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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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갈로르 - 어느 슬럼마을의 한가한 오후
뱅갈로르에서 내가 살았던 꼬따누르 마을.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가난한 불가촉민들이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남편은 일용직과 릭샤왈라, 정원사, 청소부 등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고, 아내와 사춘기를 지난 소녀들은 주로 주변 중상류층 가정에 아야(여자 하인)로 일한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 앞쪽 공터 한 쪽에도 그런 천막들이 줄지어 있었다. 지나다니면서 눈인사와 손짓으로 아이들과 사귀기를 몇 차례, 어느 날 오후, 카메라를 들고 천막들 사이로 들어갔다. 한 눈에 봐도 낯선 이방인. 그래도 그 마을에 아프리카와 아시아 몇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살고 있던 터라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이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이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2015.04.24 -
코친 - 까타깔리, 인도의 전통무언극 공연
코친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이벤트가 있다면 바로 까타깔리(KathaKali) 공연이다. 인도의 남서부지역, 특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코친을 중심으로 한 도시들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되는 이 무언극은 바라트나띠얌, 까닥, 마니뿌리, 오디시 등과 함께 인도의 5대 전통 무용극 중 하나로 꼽힌다. 까타깔리는 이야기인 까타(Katha)와 음악(Kali)이 합쳐진 말로서, 음악과 함게 무언극으로 표현되는 서사적인 이야기를 의미한다. 이 공연이 그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말이 없이 표정과 동작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방식과 더불어 인도의 전통적인 서사 이야기를 강렬하고 인상적인 분장을 통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6세기 이후로 중국에서 들어온 경극의 요소가 가미되면서 극적인 재미가 훨씬 ..
2015.04.22 -
머수리 - 원숭이 가족들의 워터파크
머수리에서 내가 힌디어를 배우기 위해 두 달 동안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방 셋을 가지고 거의 민박수준으로 운영하는 정말 초라하고 볼품없던 곳이었다. 그 세 방에 나와 미국인 친구 카알, 아일랜드에서 온 노처녀 카일리, 이탈리아에서 온 두 아가씨들이 모여 오손도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별로 낙이 없는 게스트하우스였지만, 밤마다 쏟아지는 하늘의 별들과 아침 일찍 구름과 연무가 올라오기 전에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들은 그 모든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을만했다. 한편, 수시로 집에 드나드는 손님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 크나큰 골치거리였다. 바나나나 과일들을 훔쳐먹는 정도는 그냥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녀석들은 부엌은 물론 방에 감추어둔 빵과 비스킷, 마켓에서 어렵게 구해온 한국라면까지 ..
2015.04.21 -
깨달음을 위한 구도자의 길 - 사두(Sadhu)
|| 깨달음을 위한 구도자의 길 - 사두 Sadhu - A Seeker's Way for Enlightment 주황색 망또, 온갖 기괴한 분장과 치렁치렁한 장식.... 이들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이런 삶을 살아갈까? 이들은 바로 힌두교의 수행자, '사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힌두들은 이상적인 힌두교도의 일생을 네 가지 단계로 구분한다고 한다. 배움의 단계와, 가장으로서의 직무을 다하는 단계, 은퇴와 수행의 단계, 속세의 인연을 끊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사냐시의 단계가 그것이다. 사두는 이 중의 은퇴와 수행의 단계에 해당되는 삶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나, 힌두교도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한 평생이 진리를 향한 깨달음의 과정, 즉 요가 수행의 단계라고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사두의 정의를..
2015.04.20 -
께랄라 - 코친의 유대인 마을을 찾아서...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 BC 1세기 이전부터 유대인들이 살았다? 상당히 생소하고 미심쩍은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기록으로 볼 때 분명한 사실이다. 인도에는 BC 1세기 이전부터 이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코친 근처에 이주해와 정착촌을 이루고 살았으며, 그 후손들은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우고 독립하기까지 대대로 인도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전승에 의하면 사도 도마는 처음에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곳 인도에 왔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인도에 처음 드나든 것은 멀리 솔로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였던 이 시대에 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와 파르티아를 거쳐 인도땅에 와서 공작을 비롯한 진귀한 동물과 각종 향신료들을 수입하여 솔로몬 ..
2015.04.19 -
삶과 죽음, 그 경계선에서 사는 사람들
삶과 죽음의 이중주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공간... 바라나시에 가면 반드시 들러봐야 한다는 곳, 바로 갠지스 강변에 자리잡은 화장터이다. 갠지스 강변에서 시신을 화장하여 그 재를 강물에 뿌리면 생전의 모든 죄업를 씻고 가장 높은 까르마를 쌓아 다음 세상에서 더 좋은 삶으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는 매일 인도 전역에서 수도 없이 시신들이 밀려들어온다. 바라나시에 처음 방문하던 날, 나는 화장터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화장터인 마니까르니까 가트로 가는 좁은 길목에 있었고 나는 그곳의 2층,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방을 얻어 이틀을 묵었다. 화장터까지 가는 길은 좁디 좁은 골목길이어서 차량으로는 어림도 없고 오직 가족과 친척들이 망자의 시신을 어..
2015.04.18 -
바라나시 - 갠지스 강변의 새벽연가
|| 바라나시 - 갠지스 강변의 새벽연가 Varanasi - A Love Song of the Riverside on Ganges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갠지스 강도 기지개를 켠다. 밤새 이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강변의 가트마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남인도와 북인도, 동인도와 서인도에서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기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이 강가에 찾아온 것일까.... 신성한 천계의 강, 강가(Ganges). 그 강이 시바의 도움으로 지상에 내려와 흐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인도대륙을 뚫고 흘러 뱅골만으로 합쳐지는 강가, 즉 갠지스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 강가에 몸을 담그고 그 강가에 기도를 바치며 그 강가에서..
2015.04.16 -
바라나시 - 강가(Gangga)의 저녁노을
갠지스에 황혼이 찾아든다. 하늘도 물들고, 강물도 물들고, 건물들도, 새들도, 짐승들도 그리고 사람들도 모두 황금 빛으로 물들어간다. 노을은 모두를 꿈꾸게 한다. 마치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처럼 사람들은 그 황홀한 꿈의 한 복판에 머물고 싶어한다. 짧은 그 순간을 영원으로 이어가고자 마음의 소원을 담아 흐르는 강물 위에 띄워 보낸다. 인생은 때때로 강을 건너는 일. 차안과 피안의 경계, 그 어디메쯤에서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슬퍼하며,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분노하며, 때로는 만족하고, 때로는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갠지스에 물든 노을은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의 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조용히 우리에게 깨우쳐준다. 피안(彼岸)의 언덕에 이르는 날, 차안(此岸)에서 수고하며..
2015.04.16 -
바라나시 - 아침마다 울리는 거리의 변주곡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오늘도 아침 해는 떠오른다. 동녘하늘이 뿌옇게 밝아오면 오늘도 어제처럼 닭이 울고 개가 짖으며 하루는 시작된다. 희뿌연 연무에 쌓인 거리도, 하나 둘 씩 셔터를 올리는 가게들도, 분주히 오가는 릭샤왈라들과 섭지왈라들도 어제와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라나시의 아침은 날마다 새롭다. 그 도시가 연주하는 아침 멜로디는 마치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처럼 날마다 크고 작은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며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단지 하룻밤 머물러가는 나그네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그 변주들이 있기에 도시는 아침마다 생명력을 회복하고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달려간다. 찰나의 순간에 스치듯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마치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을 것을 알기나 했던 것처럼 당연한 표정으..
2015.04.15 -
고리강가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가족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값진 이름, 그것은 바로 가족입니다. 우린 그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그리고, 그 이름으로 거친 세상을 살아갑니다. 가족의 사랑을 먹으며 자라고, 가족의 위로와 격려로 고비들을 뛰어넘습니다. 때로는 한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지만 때로는 마음이 갈리고 나뉘어 흩어집니다. 그것 때문에 서로에게 아픔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 곁에 남아 함께 걷고 있는 이들은 가족입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서운해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눈물 짓고 돌아서서 다 내 잘못이었노라고 손잡아주는 가족. 실패와 좌절로 눈물지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숨고만 싶을 때 나를 보듬어주고 다시 일으켜주는 것도 바로 가족입니다. 고리강가에서 만난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내가..
2015.04.14