바르 시리아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바로 1599년에 디암페르(Diamper, 현재 지명 Udayamperur)에서 열린 총회(synod)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총회를 통해 대다수의 말라바르 시리아교회와 도마 기독교인들이 로마 가톨릭의 고아 대주교의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었고, 자신들의 동방 시리아교회 예전과 교리를 포기하고 라틴예전과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결정적인 장면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포르투갈 출신 신부이자 고아의 대주교였던 알렉시스 드 메네제스(Alexis de Menezes, 1559-1617)였습니다. 필자가 번역한 《인도교회사》(CLC, 2019)에서는 그의 이름을 프랑스어식 발음으로 '메..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